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병관아주대 교수, 사회학
권력은 타인이나 타집단의 의지에 반하여 제약이나 강제를 행할 수 있는 상태로 정의된다. 권위는 사람들이 정당한 것으로 인정하고 있는 권력을 지칭하며, 따라서 사람들의 자발적인 복종을 수반한다.
근자에 우리사회의 위기감은 위험수위에 근접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물론 우리 현대사에서 사회적 위기감이 높지 않았던 때가 얼마나 있었으랴만은, 최근의 위기감은 90년대 후반의 경제위기의 재현에 대한 우려와 겹치면서 우리 사회시스템 전반에 대한 비관론적 전망으로 확산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한번 망가져봐야 해. 그래야 다시 일어날 수 있을거야”라는 자조적 농담이 많은 이들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만큼 사회시스템에 대한 우리 자신의 신뢰가 땅에 떨어진 상태이다. 현실은 어렵고, 미래에 대한 전망도 희망도 불가능한 상황이니 갑갑할 수 밖에 없다. 그러니 전부 자기 주장만 나올 수 밖에.
사태의 핵심은 무엇인가. 우선 사회의 변화와 발전은 하나의 파동을 그린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늘 좋을 수는 없는 것이다. 문제는, 안 좋을 때에 이를 잘 관리하고 빨리 되살아날 수 있는 끈기와 탄력을 발휘하는 사회여야 하는데, 우리 사회는 그것이 안 되는 것이다. 이에 대한 사회적 동의가 없는 것이다. “내 방식대로 하든지, 내 배를 불려주든지, 아니면 다 죽고 말지, 뭐”라는 식으로 풀 수 있는 것은 아니지 않은가.
책임은 누가 져야 하며, 어떻게 풀어나가야 하는가. 사회 지도층의 책임이 가장 크다는 말은 늘 정답으로 등장한다. 구체적으로는, 정치인들의 무능과 무책임을 지적할 수 있을 것이다. 정부와 공직자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는 해법을 찾을 수 없다. 궁극적으로는 우리 국민이 함께 풀어나가야 하는 문제라는 점을 인식하고, 다만 좀 빨리 푸는 방법이 무엇일지를 함께 고민해야 할 때인 것이다.
해법의 일단은 우리 사회의 귄위구조를 하루빨리 튼튼하게 세우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위기 상황에 처해 있는 근본적 원인은 권력 소재의 불분명함도 아니고, 또 정치권의 소모적 내분도 아니다. 그보다는 우리 모두가 서로 타인의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가 우리 사회에 팽배해 있기 때문에 현 위기상황이 구조적으로 대단히 심각하다고 보이는 것이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의 말을 빌면, 권위에 대한 최대의 위협은 조소와 경멸이다. 오늘날 조소와 경멸의 대상이 아닌 권위가 우리 사회에 몇이나 남아 있을까? 정치인, 지식인, 종교인, 언론….
그러나 확고하고 안정된 권위구조의 양적, 질적 존재는 한 사회의 무게중심을 낮고 안정되게 유지하는데 있어 반드시 있어야 하는 필요조건이다. 권위의 실종에 의해 무게중심이 붕 떠있어 조그만 충격에도 출렁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다.
정치권, 언론, 모두 책임이 있지만, 궁극적 해법은 역시 우리 국민의 몫이다. 공동체의식에 기초한 장기적 합리성에 대한 믿음이 필요하다. 국민들의 필요에 의해, 국민들에 의해 창출되는 합리적 권위를 세워야 한다.
이처럼 동의에 기반한 합리적 권위구조를 당장 만들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인정하기 어려운 이들에게도 권위를 위임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슬픈 현실이다. 하지만 언제까지나 닭과 달걀의 딜레마에서 헤맬 수는 없지 않은가. 어디에서부터인가 풀어나가야 한다면, 시기를 놓치기 전에 하루빨리 합리적 권위구조를 만드는 노력이 우리국민 모두의 합의에 의해 시도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사회 위기의 근원은 권위의 부정과 부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