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화인가 불상인가
솔거는 황룡사 벽에 노송도를 그렸다. 어찌나 사실적으로 그렸는지 까마귀, 소리개, 제비, 참새들이 멀리서 보고 날아들다가 앉을 곳이 없어 떨어졌다. 경덕왕 때에는 눈이 먼 희명이란 여자아이가 분황사의 북쪽 벽의 천수관음상에서 빌어 마침내 눈을 뜨는 기적이 일어났다. 사천왕사 벽화에 그려진 개는 솔거의 노송도를 능가하는 사실성과 기적을 일으켰다. 918년 사천왕사 벽화의 개가 울어 3일 동안 부경을 강설 풀이하여 이것을 물리쳤으나, 반나절도 안되어 또다시 울었다. 8년 뒤 이 벽화의 개가 마당으로 쫓아 나왔다가 다시 벽 속으로 들어갔다. 이상의 벽화 이야기들은 <삼국유사>에 전한다.
그러나 아쉽게도 신라시대의 벽화는 한점도 전하지 않는다. 모두 전설 속에 파묻혀 신비로운 설화 속에서만 존재할 뿐이다. 그런데 이러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풀어줄 수 있는 불상이 있으니, 바로 경주남산 삼릉계 육존불이다. 이 육존불은 편평한 바위 면에 선각으로 새겨서 조각으로 분류되지만, 회화의 면모도 함께 간직하고 있다. 지필묵, 즉 붓으로 먹과 물감을 사용하여 그린 그림보다 바위에 새긴 그림이 먼저 시작한 점을 생각하면, 이른 시기의 회화 형식을 따른 셈이다. 아울러 이 육존불은 굵기가 일정한 필선만을 사용하여 표현한 점에서 신라시대의 유일한 회화이자 불화인 ‘대방광불화엄경변상도’(호암미술관 소장)를 연상케 한다.
이 육존불은 바위의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최대한 살려 얕은 선각이지만 결코 약하지 않게 표현하였다. 앞에서 가까이 보면 바위의 울퉁불퉁한 면을 다듬지 않고 그 면을 따라 선각으로 새겼다. 선각이 오랜 세월의 풍상 속에 주름진 바위결과 더불어 아주 자연스럽게 나타나 있다. 언뜻 보면 바위 면을 편편하게 다듬은 것 같지만, 실제는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바위 면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인공적인 것으로 억제하고 자연스러움을 살리는 신라인들의 미의식이 여지없이 드러나 있다.
왼쪽 바위에는 서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한 삼존이 배치되고, 오른쪽 뒤로 물러나 있는 바위에는 앉아 있는 불상을 중심으로 한 삼존이 배치되어 있어 대조를 이룬다. 서있는 불상을 보면 몸에 착 달라붙은 옷에 U자형의 주름이 대담하게 흘러 내려오고, 좌우의 보살상들은 한쪽 무릎은 끓고 앉아 두 손에 연꽃을 받쳐 들고 불상을 향하여 공양하고 있다. 앉아 있는 불상은 석굴암본존불을 연상케 하는 건장한 체구로 위엄을 갖추고 몸에 밀착된 옷을 입었다. 보살상들은 불상 좌우에 서서 불상 쪽을 향하고 있다. 보살상들은 웃옷을 벗은 채 목걸이와 팔지 정도의 간단한 장신구와 천의를 걸친 모습이다. 간략한 선각의 표현으로 긴장감이 넘치고 탄력적인 형상을 표현한 점에서 통일신라 절정기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 이처럼 경주남산 삼릉계육존불은 현재 남아 있는 통일신라의 가장 큰 불화라 할 만큼 회화적인 성격이 강한 불상인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