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승의 지혜 생활화
티베트의 모든 민중이 가장 가슴 가까이에 있다고 느끼는 성인 밀라레파(Milarepa, 1052~1135). 이 밀라레파의 환생으로 인정받으며 ‘금세기의 밀라레파’라고 불리우는 칼루 린포체(Kalu Rinpoche, 1905~1989)는 매우 고요한, 빛나는 눈을 가진 은자였다. 그런 칼루 린포체를 밀라레파의 환생이며 위대한 성인이라고 선언한 사람은 16대 카르마파(Karmapa)이다. 칼루 린포체가 히말라야 산속의 석굴로 들어가 홀로 12년 명상을 한 것도 밀라레파와 닮은 점이다. 칼루 린포체가 12년동안 계속한 독거명상에서 사용한 장소는 야생이나 다름이 없어 보통 사람이라면 그런 곳에서 하루도 배겨나지 못할 곳이었다. 라둥푸 석굴은 입구가 하도 커서 매서운 바람이 쉴새 없이 불어닥쳤다. 어두운 석굴 안에는 기어다니는 곤충들도 많았다고 한다.
칼루 린포체는 책도 여러 권 썼는데, <부드러운 속삭임(Gently Whispered)>을 비롯한 7권의 저서가 서구권에 소개되어 있다. 스님을 중심으로 한 카규파의 사원을 다수 설립한 그는 뉴욕 주 와핑거즈훨즈(Wappingers Falls)에 설립한 카규 툽텐쵤링 사원(Kagyu Thubten Choling Monastery)이 미국 동부의 18개 센터를 관장하고 있다. 그밖에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도 그가 설립한 불교센터가 있다.
칼루 린포체 문하에서 공부한 후 그의 번역위원회의 업무를 맡아보며 하와이의 금강승재단(Vajrayana Foundation)을 이끌고 있는 지도자가 바로 예셰 왕모 라마(Lama Yeshe Wangmo)다.
1949년 캐나다 몬드리올에서 태어난 예셰 왕모는 28세 때 캐나다에서 제16대 카르마파와 칼루 린포체를 친견하면서 불자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로부터 7년간, 그는 티베트의 사원에서 행자 생활과 기초 교육을 받은 후 사미니계를 받았다. 이후 다시 3년간의 수행기간을 마친 에셰 왕모는 1986년, 족첸 마스터인 타르친 린포체로부터 닝마파의 수행을 지도받고 ‘데첸 예셰 왕모 라마’의 칭호를 받는다.
그는 교리와 실참을 겸비하고 삶 자체로부터 나오는 직관을 바탕으로 심오한 금강승의 지혜를 생활 속에서, 서구인에 맞게 변형시킨 방식으로 제자들을 가르친다. 최근 수년동안 왕모는, 우리의 개인적인 경험에서 반영되는 참된 본성을 식별해 내는 방법을 예셰 쵸갈(Yeshe Tsogal)의 삶을 모델로 삼아 제시하고 있다.
티베트 불교의 어머니인 예셰 쵸갈은 여신 사라스바티의 화신 또는 발현이라고 믿어지는데, 깨달음을 얻기 전까지 많은 시험과 고난을 겪은 여 스승이었다. 예셰는 ‘다함이 없는 원초의 지혜’를, 쵸걀은 ‘호수의 정복자, 대양과 같은 지혜를 가진 승리자’라는 뜻이다.
8세기경 <티베트 사자의 서>를 쓴 인도 출신의 고승 파드마 삼바바의 수행지도 아래 예셰 쵸걀은 엄청난 고행을 견뎌내며 금강(金剛)의 몸을 얻었다. 225세까지 살리라는 예언이 주어진 그에게는 ‘장수(長壽)하는 찬란한 푸른 빛의 대사(Radiant Blue Lgiht Master of Longevity)’라는 이름이 주어졌다. 파드마 삼바바는 그녀의 성취를 보고 이렇게 말했다. “이제 너는 네가 원하던 것을 스스로 얻었으니, 다른 사람들을 구제하라.” (계속)
김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