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우스님
나는 대우 스님을 생각하면 나 자신을 포함한 현대 수행자들의 지범개차(持犯開遮)하며 사는 계율관을 살피게 된다. 중국 상해에서 기차로 3시간을 더 가는 남경, 남경대학교에서 석사과정에 있는 대우스님이다. 스님께서는 일찍이 유년에 은사스님과 인연이 되어 스님으로 올곧게 살아가고 있다. 대우스님은 동학사 강원을 졸업하고 10여년의 세월을 선원에서 정진하며 화두 일념으로 심신을 조복 받고 있던 중 늘 계율에 관심을 두었다고 했다. 진관사와 운문사에서 있었던 계율 특강을 듣고 난 후 봉녕사에서 3번째 계율 특강을 듣게 되었는데, 강의를 들으면서 율장을 공부해야 되겠다는 마음이 더욱 깊어지더란다. 그러나 과연 누구를 의지해서 율장을 배워야하나 고민을 할 때였다고 했다. 그때 까지만 해도 멀리서 도반들과 함께 묘엄 강주스님을 존경하고 흠모하고 있었는데, 묘엄 강주스님께서 찾으신다는 전갈을 받고 가슴 두근거리며 강주스님 방으로 갔단다. 그런데 뜻밖에도 강주스님께서 봉녕사에 남아서 학인들을 지도해 달라는 부탁을 하셨단다. 그러나 강원에 있을 때만 해도 강사의 꿈을 꾸었었지만 이미 선원에서 마음을 굳히고 십여년의 세월을 보낸지라 경을 다시 보며 후학을 가르치는 방향으로 마음을 선회하기란 그렇게 쉽지 않았다고 했다.
늘 멀리서 존경하며 묘엄 강주스님께 율장을 배우고 싶었던 차에 용기를 내어 “스님! 실은 스님께 율장을 배우고 싶습니다” 라고 말씀을 드렸더니 그러면 여기 봉녕사에 남아서 학인을 가르치면 내가 율장을 강의해주겠노라 약속을 하셨단다. 그래서 대우스님은 “은사스님께 허락을 받고 한달 안에 오겠습니다” 라고 묘엄 강주스님과 약속을 했단다. 84년 10월 1일에 봉녕사로 들어가면서 묘엄 강주스님과 그렇게 스승과 제자의 인연이 맺어지고, 92년에 스님으로부터 전강을 받았고, 96년 스님의 그늘을 떠나 지금 남경대학에서 유학하는 지금까지 어른스님의 덕화를 새기며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고 했다.
학인들에게 <치문>을 가르치기 시작하면서 새벽 3시가 넘도록 밤을 새우며 강의 준비를 하기 일쑤였고, 그렇게 3년째 <치문>을 가르치는데 강주스님께서 <서장>을 가르치라고 하시더란다. 그러나 대우스님은 일년만 더 <치문>을 가르치게 해 달라고 간곡히 청했고, <치문> 전반에 있는 주를 빠짐없이 출처 원본과 대조하며 가르치기를 4년, 그리고 난 후에 약속대로 <서장>을 가르치는 것을 마음에서 허락했다고 한다. 스승은 제자의 그릇됨을 인정하고 제자는 끝내 겸허한 자세로 스승을 존경하는 모습, 참 보기 드물고 아름다운 일이다.
세납이나 법납을 생각하더라도 결코 세월이 작게 흐른 것은 아닌데 늦게라도 율장을 연구하겠다는 원을 세우고 언어와 문화가 다른 이국으로 유학길에 오른 대우스님의 그 용기가 우리 후학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 우리 조계종 스님들은 사분율에 의거해 계를 수지하고 있음을 감안해서 중국과 한국의 사분율을 비교분석하는 작업을 위해 자료를 수집하고 준비 중에 있다고 했다. 혹자는 지금 이 시대 수행자에게 있어 계율이 주는 의미가 크지 않다고 생각할지 모르나 오히려 삶이 복잡해지고 다양한 문화가 수행자의 삶 깊숙이 스며드는 이 시대에 승가의 청정성 회복과 수행자 개인의 삶도 계율에 의해 질서를 찾아야 할 필요성이 요구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론으로는 정신이 물질의 우위에 있다고 하지만 실생활에 있어서는 인간의 정신세계가 이미 물질에 지배를 당하고 있는 실정이다. 거역할 수 없는 이런 시대의 흐름 속에 스님들의 수행환경은 편리함이나 풍부한 물질의 유혹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어 있는 것이다. 육근의 자유분방함을 거두어 주고 번뇌와 망상을 쉬게 하는 계율이 있음이 수행자에게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싶다. 그래서 더욱 대우스님의 그 원이 귀하게 느껴진다.
대우스님이 강당을 떠나 도봉산 금강암에 계실 때 대우스님은 내게 이렇게 말했다. “진명스님! 내가 강당을 떠나 이렇게 마당 쓸고 마루청소 하며 지내보니 내가 한 때 강사였다는 사실을 이 마룻장이 알겠어요, 이 빗자루가 알겠어요. 아상·인상·중생상·수자상은 다 허망한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 열심히 정진해서 어서 다 벗어납시다.” 아직도 이 말이 기억 속에 생생하다. 스님의 그 원이 청정승가를 이루는 튼튼한 씨앗이 될 것이다.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