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림스님
앞에서 보면 이마와 머리의 경계가 없는 스님이다. 아직은 젊은데도 조사 어록에 나오는 선사스님을 연상케 하는 캐릭터를 가졌다. 자상한 노장님 같은 캐릭터 말이다. 작으마한 체구지만 조계사 도량을 다 담을 수 있는 마음이 넓고 큰 스님이다. 요즘 조계사 총무 소임을 보고 있는 도림(道林)스님. 깊은 산속 암자에서 여여하게 마음 챙기는 노장님 같은 도림스님이다. 마음 밭을 일구듯이 그렇게 조계사 큰 도량을 살피고 있다.
도림스님은 동국대학교에서 같은 학번으로 함께 공부한 스님이다. 일찍 출가해서 강원을 졸업하고 제방선원에서 정진하다가 다시 체계적인 학문을 하기 위해 산문을 나섰다. 때늦은 만학이었지만 누구보다 성실하게 공부했다. 공부하느라 힘들어서는 아니겠지만 점점 이마의 면적이 넓어져갔다. 함께 앉아 토론이라도 할라치면 꼭 없어져가는 머리카락을 한 번씩 쓰다듬고 시작한다. 삭발하는 날은 매만질 머리카락이 그마저도 없지만, 그럴 때면 도반들이 “도림스님 큰일 났네. 왜 그렇게 속알머리는 없어지고 주변머리만 남아 있습니까. 참말로 눈이 부십니다” 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면 호탕하게 웃어넘기곤 했다.
언제나 개인적인 일 보다는 대중을 먼저 생각하고 도반들의 이런저런 어려운 일을 소리 없이 챙기곤 하는 것은 몇 년간 중국에서 유학을 마치고 돌아 와서도 여전하다. 도반스님 중에 누군가가 상을 당하면 제일 먼저 찾아가 주고, 작은 포교당이라도 개원을 하면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 살피며 도반들의 마음을 모으는데 솔선한다. 어떻게 생각해보면 귀찮은 노릇이다. 허나 기꺼운 마음으로 함께 한다. 씨익 웃으면서 넌지시 건네는 마음의 손길이 참 따뜻한 스님이다.
중국에서 유학을 하는 동안 어쩌다 귀국해서 도반들을 만나면 영락없이 놀림을 당한다. “까맣게 그을리고 야윈 체격이 어쩌면 그렇게 중국스님을 연상케 하느냐고, 중국 스님 다 되어 간다” 고 바라보고 웃곤 했다. 어렵게 유학을 하면서도 도반들이 얼마 안되지만 학비를 보태려고 하면 미국에서 공부하는 도반이 더 필요할 것이라며 그 도반을 위해서 사양하곤 했다. 공심으로 살아가는 것을 보면 스님 중에 스님이다. 수행자로서의 중심축이 꿋꿋한 신심의 바탕위에 굳게 뿌리하고 있는 모습을 스님의 말과 행동에서 볼 수 있다.
그런 도림스님은 불가와 많은 인연을 지어 온 사람임에 분명한 것 같다. 집안에서 가족이 한 명 출가해서 부처님 제자가 되면 구족이 생천을 한다고 했다. 그런데 도림스님을 중심해서 위로 형님과 아래로 동생, 삼형제가 출가해서 때론 좋은 선지식으로 또 든든한 도반으로 수행하고 있다. 생각만 해도 마음 든든한 일이 아닌가. 하지만 어머니 입장에서 보자면 얼마나 마음 아파했을까 싶다. 동산양개 화상의 어머니처럼 그 아들들에게 얼마나 많은 편지를 가슴으로 썼을까 짐작이 간다. 그러나 아마 지금쯤은 그보다 더한 부자가 없을 것이다. 천하를 다 얻은 기분이 아닐까. 한 명 출가하기도 어려운 일인데 삼형제가 스님이 되다니 어찌 환희로운 일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인연법으로 보자면 지중한 인연임에 틀림이 없다. 어쩌면 전세에 삼형제가 서로의 마음 그릇을 키우고 탁마하던 좋은 도반이었을까? 적당한 거리에서 변함없이 산을 지키고 서 있는 크고 작은 소나무 세 그루를 보는 듯 하다.
아마 도림스님에게 요즘 주어진 소임은 수행기간 중에 자신의 수행여정을 다져가는 좋은 시간일 것이다. 종무 행정을 익히고 가람수호 하는 일에 작은 일이라도 살피는 그 소임은 공부 중에 공부일 것이다. 도량도 살펴야 하고, 불교대학 강의도 해야 하고, 불자들의 희노애락에 얽힌 인생 여정도 들어 주어야 한다. 불자들이 아무리 하찮은 일로 상담을 청해 와도 진지하게 들어주고, 어린 종무원일지라도 의견을 존중한다. 일을 하다 종무원이 잘못을 하더라도 무색하게 야단하지 않고 “다음부터 잘하면 되지” 라며 다독여 준단다. 어느 종무원의 말을 빌리자면 한마디로 “선비 같은 스님”이란다. 그리고 “제일 존경하는 스님” 이라고 덧붙인다.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면 짜증도 나고 화나는 일도 있을 터인데 화를 내거나 큰소리로 말하는 법이 없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진중하게 처리한다. 그래서 종무원들의 존경을 받고 있는 것이 아닐까. 존경심은 상대방의 삼업에서 우러나는 향기에서 반영되는 메아리와 같을 것이다. 사람의 향기가 있는 스님을 기억한다는 것은 참 행복한 일 중에 하나이지 않을까 싶다.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