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한국의 화병이 정식 정신질환으로 인정되었다는 보도가 있었다. 과거 많은 사람들이 자각하지 못한 채 시달리고 있는 우울증의 특효약으로 프로잭(Prozac)이란 약물이 등장할 때 많은 사람들이 환호를 했던 기억도 있다. 뇌생리학의 발전과 더불어 우리의 감정을 조절하는 생체 물질이 밝혀지면서 이미 정신신경과에서도 많은 정신 질환에 약물치료가 일반화 되었다. 서양 과학의 환원론적 관점이 팽배한 현대는 약물로 감정이나 마음을 얼마든지
태어나서 의식을 지니게 된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육신이 사라질 것을 두려워한다. 그것은 자신의 의식이 육신을 통하여 이루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개체로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자신이 의식하건 하지 못하건 개인(個人)이라는 자신의 존재의 한계와 모순을 느끼기 때문이다. 이러한 한계는 대상과의 관계 속에서도 당연히 존재하기에 우리에게 두려움을 수반하는 외로움 또는 슬픔으로 감지된다.
생물체의 행동이나 문화활동마저 유전자의 소산으로 보는 사회생물학자(Sociobiologist)들은 찬성하지 않을지 모르지만 지능이 높은 영장류들일수록 집단사회를 이루는 것은 생존의 편리함 외에도 나라고 하는 자의식의 발달과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많은 개인들은 이러한 두려움을 집단에 속함으로써 잠시 위로를 받는다. 이성의 사랑을 통해서도 두려움과 외로움을 잊을 수 있고 돈, 명예, 권력이라는 대상을 통해 해소하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예술, 과학에의 열정이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어 소위 인류의 문화와 문명을 이루게 하는 원동력이 되기도 한다.
그렇기에 많은 사람들이 타인이나 대상에 대한 이러한 상황이나 관계가 끊어지게 되면 막연하나마 자신의 외로움과 두려움을 상기하게 된다. 그래서 비탄에 빠지거나 분노하게 되고, 자신의 근원적 외로움을 들여다 보아 풀어 가기보다는 자신의 상황에 대한 책임을 지고 비난될 만한 대상을 찾아 밖에서 해결하고자 한다.
그러나 이렇듯 자기 자신을 들여다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지닌 자신과 주위 환경에 대한 분노는 매우 지속적이고 깊어서 주위뿐만 아니라 결국은 자기 자신을 파괴하기도 한다.
그렇기에 우리가 왜 단절되고 소외되었다고 착각하게 되어 이토록 살아가는 것이 외롭고 힘들게 느껴지는 지에 대한 근본적 검토 없이 현대 정신의학이 단순히 증상이 조금 심각한 사람만을 비정상이라 규정한 후, 그러한 질병을 단순한 약물치료로 치유할 수 있다고 하는 유물적 발상만으로 접근하는 한 한국인의 화병, 더 나아가 인류의 마음의 고통에 대한 단순한 대증요법이 될 뿐이다.
우리 불자는 항상 깨어 있어 단절과 소외의 마음의 고통으로부터 벗어나 상(相)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속에서 속는 줄 알면서 속아주는 마음으로 일상의 희노애락 속에서도 늘 감사하는 마음을 잃지 않아야 할 것이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