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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뻐꾸기의 ‘얌체 산란’
최성렬
조선대 교수, 불교철학

뻐꾸기 울음소리로 여름이 왔음을 감지하던 때는 참으로 소박한 사람들의 세상이었다. ‘뻐꾹 뻐꾹’ 시간을 알려주는 ‘뻐꾸기 시계’는 그런 시간의 상징성 때문에 히트 상품이 되었다. 그런데 때로는 그 소리가 ‘가난’을 유감(遺感)시키기도 한다. 보릿고개가 한창일 즈음이면 그 울음소리가 유난히 슬퍼진다. 마음씨 고운 아우를 죽인 눈먼 형의 회한 섞인 울음소리로 들리기 때문이다. 우리의 설화는 형을 늘 욕심쟁이로 설정해 놓는다. 이 얘기도 예외는 아니다. 먹고살기가 힘들어 마로 연명하던 시절의 얘긴 모양이다. 큰 마를 캐어 오면 언제나 형에게 주는 아우였다. 하지만 형은 그런 착한 아우를 오해하여 죽여버리고 만다. 작은 것만 자기에게 주었을 것이라고 …. 진실은 언제나 슬픔을 삼킨 후에 드러난다. 고민하던 형은 죽어서 뻐꾹새가 되었다. 그래서 마가 영그는 오뉴월이면 ‘포복포복’하고 슬피 운다는 것이다. 가난 속에서 힘들게 살아온 비원(悲願)이 투사된 것일게다.
또 어떤 때는 ‘얌체’로 묘사되기도 한다. 뻐꾸기의 탁란(托卵) 습성에서 그런 생각을 하게 된 듯하다. 제 둥우리를 틀지 않는 뻐꾸기는 알을 낳을 때가 되면 저보다 몸집이 작고 알의 크기나 색깔이 비슷한 꾀꼬리나 멧새의 둥지에 얌체 산란을 한다. 기왕에 탁란을 했으면 잘 품어주기(抱卵)라도 하면 덜 미울 텐데 그것마저 꾀꼬리한테 미루는 놈이 뻐꾸기다. 그런데도 꾀꼬리는 제 알인 줄 알고 뻐꾸기의 알을 품어 새끼를 깐다.
생태적으로 꾀꼬리보다 뻐꾸기 알이 먼저 부화된다고 한다. 뻐꾸기의 부화기간은 열흘 남짓한데 꾀꼬리는 그보다 하루 이틀 늦기 때문이다. 부화된 뻐꾸기 새끼는 이틀을 넘기지 않고 알에서 갓 깨어난 꾀꼬리 새끼나 남아 있는 알을 둥지 밖으로 모두 밀어낸다. TV에서 본 그 모습은 ‘생의 의지’가 이런 것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그러고도 약 3주일간 꾀꼬리한테 먹이를 받아먹고 지내다 날 때가 되면 본래 제 어미에게로 가버리는 천생이 얌체 같은 놈이다.
뻐꾸기의 이런 유감과 원정출산은 너무나 닮아 있다. 미국 시민권을 획득하면 고등학교까지의 무상교육, 이민할 경우 영주권 취득용이, 군복무 기피 등 엄청난 혜택을 누릴 수 있다. 한국 국민에게 부과된 각종 의무는 회피하고 혜택만 누리겠다는 것이다. 일견 버거운 과외비, 치열한 입시경쟁, 병역의무, 취업난 등 불안과 막막함이 겹친 미래를 생각하면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생의 의지로 이해해주고 싶다. 그런데도 법의 맹점이나, 이중 국적을 악용하여 갖은 이익을 다 챙기려 드는 일부 가진 층의 행태는 뻐꾸기보다 더 ‘얌체’ 같다.
그런데 최근, 원정출산 그 자체는 위법이 아니라는 뉴스가 전해졌다. 앞으로가 더 걱정이다. 이미 해외이민의 열풍이 분데다가 이제는 원정출산에 가속도가 붙게 되었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 일부 계층이 누려온 비뚤어진 특권을 애써 눈감아온 중산층까지 원정출산 대열에 합류할 날이 멀지 않은 것이다. 이러다가 금수강산이 텅텅 비어 버릴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원정출산의 이익을 제로화하겠다고 할 수도 있으나 그것은 차선책에 불과하다.
‘도덕 불감증’. 다만 이것을 걱정해야 한다. 자녀가 성장하여 자신이 왜 이중국적자가 되었는지를 말해주는 부모에게 과연 존경심이 생길까. 요즘 급증하고 있는 원정출산을 보면서 엉뚱하게 뻐꾸기가 생각난 것은 ‘솥 적다’고 울어대던 소쩍새가 그리워서 였던 모양이다.
2003-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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