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로병사 막는것 스스로에게 짓는 惡
사람을 비롯해 모든 생명체들의 존재라는 것은 다른 존재에 의해서만 존재할 수 있다. 생명체는 인연에 의해 뭉쳐져 육신을 지니게 되었고 그 인연이 다하였을 때 각자를 이루고 있던 것들은 흩어져 각각의 길로 떠나면서 개체를 이루고 있던 우리의 육신은 소멸되어 흩어진다.
이렇게 인연이 흩어지게 되는 과정 중에 소위 육신의 병이라는 것과 늙음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면서 이미 개체를 이루어 그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있던 우리는 당황하고 슬퍼하고 괴로워하면서 그 인연을 붙잡고자 많은 노력을 하게 된다.
이러한 우리들의 노력의 일환으로서 대표적인 것이 소위 요즈음 눈부시게 발전하고 있는 생명과학이 아닐까 한다. 생명체의 물질적 부분에 있어서 가장 기본을 이루는 유전자에 대한 조작이 가능하게 됨으로써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최근 생명과학의 발달로 과연 우리는 무엇을 추구하는 것일까?
이 질문에 대답하기에 앞서 우리 불자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칠불통게(七佛通偈)를 다시 보면, 제악막작 중선봉행(諸惡莫作 衆善奉行 착한 일을 행하고 악한 일을 하지마라)이란 불자로서 깊이 명심해야 할 구절이 있다.
물론 대승의 불이적(不二的) 관점에서 선과 악이 둘이 아니며, 색즉시공, 공즉시색이라 하고 부처와 중생이 따로 없다 하지만, 이 게송을 보면 분명 불자라면 무엇이 선이고 무엇을 악이라 할 것인지 알아야 함을 말 해주고 있다. 물론 많은 기준이 이 이야기될 수 있겠지만, 나로서 굳이 이분법적으로 선과 악을 말한다면 법(진리)에 수순(隨順)하여 여법(如法)하게 사는 것이 선이고, 법에 어긋나게 사는 것이 악이 될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상 만물이 이합집산(離合集散)과 성주괴공을 되풀이하기에 생로병사는 제행무상의 진리에 조금도 어긋나지 않는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우리들이 너무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으면서 의심하지도 않는 병들고 늙음을 두려워하고 이를 막으려고 애쓰는 마음이야 말로 그 자체로서 어쩌면 스스로가 스스로에게 짓는 악인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철저히 자기화하는 과정을 통해, 인간의 몸을 받아 생로병사의 흐름 속에 있으면서 그 어떤 경우에도 본디 그러함을 알아 오직 연기적 인과에 따라 가고 옴에 있어서도 두려움 없이 작은 미소를 지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반야심경>에 있듯이 이렇게 우리를 이루고 있는 오온이란 단지 모였다가 흩어지는 공한 것임을 보아 애착으로 말미암은 두려움이 없어지지 않는가?
불자로서 삶을 이렇게 본다면 작금의 눈부신 생명과학의 발달로 우리가 무엇을 추구하며 또 어떻게 추구해야 할 것인지가 저절로 드러나게 된다. 결코 허황된 탐착심을 위한 길이 아닌 경전 말씀처럼 배고픈 자에게는 밥을, 목마른 자에게는 물을 줄 수 있도록 가야 될 것이다.
■서울대 수의과대학 면역학교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