윤제학본지 논설위원
지금 한국 사회엔 ‘허공꽃(幻化)’이 만발했다. 이미지가 실재를, 허상이 실상을 압도하고 있다. 이른바 ‘외모지상주의’라는 집단적인 눈병에 걸린 것이다. 천민자본주의, 학벌주의, 연고주의와 같은 고질적 병폐에 또 하나의 병증이 도진 것이다.
깔끔한 용모와 상대에 호감을 주는 자기 연출이 나쁠 건 없다. 하지만 외모로 사람을 판단하고, 예쁘고 잘 생긴 것을 능력과 등치시키는 것은 문제다. 다름을 틀림으로, 차이를 차별로 연결시키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외모지상주의가 문제된 건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키가 작다는, 얼굴이 못생겼다는 이유로 취업시 불이익을 당하는 건 당연시할 정도였다. 취업 시즌만 되면 대중 매체에서는 비장한 목소리로 이런 현상을 질타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건 구색 갖추기나 어르고 뺨 때리는 일과 다름없다. 언제 그런 발언을 했냐는 듯, 외모를 앞세운 연예인들을 대중들의 우상으로 만드는 일에 에너지를 쏟아 붓는다. 이런 한국 사회의 이중성과 위선, 그리고 자기기만은 병적인 외모지상주의로 귀착될 수밖에 없다.
한때 한국인은 ‘어글리 코리언’이라는 이름으로 국제 사회의 조롱거리가 됐다. 그런데 이제는 한국인의 외모 집착증에 대해서도 비슷한 시선을 보내는 것 같다. 지난 달 19일 로스엔젤레스 타임스는 “한국 남자들 파워 위해 치장”이라는 제하의 흥밋거리 기사를 실었다. ‘꽃미남’ 안정환을 모델로 내세운 남성용 컬러 로션의 첫 6개월 매출액이 400만 달러였다는 사실에 기초한 기사였지만, 다분히 조롱투다. 일정 부분 사실이라 치더라도 아직은 일부에 국한된 현상임을 한국인인 내가 더 잘 안다. 하지만 기사는 보편적인 일인 것처럼 작성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그런 기사가 국내 신문에 인용 보도된 다음이다. 한국인들은 그런 보도를 접한 다음 최면이라도 걸린 듯 신념화하고 행동화한다. 환각제로 오용되는 약물의 문제점을 파헤치는 보도가 나가면 오히려 전국적으로 확산되는 현상을 익히 봐 오지 않았던가.
청소년들의 외모지상주의는 더 심각한 수준이다. 눈을 커 보이게 하기 위해 문구용 칼로 눈을 찢는 따위의 행위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고 한다. 최근의 한 논문에 의하면 고교생의 40%가 성형 수술을 원한다고 한다. 또 ‘얼짱’ 열풍이 인터넷을 강타하고 있다.
얼짱이라는 말은 중고생들 사이에서 학교나 반에서 얼굴이 가장 예쁜 혹은 잘 생긴 친구를 일컫는 은어였다. 그러나 인터넷에 얼짱이 얼굴을 내밀고부터는 인기 연예인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는 10대들의 우상이 되었다.
‘얼짱 신드롬’을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사그라질 10대들의 문화라고 가볍게 생각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이 선망하는 가치가 결국 ‘돈과 명성’이라면, 결코 가벼이 넘길 일이 아니다. 강남의 아파트 값은 미래에도 하늘 높은 줄 모를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왜 우리 사회가 이 정도로 왜곡됐을까. ‘은근과 끈기’는 그야말로 옛말이 되고 만 것일까.
지금 우리 사회는 분명 ‘바람 든 사회’다. ‘육체적 허영에 정신적 허기’. 지금 우리 사회는 바로 이런 상황에 놓여 있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결과중심주의’,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승자의 자리에 오르기만 하면 된다고 믿는 ‘패권주의’의 어두운 그림자다.
“환을 여의는 것이 바로 깨달음이다(離幻卽覺).” 원각경의 가르침이다. 지금 우리 사회는 육체라는 헛것에 집착한 나머지 실속은 쭉정이가 돼 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