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중 스님
수행자도 예외는 아니다. 한그루 든든한 소나무 같은 수행자도 있고 풀섶에 향기를 감추고 사는 야생화 같은 스님도 있다. 강원에서 4년을 함께한 도반 일중 스님을 생각하면 큰 파도 없이 잔잔하게 흐르는 강물 같은 느낌이 든다.
일중 스님은 지금 부처님의 나라 인도 델리 대학에서 석사과정을 졸업하고 박사과정 공부를 하고 있다. 아마도 어느 한 생애는 남방 어느 나라의 수행자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남쪽에서 오래도록 공부를 하고 있는 도반이다.
강원을 졸업하기 전 몇몇 도반들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참 고민도 많았다. 강원 교육과정에 관한 것부터 사원경제의 형태가 많이 달라질 것을 염려해서 자급자족해야 하는 상황에 대비해야 할 것을 모색했던 일들이며, 앞으로 우리 불교가 지양해야 할 방향까지 종단의 모든 것을 짊어진 사람들처럼 고민하고 토론하곤 했다.
일중 스님은 남달리 원전을 번역하는 일에 마음을 두었었다. 그래서 빨리어나 산스크리트를 공부해서 원시경전을 번역하고 싶어했다. 그 원을 따라 강원을 졸업하고 일년 남짓 후에 스리랑카로 유학을 떠나게 되었고, 약 9년을 스리랑카에 머물며 캘라니아 대학에 적을 두고 불교철학을 공부하며 틈틈이 그곳 수행처를 찾아 남방수행법에 따라 정진하는 것에도 게으르지 않았다. 그리고 규모는 작지만 한국 교민 불자들과 유학생들을 위해서 콜롬보에 한국 사찰 보현정사를 마련해 불자들의 수행과 기도생활을 이끌어 나가기도 했다.
새로운 일에 대한 모험심이나 책임감이 누구보다 강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은데 그때는 어느 것 하나도 힘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저 도반이라는 사실 밖에는 말이다.
스님을 생각하면 강원 시절에 의기투합해서 다른 대중들 몰래 작은 일을 꾸몄던 것이 생각난다. 운문사는 봄이 되면 대중들에게 제일 먼저 봄소식을 알리는 것이 공양시간이다. 채 땅이 해동하기도 전에 오후 입선을 마치고 전 대중이 논밭으로 냉이 캐는 울력을 나가곤 했다. 그날도 냉이 울력이 있는 날이었다. 도반들과 삼삼오오 짝을 지어 호미와 봉지를 하나씩 챙겨 들고 가까운 밭으로 냉이를 캐러갔다. 일중 스님과 냉이를 캐면서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일을 하나 도모하기로 했다. 스님은 글재주도 있고 차분하고 나지막한 목소리를 가졌다. 그래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다.
냉이를 캐다 문득 일중 스님이 “진명 스님! 내가 겨울 방학이 하도 길어서 테이프에 부처님 말씀을 녹음해 봤는데 한 번 들어볼래요?” 라고 말했다. 냉이 캐는 것은 뒷전이고 밭에 주저앉아 윗반 스님들 눈치를 살피며 작은 녹음기에 담긴 테이프를 듣는데 정말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더 시간을 두고 반복해서 들어보고 그래도 괜찮으면 정식으로 스튜디오를 빌려서 테이프를 한번 만들어보자고 의견을 맞추었다. 그리고 시간이 날 때 마다 산책길에 그 테이프를 듣곤 했다. 물론 결론은 한가지였다. 아마 삭발목욕일이서 수업도 없고 입선을 쉬는 날이었을 것이다. 둘이서 따로따로 외출 허락을 받아 대구로 향했다. 미리 암암리에 스튜디오를 물색해 놓은 다음이었다. 무식하면 용감하다고 했던가, 그런 일에 문외한인 두 스님이 참 무모하게 일을 시작했다. 녹음실에서 몇 시간 심혈을 기울인 끝에 무사히 60분짜리 테이프에 녹음을 마치고 돌아왔다. 테이프 자켓을 아는 불자한테 의뢰하고 두 사람의 용돈을 털어 보시용 비매품으로 테이프를 하나 만들었을 때 그 성취감이 아직도 생생하다. 부처님 말씀 한구절 한구절을 진지하게 읽어나가는 일중 스님을 보며 앞으로 견고한 그 의지로 어느 것 한가지는 꼭 이룰 수 있는 도반이라고 생각했다.
작년 여름 델리의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히말라야 산 근처로 떠나며 보내왔던 엽서들이 도반의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진명 스님! 하루 종일 버스를 타고 8시간을 산속으로 와서 꼬박 이틀을 걸어 히말라야 품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이곳은 싱곰파, 코사인쿤트라는 산정호수로 들어가는 관문인데 문명의 세계와는 너무나 다른 세상입니다. 전기가 들어오지 않아 전나무 장작으로 수제비를 해먹고, 지금은 너무 추워서 방안에 있지 못하고 부엌의 아궁이에서 불을 쬐고 있습니다. 하늘은 청명하고 반달은 은빛으로 빛나고 숲은 고요합니다. 하루 24시간이 이렇게 충실하고 길다는 사실이 새삼스럽습니다. 산이 좋습니다. 산을 사랑합니다.”
■불교방송 ‘차 한잔의 선율’ 진행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