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자기 완성을 해야만
외부의 모든 문제 해결할 수 있어
여러분께서 한마음 내주셔서 외국에 잘 다녀왔습니다. 산호세 법회를 시작으로 해서 LA에서는 개원식을 하고 각 분야의 많은 분들과 토론법회를 하였는데 너무들 기뻐하였습니다. 그리고 뉴욕 플러싱과 롱아일랜 등에서도 법회가 있었는데, 특히 롱아일랜드에서는 마약중독자들이나 마음의 방황으로 인해 괴로워하는 많은 청소년들을 잘 이끌어 주어서 매우 고맙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며칠 후에는 오하이오 주립대학엘 갔습니다. 그곳에서 여러 종교를 가진 많은 학생들과 함께 토론을 하였는데, 그 자리에서는 이런 얘길 해주었습니다. “불교는 둘이 아니다. 불(佛)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요, 교(敎)는 우리가 서로 말하는 것이니 불교 아닌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했더니 모두들 시인하더군요. 케네디 대통령 묘지에 있는 불 역시 영원한 생명의 근원을 상징하고 있더라는 얘기도 해주었습니다. 그곳에서 며칠을 보낸 후 다시 뉴욕으로 와서 행사를 마치고 알래스카로 갔습니다. 그곳에 가서도 많은 분들과 서로 토론하고 이렇게 잘 다녀왔습니다. 그리고 마음공부를 열심히 하자는 얘기가 나왔는데, 아마 이번에 가면 지원이 설립될 것 같습니다. 아무튼 여러분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새해가 오자마자 이라크 페르시아 만 사건이 벌어졌는데, 예견했던 바이지만 그렇게 빨리 일어날 줄은 몰랐습니다. 예전에도 여러 차례 얘기했던 바와 같이, 여러분이 각자 자기 완성을 해야만이 외부의 모든 문제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한마음은 빛보다 더 빠르기 때문이지요.
그러나 빠르게 오고 가는 것만이 문제가 아닙니다. 보는 것도 지금은 인공위성을 이용하여 먼 거리를 바로 눈 앞에 보고 있는 시대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지만 마음이란 것은 체가 없어서 천제를 탐험할 수 있으니 바로 그런 마음의 힘이 여러분에게 주어져 있다는 것을 알고 새해에는 더욱 분발해서 자녀들을 키우고 가정을 이끌어 나가시면서 세균성 영계성 유전성 업보성 인과성 병고액난 등 여러 문제를 여러분 스스로 처리하고 넘어갈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된다고 봅니다.
여기 보니 처음 오신 분들도 계시고 하여 간단하게 몇 마디 하고 넘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먼저, 여러분이 안 계시다면 이 세상도 벌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렇습니까, 안그렇습니까? 그래서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부터 완성해야 내 골수도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이 세상 돌아가는 것이 바로 팔만대장경이니 한생각 깨달으면 이 세상을 다 깨달을 수 있느니라.” 하셨습니다. 모든 점에 있어서 통달하지 않으면 벗어날 수가 없고, 벗어날 수 없다면 죽어서도 현재 의식의 그릇대로 남는 것입니다. 사람으로만 있는 것도 아니죠. 이 세상에 태어나면 변해지고 부서져서 천차만별로 변질이 됩니다. 그것은 허무가 아니라 무상이겠지요.
한마디 언급할 것은 ‘우주의 근본은 인간의 마음에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 이 세상 돌아가는 이치가 인간 마음의 근본에 가설되어 있다는 사실,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색은 공하고, 공한 것은 색이니라.” 하신 뜻을 아십니까?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여름도 없고 겨울도 없는 것은 무슨 까닭입니까? 바로 공했기 때문입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동방에는 아촉이라 이름지어 놓고, 서방에는 아미타라 이름지어 놓고, 사바세계는 관세음이라 이름지어 놓고, 지천국에는 지장이라 이름지어 놓았습니다. 부처님의 마음을 말입니다. 천백억화신의 이름이 모두 부처님의 마음임에도 불구하고, 여러분은 이 이름에다 차려 놓고 빌고 저 이름에다 차려 놓고 빌고 하면서 자꾸 마음으로 끄달리고 있으니 언제 자기 마음을 발현하고 깨닫겠습니까? 자기 마음을 발견하지 못하고 질질 끌려다니는 거죠. 자기를 완성하지 못하고 항상 헤매고 있는 이런 실정입니다, 모두.
그러나 그뿐입니까. 지금 세계적으로 볼 때 이라크 문제도 욕심이 과해서 일어난 일입니다. 부처님 나신 고장에서도 욕심으로 인해서 벌어지는 일들을, 부처님께서 한두 번은 돌봐주셨지만 더 이상은 봐줄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착이 있으면 욕심이 붙고, 욕심이 붙으면 일을 저지르게 되는 것입니다. 너무 과한 욕심은 부리지 마세요.
자녀들을 키우는 데도 여러분이 모범이 되고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키워야 됩니다. 이 도리를 모른다면 자녀들은 자녀들대로 빗나가기 쉽상입니다. 외국에 가보니 어머니는 아침에 나가고 아버지는 저녁에 나가는 집들이 많더군요. 그러다 보니 애들 얼굴을 이틀에도 한 번 보고 사흘에도 한 번 보고 말입니다. 그러니 자연히 애들이 방황하게 되고 사랑에 굶주려서 고독한 마음으로 따뜻한 둥지를 찾아다니다가 나쁜 길로 빠지게 되는 일이 한두 건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해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여기 계시는 여러분도 잘 듣고 그렇게 하셔야 합니다. 아침에 출근하는 엄마는 반찬을 만들어서 냉장고에 넣어 놓고, 메모지에 “엄마는 너희들을 사랑해. 우리 식구들이 행복하게 살고 너희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엄마는 일하러 나간다. 여기에 반찬을 만들어 넣었으니 꺼내어 먹어라. 엄마는 너희들을 정말 사랑한다.”라고 써서 냉장고에 붙여 놓고 뽀뽀라도 해서 붙여 놓고 나가면, 애들도 엄마의 그 마음을 전해 받기 때문에 서로 한마음이 되어 돌아가니 애들이 빗나가지 않게 된다는 얘기입니다.
사랑은 몸으로 붙잡아 주고 말로 해 주고 하는 것만이 전부가 아니며, 보이지 않으면서도 전달되는 마음으로 진정한 사랑을 할 수 있습니다. 사랑의 손길이란 그렇게 전달되지 않는 듯 하면서도 이어가는 마음이기에 가족들을 서로서로 화목하게 하고 또 누구 한 사람 탈선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하고 공부를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말을 해서 되는 일이 아니고 야단을 쳐서 될 일도 아닙니다. 전력은 이 전구나 저 전구나 똑같듯이 우리들의 마음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머니 아버지 자식이라는 걸 서로 알기 때문에 벌써 하나로 가설이 되어 있는 것이죠. 전력은 똑같습니다.
한마음으로 모든 것을 주인공에 맡기고 거기서만이 가정을 화목하게 하고 병고액난을 소멸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구멍 없는 구멍에 맡겨 놓는 작업을 한다면 가정이 화목하고, 공부를 하지 않던 아이들도 마음을 돌이켜서 착실한 아이로 돌아올 것입니다. 이러다 보면 정신력이 투철해지고 모든 물리가 터지게 되니 이렇게 가정을 이끌어갈 수 있을 때 행복은 찾아드는 것입니다.
우선 이렇게 말씀드려 놓고요. 조금 전에 여러분이 아니라면 모든 것이 없다고 했는데, 여러분 몸 속에는 공장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공장들을 이끌어 가는 한마음 지배인에게 모든 걸 맡겨 놓는 작업을 한다면, 어떤 공장에서 파워가 일어나더라도 한마음으로 돌려서 안정되게 하고 바로 가동되게 하는 겁니다. 그래서 병고 액난을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많은 부처님의 이름이 있다고 하였는데 부처님께서는 천백억화신으로 나투시면서 삼십이응신으로 받아들이십니다. 보살님들도 그렇구요. 그런데 삼십이응신으로 받아들이고 천백억화신으로 나투신다는 뜻이 무엇이냐? 그것은 마치 어떤 한 사람이 부모라는 이름, 자식이라는 이름, 남편이라는 이름, 형님이라는 이름, 사위라는 이름, 손주라는 이름 등 많은 이름을 가지고 있는 거와 같습니다. 그 많은 부처님 이름이 각각 다 다른 줄 알고 주욱 차려 놓고 잘되게 해 달라고 빌 때 부처님은 어떻게 생각하시겠습니까.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저런 바보들, 이름에다 놓고 비는구나.’ 하실 겁니다.
이름에 놓고 비는 것도 비는 거지만 부처님께서 어떤 이름일 때 부처님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부처님이라는 이름도 없는 것이 바로 부처님이다라고 한 것입니다. 금방 남편이 되었다가 부모를 만나면 자연적으로 순간 자식이 되고, 자식이 “아버지!” 하고 부르면 순간 생각도 말도 행동도 그냥 아버지로서 하게 됩니다. 아들이었을 때는 아들로서 행동하고 말했는데 말입니다. 이렇게 금방금방 화해서 돌아가는 것을 나툰다고 그러죠. 이해가 되십니까?
그래서 부처님의 마음이란 천차만별로 찰나찰나 나투시기 때문에 한 말씀도 안 하셨다고 하신 거지요. 안 한 것도 없고 한 것도 없다는 언어가 붙지 않는 겁니다. 그대로 지금도 설하고 계십니다. 이 세상 돌아가는 자체가 바로 팔만대장경 아니겠습니까. 부처님 말씀하신 것도 그 뜻이고요. 그리고 부처도 중생도 없다는 것은 바로 그렇게 나누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아버지가 될 때 나라고 하겠습니까, 남편이 될 때 나라고 하겠습니까. 순간순간 아버지로 나누어지고 아들로 나누어지고 남편으로 나누어지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부처님 마음으로 지어 놓은 불보살 명호가 그렇게 많다는 것이죠. 또 그렇게 안 지을 수도 없습니다. 서로 공생 공용 공체 공식화 하고 있으니까요.
달마대사는 원래 모습이 잘생겼었는데 구렁이 속에 들어가서 구렁이를 끌어다 놓고 와서 보니 자기 몸이 없어지고 그대신 험악하게 생긴 도둑의 몸이 있는지라 못생긴 몸을 가지게 되었다는데, 잃어버렸다는 자기 집도 도둑의 집도 알고 보면 모두 달마대사죠.
그러면 이러한 나툼의 뜻을 좀 더 실감나게 음미해 보십시다. 지난번에 신도들이 ‘사랑과 영혼’이란 영화를 봤는데 스님도 가시자고 하도 그래서 가서 보았습니다. 여러분도 많이 보았다고들 하니, 그 영화에 비추어 인간의 마음을 몇 단계로 나누어 말씀드려 보죠.
첫째, 우리는 관습, 즉 관념의 습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의식으로 모든 걸 판단합니다. 우주의 근본도 그렇지만 법계의 소용돌이는 막힘이 없이 돌아가고 있습니다. 아무런 막힘이 없이 불바퀴가 돌아가고 물바퀴가 돌아가고 그러는데, 여러분은 관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그러는 겁니다. 뜨거워서 타 죽겠다, 물에 빠져 죽겠다, 산이 높아 넘어갈 수 없겠구나…. 바로 이런 관념의 습 때문에 넘어 가지 못하고 건너가지 못하고 그 구멍을 통과하지도 못하는 겁니다. 우리는 살면서 항상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지금 과학적으로 얼마나 많이 증명되어 있는지. 그것보다도 자동적으로 한생각에 모든 중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깊이 생각하셔야 될 것입니다. 그런데 관습 때문에 그렇게 하지 못하고 창살없는 창살 속에서 괜히 헤매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노예처럼 끌려가는 거예요. 바람이 불면 이리 쓰러지고 저리 쓰러지고 하면서 중심을 세우지 못하는 겁니다. 맷돌 비유를 가끔 듭니다만, 맷돌에 심봉이 꿰여 있지 않으면 어긋나서 물건을 넣어도 갈아져 나오지 않고 정상적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지금 사람들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정상적인 삶을 사는 것 같은데 물질적으로만 끄달리면서 중심을 세우지 못하기 때문에 하는 일이 항상 땅에 떨어지는 겁니다.
뒤범벅이 되게 얘길 합니다만, 불바퀴 속에 들고나는 데도 관념의 습 때문에 타 죽을까봐 거길 못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죽어서 영혼이 어디를 간다 해도 타 죽을까봐 빠져 죽을까봐 못 들어가는 것이죠. 체가 없기 때문에 그냥 한생각이면 갈 것을, 세상에 살아 있을 때의 의식 때문에 못 가는 겁니다. 그 영화에서와 같이 살아 있을 때의 의식으로 사람을 때리니 때려집니까, 붙잡으니 붙잡아집니까. 문도 남이 열어야만 들어갈 줄 알지 그냥 들어갈 줄은 모르는 겁니다. 그러니 나쁘게 하는 사람을 어떻게 다스리겠습니까. 누굴 건져 주려 해도 건질 수가 없는 겁니다.
여러분도 마음공부를 하는데, “마음은 체가 없습니다. 한생각이 빛보다 더 빠릅니다. 한생각이 전파를 통해서 우주를 탐험도 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이렇게 말을 해도 그게 무슨 소리인지 납득을 못합니다. 그래서 영화를 얘기하는 겁니다. 체가 없는 마음인 줄 알면 문도 그냥 통과 통과예요. 벽도 통과 통과입니다. 강도 한생각이면 건널 수 있으며, 내 한생각이 무심인데 어찌 강이 있겠습니까. 또 강이 없는데 배가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게 극락도 지옥도 문지방 너머라고 안그럽니까. 가깝고 멀고가 없다는 얘기죠.
그래서 영화에서 나중에는 한생각의 차이를 어떻게 다른 영혼에게서 알아 가지고 마음을 모아서 해보니 되거든요. 그런데 거기까지는 알았는데 말입니다. 나툼을 모르는 거예요. 사랑하는 아내를 위해서 자기 한 몸으로 얼마나 바쁘게 돌아다녔습니까. 한생각으로 자기를 열 개를 만들어서 한다면 좋을 것을 말입니다, 나툼을 모르기 때문에. 이것도 나로 만들고 저것도 나로 만들었으면 될 것을 말입니다. 그게 나툼이거든요. 이것도 되고 저것도 되고 그렇게 나투었더라면, 자기 아내 건지는 데 그렇게 어렵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또 나툴 줄은 안다 하더라도 바로 나로 화할 줄은 몰라요. 간장은 종지에 담아야 하는데 사발에 담는 사람은 없죠. 그렇듯이 용도에 따라서 내가 화해야 되거든요. 그런데 용도에 맞게 그릇이 될 줄 모르는 겁니다. 이게 열반계의 길인데 말입니다. 용도에 따라 삼십이응신으로 나투어서 응해 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우리 몸을 볼 때 몸 속에 들어 있는 입자가 한생각으로 돌아간다면 세균성·영계성·유전성들을 제어하기 때문에 여러분이 바로 보현보살이며 화신입니다. 생각하는 건 문수보살이자 법신이며, 변하지 않고 더하고 덜함도 없는 근본 심봉인 불성은 가만히 있으면 부처고요.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에게 여기저기 바깥에서 찾지 말고 안에서 작업을 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욕심이 많으면 싸움이 생기고 인간 살아나가는데 쫓기고 쫓기면서 난리 아닌 싸움을 하고 가는 겁니다. 지금도 몸으로 찔러 죽여야만 싸움이 아니라 세계적으로 볼 때 물질과 물질이 붙는 데도 있지만 알력으로 계속해서 싸우고 가지 않습니까? 먹고 먹히면서 말입니다. 그런 모든 문제를 어떻게 탈피하고 해결해 나갈 수 있겠는가. 그러기 위해선 바로 이 마음 도리를 알아야 합니다. 인간들이 자기부터 완성해야만이 모든 이치를 알고 일체제불의 골수를 안다는 것입니다.
항상 되풀이하는 얘기이지만, 한생각 원자에서 수많은 입자가 나가고 그 입자는 다시 분자로 화하여 우리 대기권의 모든 것을 커버해 주며 들이고 내고 하는데, 그 자체를 바로 레이다 망이라고 해도 됩니다. 오신통이라는 걸 우린 지금 현대문명의 발달로 기계화시켜 이용하고 있지 않습니다. 전파를 통해서 모든 것을 알게 되는데, 보세요. 전파를 통해서만이 아닙니다. 우리네 컴퓨터가 바로 숙명통이 된다고 볼 수 있죠. 그러니까 천안통, 천이통, 타심통, 숙명통, 신족통을 한데 합쳐서 불바퀴라고 한다면, 그 속에서 벗어나야 불바퀴를 다루고 굴릴 수 있겠죠. 지금 문명의 발달로 그렇게들 하고 있는데,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겁니다. 뭐든 입력을 해야 하고, 거리에 한계가 있고, 그렇지만 우리의 마음은 한계가 없는 것입니다. 쥐구멍 속에도 들어갈 수가 있고, 땅 속에도 들어갈 수가 있고, 물 속에도 들어갈 수가 있으며, 허공이든 어디이든 차이가 없고 거리가 없으니 무한량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열심히 공부하면 세계에 평화가 올 수 있지 않겠습니까? 지난번에 이라크 대통령이 “알라신이 우리를 이기게 할 것이다” 하고 하면서 “상대 쪽의 악인들은 다 죽는다”라고 합디다. 쿠웨이트에서 기름으로 인해 돈을 많이 가졌다고 해서 얼마만큼을 주겠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적다고 다 뺏으려고 하지 않습니까. 욕심이 그렇게 많은데 부처님인들 도와주시겠습니까. 그렇다면 페만이 아니고 패망인 것이죠.
마음 한생각에 사는 걸 이렇게 고달프게 만들어 놓으니 나라를 이끌어 가는 대변자가 세상에 그렇게 어리석을 수 없어요. 그런 머리를 가지고 나라를 통치하니 칠 년이나 싸웠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어찌 되었건 그러는 동안에 국민들은 얼마나 고생을 하겠습니까. 아버지 어머니 잘못 만나면 자녀들이 고생하듯 말입니다. 그래서 나는 늘 하는 말이 그겁니다. 누구의 탓도 하지 말라구요. 자녀들은 부모 탓하지 말고, 부모들은 자녀들 탓하지 말며, 이웃을 탓하기 이전에 자기부터 돌아다보라구요. 자기가 이 세상에 나왔으니 자기 탓이지 왜 남의 탓을 합니까.
만약에 여러분이 바닷물이라면 나도 바닷물일 것이고, 여러분이 종지라면 나도 종지입니다. 둘이 아니기 때문이죠. 조금 전에도 말한 바와 같이 자기가 자기를 믿지 못해서 한 생각을 해도 ‘에이, 그게 될까?’ 하고 반신반의합니다. 자기가 자기를 못 믿기 때문에 실험을 못하고 체험을 못하는 것입니다. 그대로 여여하며 실상인데 말입니다. 습으로 인해서 착이 붙고 욕심이 붙어서 모든 일을 그르치고 참나를 밝게 못 보는 겁니다.
오늘 처음 오신 분들이 많아서 되풀이 얘길 합니다만, 여러분이 지수화풍이라고 허무하게 생각하지 마시고 자신을 고귀하게 생각하세요. 그리고 지수화풍은 지수화풍을 먹고 살기 때문에 광력 전력 자력 통신력이 충만히 내 마음대로 쓸 수 있도록 주어져 있는 겁니다. 그러기에 오신통의 불바퀴를 체가 없는 내 마음이 자유자재로 굴릴 수 있는 것이 과학적으로도 증명되어 있죠. 그러나 그것은 한계가 있지만 우리 부처님 가르치신 뜻은 무한입니다.
내가 이렇게 말을 할 때 여러분이 받아들여서 먹을 수 있다면 음파가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오늘은 음파가 돌아오지는 않습니다. 여러분, 정말 갸륵하십니다. 알고 모르고를 떠나서 말입니다. 여러분이 바다가 된다면 거기에는 더러운 것, 깨끗한 것이란 이유가 붙지 않습니다. 폭포수가 흘러 내려가면 모여서 바다가 되는데, 더러운 물이나 깨끗한 물, 똥물이나 핏물 등이 한데 합쳐지니 그냥 젖는 것뿐이죠.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가 붙으면 그것은 벌써 걸린 사람들이에요.
그래서 예전의 선지식들께서도 말씀하셨지요. 사구를 따지는 사람들은 장님이 코끼리 만지면서 허둥지둥하는 사람이고, 활구를, 그것도 이름해서 아는 사람들은 코끼리를 타고 피리를 부는 사람들이라구요. 그러니 우리가 이것이 옳으냐 저것이 옳으냐 하기 이전에, 부처도 없고 중생도 없다고 한다면 그럼 무엇이 있겠습니까? 불 반짝하는 그 찰나밖엔 없습니다. 벌써 조금 전에 얘기한 것도 과거로 돌아가는 겁니다. 그냥 영원한 오늘이에요. 그런데 오늘이라는 것도 없다는 것입니다.
화해서 나툰다고 했는데, 여러분은 이 생각 저 생각이 금방 돌아가는 것을 망상이라고 해서 끊어버려야 한다고 합니다. 살아 있는 사람이 생각을 어떻게 끊습니까. 끊는 게 아닙니다. 다시 말하지만 숙명통 컴퓨터에 과거로부터 지은 대로 입력이 되어 현실에 하나하나 나오는 걸 거기다 다시 입력을 해서 맡겨 놓는 작업을 한다면 서서히 녹을 겁니다. 어떠한 생각으로 나오든 간에 끄달리지 말아야 해요. 왜냐하면 그걸로 인해서 부처를 이루는 것이니까요. 그런 생각이 없다면 목석과 다를 바가 없지 않겠습니까. 목석이 어떻게 부처를 이루겠습니까. 그러니 망상이라는 생각도 두지 마시라는 겁니다. 좌선 입선 와선 행선, 간화선 묵조선이 모두 둘이 아니라 그대로 이름해서 참선입니다. 여러분이 변소에 갔으면 그곳에 부처가 계실 것이고 법당에 왔다면 부처님은 법당에 계실 것입니다. 자기가 없는데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렇다고 해서 예의를 지키지 말라는 것이 아닙니다. 불자로서 계율을 지키고 예절을 갖추되 그 모든 것을 누가 하느냐는 겁니다. 자유인이 되는 길은 자기가 자기를 다스릴 줄 알고 인간으로서 올바른 행을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 자라야만이 만물의 영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자유인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사람이 되어야 하며,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자기 마음을 잘 다스림으로써 행복과 화목을 가져오며, 얼토당토않은 욕심을 부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자녀들도 부모들의 그런 언행을 듣고 보아서 조금도 탈선하는 일이 생기지 않을 것입니다. 어른들이 아이들을 고독하게 하고 배고프게 하기 때문에 잘못되는 것이에요. 학교에 맡겨 놓으면 다 되는 줄 아는 부모들의 잘못이죠. 그들이 누구입니까. 바로 여러분입니다. 자식들이 더 발전을 해서 올바르고 진실하게 나갈 수 있는 아이들로 길러 주는 부모들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불교는 어느 종교라는 것을 떠나서 전체이지 어느 한 부분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누누이 얘기했습니다. 불(佛)은 영원한 생명의 근본이며, 우리가 말을 하고 생활을 하는 자체가 교(敎입니다. 바로 우리들의 생활인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살고 있는 현재의 생활만 소중히 할 뿐, 눈 깜짝할 사이에 변하고 망가지고 부서져서 소멸되어 간다는 것을 실감하지 못합니다. 순간순간 변질되어 가고 있다는 것을 번연히 알면서도 말입니다.
불바퀴 속을 뛰어넘지 못해서 이승 저승 간의 왕래를 못하니, 살아생전에 열반의 맛을 알아야지 살아서 모른다면 죽어서도 살아서의 차원 그대로 가지고 가는 겁니다. 그러니 이 몸 가지고 있을 때 이 도리를 모르면 안 된다고 하는 겁니다. 더욱 열심히들 정진하세요.
모든 것은 한마음에서 나옵니다. 사랑도 자비도 한마음에서 나오고, 의학 과학 천문학 지리학 등 일체가 한 보배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 LA 개원식에서 어느 박사는 그런 말을 하더군요. 연구하는데 있어서 마음 도리를 공부함으로써 자신의 학문을 더 깊이 있게 연구하게 되었다고요. 그분뿐만 아니고 알래스카에 계신 어느 분도 이 공부를 하다 보니 병원에서 많은 사람들을 건질 수 있어서 정말 감사하다는 겁니다. 하나하나 철두철미하게 지켜나가고 배우려고 애쓰는 분들이 많이 계십니다.
혹 어떤 이들은 자기는 돌아보지 않고 남을 우습게 알고 원망하며 깔보는데 그 아상 아만이 바로 자기를 죽이는 요인이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린 풀 한 포기도 업신여길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 뱃속의 촌충 한 마리로도 증명이 되는 일입니다. 미생물에서부터 인간까지 왔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는 겁니다. 여러분 오장육부의 생명들이 천차만별로 있는 것을 보세요. 그것이 운행을 해줘야만이 움직일 수가 있고 살아갈 수가 있는 것이죠. 그리고 지수화풍이 아니라면 살 수가 없고, 또 그것이 아니라면 과학자들이 연구를 할 수도 없습니다. 전파가 오고 가지 않습니다. 생명을 유지할 수도 없으며 땅바닥에 발을 디딜 수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두절되고 말죠.
여러분, 열심히 정진하십시오. 비극적인 역사는 말끔히 씻어버리고 새 맛이 나는 역사를 가져올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서도 말입니다. 내 개인적 원한이 있다고 해서 찍어 눌러서는 열쇠를 받지 못합니다. 모든 것을 포괄적, 세계적으로 생각해서 너무 높은 것은 조금 낮추게 하고, 너무 낮은 것은 조금 올라가게 하는 그런 마음, 한마음의 도리로서 지혜롭게 폭넓은 마음을 낼 수 있는 뜻을 갖는다면 그대로 진행이 될 겁니다. 그렇게 되면 세계평화를 가져올 수 있는 것이죠. 남북통일도 되고요. 마음을 다루게 되면 몸도 다룰 수가 있어요. 세계를 움직이는 건 마음이란 말입니다. 여러분이 TV를 통해서 세계를 보고, 싸우는 것도 TV를 통해서 보고 들으며, 인공위성을 띄워서 두루하고 전파를 통해서 모든 것을 알게 되는데도 그걸 파악을 못하십니까?
돈오점수가 옳으냐, 돈오돈수가 옳으냐 하고 말들이 많은데 거기에 휘말릴 필요 없습니다. 이것도 아니고 그것도 아니요, 이것도 옳고 그것도 옳으니까요. 젖는 것은 핏물에도 젖고 똥물에도 젖고 맑은 물에도 젖습니다. 그냥 물에 젖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자신들을 다스려 나가면서 가정의 화목을 깨뜨리지 않고 자녀들도 그런 마음으로 키운다면, 아무리 비뚤어진 아이라 해도 “내가 왜 아버지 어머니 말씀을 안들었을까?” 하고 후회를 하면서 착한 2세들이 될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안에서 새는 바가지는 바깥에서도 샌다고 합니다. 깨져서 물이 줄줄줄줄 새니까 얼음 빙판을 만들어 남들을 미끄러지게 해서 부상을 당하게 만들지 않습니까.
‘사람 사람마다 마음으로 가설이 되어 있기 때문에 이 사바세계는 관세음보살이라고 이름을 지어 놓으셨구나. 우리들이 관해 보고 우리들이 관해 듣고, 우리들이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 않느냐. 이것이 관세음보살이라는 그 이름 아니냐. 우리들을 떠나서 관세음보살이 어디 있으며 지장이 어디 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시고 법당에 오면 부처님 몸과 내 몸이 둘이 아니요, 부처님 마음과 내 마음이 둘이 아니며, 그 생명과 내 생명이 둘이 아닌 것을 알아야 합니다. 풀 한 포기의 생명도 둘이 아니지 않습니까.
나무와 나무가 마음을 이어서 열매를 맺는 거 보시지 않았습니까. 사랑을 해서 말입니다. 저 건너편의 나무와 이쪽의 나무가 사랑을 해서 열매를 맺는 거 아시죠. 이것이 마음과 마음으로 이어가는 전파인데, 가정에서도 남편이나 아내나 자녀들이 아무리 잘못되어도 ‘전력은 둘이 아니니까 전깃불이 켜지는 건 전력만 있으면 되겠지.’ 하고 맡기는 겁니다. 서로가 부모 자식임을 알고 있는 것이 바로 가설이며, ‘내 주인공과 네 주인공이 둘이 아니기에 둘이 아닌 주인공만이 해결할 수 있다.’ 하고 믿고 맡길 때 불이 들어오게 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등을 켜는 겁니다. 그래서 내 마음이 스스로 밝아지니 자신을 다스리게 되며, 나쁘게만 보던 것도 ‘아하! 이런 거로구나.’ 하고 좁은 소견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자기가 스스로 알게 되는 것이죠. 그러므로 가정이 화목하고 이웃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마음이 천국이라면 모두가 천국이지만 여러분의 마음이 병이 들면 모든 것이 악으로만 보이고 나쁘게만 보이니 그게 바로 지옥이요, 다른 사람도 그렇게만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나 난 이렇게 합니다. 나쁘면 어떻고 나쁘지 않으면 어떠랴. 내 걸음 걷는 것 다스려 가면서 올바르게 진실하게만 꾸준히 걸어갈 뿐이다. 그렇게 생각하면 인연됐던 사람들이 언젠가는 착해지고 잘못된 것을 다 떼어버리게 됩니다. 다만 더디고 빠를 뿐이지요.
오늘은 어떻게 하다 보니 순서도 없이 이렇게 됐습니다. 여러분도 이 생각 하다가 저 생각 하다가 그러시죠? 어떤 사람은 날 보고 체계 없이 한다고 그러는데 우리들 살림살이를 보십시오. 아까도 얘기했지만, 금방 아이가 들어와서 “아버지!” 하고 부르면 “그래!” 하면서 말과 행이 순간 아버지로 변하고, 친구를 만나면 순간 친구로서 말과 행을 하게 되고, 아내를 만나면 ‘여보’ 뭐 어쩌고 하면서 금방 남편으로 변하고, 또 그러다가도 아버지나 어머니가 부르면 금방 자식으로 변하면서 말과 행이 자식이 되니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속에 체계는 역력한 것입니다.
말을 할 때는 둘이 아니지만 말을 다 하고 떨어지면 둘이 아닌 까닭에 너는 너고 나는 나거든요. 그러기에 진리는 끝없이 이어가는 길이니라 한 것입니다. 언제나 이렇게 했던 얘기 또 하는데도 찾아오니, 저 사람 못난 것도 내 못난 거려니 하고 찾아오는 것 같애요. 그저 못난 사람들끼리 못났든 잘났든, 마음공부 하는 사람들이니 한마음으로 뭉쳐서 열심히 해 봅시다. 한마음으로 틀어 놓지 않으면 돌아갈 수 없습니다.
어느 선사께서 종으로 사는 사람의 시주를 받고 그 마음이 갸륵해서, 쉽게 말씀드려서 안락사를 시켰대요. 그래서 몸을 바꾸어 정승의 자식으로 태어나게 했는데 관직에 있으면서 불쌍한 사람들을 많이 건져 주게 했답니다. 그런 거와 같이 우리가 이 몸으로 얼마나 지탱하겠습니까? 이 몸 가지고 있을 때 마음 도리를 배워야지, 모르고 죽어서는 영화의 내용처럼 그런 일이 벌어지는 것이죠. 살아 있을 때 나투고 응해 주고 굴레에서 벗어나서 불바퀴를 굴릴 수 있어야 이름해서 열반이고 자유인인 것이지, 살아서 못 벗어나는데 죽어서 무엇을 벗어납니까. 그러니 나를 떠나서 맹종하지 마세요. 부처님이 계신다 해도 내 몸과 같이만 생각하세요.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내 아픔같이만 생각하면 됩니다. 올라가려고 하지도 말고 내려가지도 말고, 잘났든 못났든 나같이만 생각하고 열심히 정진해야 합니다. 둘로 보지만 않는다면 자비심으로 행을 하실 겁니다.
길을 가다가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소 한 마리 토끼 한 마리를 본다 해도 ‘저걸 어떡하나 살려줘야지.’ 하고 생각할 것도 없이 보는 순간 한생각 하는 겁니다. 이럴까 저럴까 할 시간이 없는 거예요. 보는 순간 자동적이죠. 여러분으로 인해서 배우는 게 많고, 또 여러분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어찌 그 도리를 알았겠습니까. 나는 저 산천초목, 풀 한 포기, 물 한 방울을 보아도 ‘너희들이 아니었더라면 내가 어찌 이 도리를 알았겠노. 그러니 너희들이 모두 스승이며 굴러다니는 돌 하나마저도 스승 아닌 게 없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선지식들께서 천칠백 공안을 말씀하셨는데 알고 보면 공안 아닌 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여러분 몸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게 화두라는 걸 아시고, 수박이라면 무조건 잘라서 잡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 씨를 심어서 싹이 나고 또 열매가 열리면 모든 중생들을 다 먹이고도 되 남는다는 것을 알아야 하구요. 그럼 오늘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고 하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요즈음 벌어지고 있는 이라크 문제도 더 퍼지지 않게 마음을 내 주시는 것이 국민 된 도리요, 세계적인 인간의 도리이며, 한마음의 도리라는 것을 생각하고 더 간절하게 마음들을 모아 가시기 바라면서 이만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