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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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준스님
그윽한 염불소리 중생의 번뇌 녹여
“최선 다할때 가장 아름답다”늘 강조

스님이라면 누구나 초심시절의 새벽예불 시간을 잊지 못할 것이다. 창불 하는 스님의 선창에 따라 호흡을 고르고 “지심귀명례 삼계도사 사생자부 시아본사 석가모니불.” 한 구절 한 구절 입으로가 아닌 가슴으로 토해내는 그 예불 소리에 코끝이 시큰해지고 목으로 올라오는 뜨거운 눈물을 삼키던 기억 말이다. 초심시절 부처님 도량에 사는 환희심도 있었지만 모르고 부딪쳐야 했던 일들에 대한 고달픔을 예불시간에 다 녹여내며 신심을 다졌던 것이다.
나는 명준 스님을 생각하면 모습보다는 먼저 그 목소리가 떠오른다. 부산 영도, 넓고 시원한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치한 영화사에서 지역포교에 애쓰고 있는 스님이다. 열여섯에 출가해서 운문사 강원과 동국대학교를 졸업하고 제방 선원을 거쳐 지금은 포교에 힘쓰고 있다.
아마 내가 학인시절 이었을 것이다. 졸업한 선배스님들이 많이 모이는 행사에서 의식을 집전하는 소리를 나는 멀리서 듣게 되었다. 작은 소리에도 민감했던 나는 도대체 저 그윽하면서도 깊고 힘있는 목소리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궁금했다. 그날 이후 나도 염불을 하거나 독경을 할 때면 은근히 그 목소리를 닮고 싶어 흉내를 내곤 했다. 그러나 소리에도 노력해서 되는 부분이 있고 선천적으로 타고 나는 것이 있다. 소리의 높 낮이에 대한 재주는 노력해서 될지 모르나 소리의 음색이나 음량, 음질은 노력해서 쉽게 만들 수 없는 부분이다. 그런데 명준 스님의 목소리의 음량과 음질은 선천적으로 타고 난 것 같았다. 무엇보다 스님의 염불하는 목소리는 기도하는 법당이나 행사장의 분위기를 그윽하게 하고, 그 염불소리는 마음 깊은 곳의 세계로 인도한다.
스님들은 새벽예불 시간에 칠정례를 올리고 행선축원을 한다. 그 축원 내용에 “聞我名者 免三途 見我形者 得解脫” 이라는 구절이 있다. 자신의 이름을 듣는 이는 삼도의 괴로움을 여의고, 자신의 모습을 보는 이는 해탈을 얻게 되길 바라는 원이 담긴 축원이다. 그 대목에서 나는 나와 인연된 사람들을 무엇으로 삼도를 면하게 하고 해탈을 얻게 할 것인가 생각한다. 매일 입으로 외우는 축원이 아니라 내 삶에 그런 실천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윽한 염불성을 가진 명준스님은 소리로써 고단한 중생의 번뇌를 쉬게 하고, 잠시나마 삶의 고달픔으로부터 해탈하게 해주는 해탈보살이 되어 주는 스님이다. 부처님처럼 지혜와 복덕을 다 갖추기는 그리 쉽지 않지만 누구나 한 가지 선지식의 종자는 다 가지고 있지 않을까. 그렇다면 이미 가진 그 선지식의 종자를 튼실하게 발아시키고 잘 키워서 또 다른 인연에 그 종자를 나누는 일이 또 하나의 수행이 아닐까 싶다.
그런 면에서 생각해 보면 명준스님의 염불소리는 인연된 사람들의 가슴에서 일파 만파 선의 씨앗이 되어 퍼져갈 것이다. 근심을 내려놓고 환희심을 낼 수 있는 씨앗이 되고, 화를 삭여서 미소를 품을 수 있는 씨앗이 되며 욕심과 번뇌를 다 녹일 수 있는 그런 씨앗 말이다.
포대화상 같이 넉넉한 모습에 가끔은 수줍은 듯 씨익 웃는 스님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넉넉해진다. 물론 수행자로서 잘못된 행동 앞에서는 엄격하지만 후배들이나 불자들에게 내주는 품은 넉넉하다. 후배들에게 늘 각자 자기 역할을 다할 때 가장 아름답다고 강조하곤 한다.
한번은 내 손을 꼬옥 잡고 소탈하게 말했다.
“진명스님, 우리 잘 삽시다.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소임에 충실한 것이 또 다른 수행의 길입니다” 라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러면서 덧붙였다.
“스님이 방송을 회향하는 날까지 유종의 미를 거두길 바래요” 라는 의미심장한 말로 당부를 했다. 우리는 서로 바라보며 웃었다. 나는 스님이 한 말의 의미를 잘 알기 때문이다. 초심의 마음을 잃지 말라는 간곡한 당부의 말을 그렇게 하면서 “스님같이 자기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는 후배가 있음을 뿌듯하게 생각하는 선배가 있다는 사실을 꼭 기억하길 바란다” 고 말했다. 그것은 큰 경책의 말이다.
누군가를 격려하고 인정한다는 것은 자기의 삶에 자신감이 있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존재하는 순간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또 주어진 소임에 충실한 사람은 무슨 일에서나 작아지지 않는다. 그리고 당당하게 살아간다.
명준스님은 그렇게 사는 분이다. 바다가 작은 강물을 다 품듯, 넓은 부산 앞바다의 주인이 되어서 말이다.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 진행자
2003-1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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