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5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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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눈물
이우상
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교수

치료비에 들어간 빚을 감당하지 못한 아버지가 식물인간이 되어 연명하고 있는 딸의 산소 호흡기를 떼어 딸을 숨지게 한 사건이 있었다. 그간 딸의 치료비에 들어간 돈이 3억여원이 넘었다. 집까지 팔아가며 입원비를 보탰지만 희망이 보이지 않는 치료가 계속되자 가족들이 집을 비운 사이에 딸이 물고 있는 가정용 산소호흡기의 전원을 껐다. 그리고 그 아버지는 살인혐의로 구속되었다. ‘딸을 죽인 죄인이 무슨 할말이 있겠느냐’라는 아버지의 회한이 기사에 곁들여져 있다.
스산한 가을 날, 우리 시대 우울한 풍경의 한 토막이다. 살인이란 결과만 놓고 보면 가혹한 비난을 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남아 있는 가족들에 대한 생각과 희망 없이 누워있는 딸의 모습을 보며 실직자 아버지는 술잔에 눈물을 흥건히 떨구며 범행을 저질렀다. 저간의 사정을 들은 그 누구도 선뜻 비난의 말을 토로하지 못한다. 경찰, 의사, 가족의 생계를 맡은 스물 두 살짜리 아들도 분노하지 못했다. 술잔에 떨어진 아버지의 눈물이 얼마나 진하고 쓰디쓴 것이었는가를 알기 때문이다.
어두운 방 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는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 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김종길 선생의 ‘성탄제’라는 시의 일부이다. 불덩이 같은 고열로 앓아 누워있는 자식을 위해 눈보라치는 밤길을 헤치고 약을 구해온 아버지의 애틋한 사랑을 노래한 시이다.
내가 일곱 살 때, 다섯 살이었던 누이가 죽었다. 한창 재롱을 떨 나이에 죽었다. 실신한 듯 오열하는 어머니 곁에서 덩달아 나도 악을 쓰며 울어댔다. 그러나 아버지는 울지 않았다. 이웃 사람들을 불러 어둑어둑한 새벽녘에 시신을 가마니에 둘둘 말아 지게에 지고 대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삽과 곡괭이를 든 이웃 아저씨들이 뒤를 따랐다.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그 광경은 선명하게 남아있다. 아버지의 무덤덤함과 비정함이 무서웠다.
새벽녘에 나간 아버지와 이웃 사람들은 해가 뉘엿뉘엿할 무렵 돌아왔다. 아버지는 빈 지게를 지고 비틀거리며 대문을 들어섰다. 술이 얼큰한 상태였다. 어디다가 묻었냐는 어머니의 물음에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날 밤이 이슥할 무렵, 나는 짐승의 울음 같은 아버지의 울음소리를 들었다. 식구들이 모두 잠든 후 아버지는 사랑채 기둥을 잡고 소리를 죽이며 울고 있었다. 달빛조차 없는 어둠 속에서 용을 쓰듯 울음을 삼키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았다. 그 광경 역시 선명하게 남아있다. 진땀을 흘리듯 꺼억꺼억거리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훔쳐보며 나는 숨소리를 죽였다.
삶과 죽음에 대한 겸허와 성찰을 배워야하는 계절이다. 안락사의 문제, 국가의 기능, 건강보험의 확대 등 현실의 문제는 잠시 접어둔다. 드라마에서 벌이는 어지러운 사랑타령으로 흘리는 눈물에 대해서도 접어둔다. 누르고 삼키며 통곡조차 실컷 하지 못하는 아버지들의 눈물에 대해서 생각한다. 그 눈물이 천도의 길에 한 잎 한 잎 놓이는 연꽃이 되길 서원한다.
200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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