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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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명스님의 스님이야기
혜은스님

로버트 풀검의 <내가 정말 알아야 할 모든 것은 유치원에서 배웠다> 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무엇이든 나누어 가져라, 정정당당하게 행동하라, 물건은 항상 제자리에 놓아라, 남의 마음을 상하게 했을 때는 미안하다고 말해라, 네가 어지럽힌 것은 네가 깨끗이 치워라. …”
누구나 다 아는 내용이지만 실천하기 힘든 일이다. 세간에 사는 사람들이 살아가며 기본으로 행해야 하는 것을 유치원에서 배우는 것이라면 우리 출세간에 사는 수행자들은 초심시절인 행자시절과 학인시절에 배우는 것이 아닐까 싶다.
나에게는 초심을 다지고 평생 수행자로서의 길에 나침반을 제시한 어른이 계시다. 청도 운문사 문수선원장으로 계시는 혜은스님이다. 스님과의 인연은 오래 전 행자시절부터다. 이름난 나한기도 도량인 사리암에서 원주소임을 보던 때였다. 외유내강이라는 말이 스님을 잘 표현해 준다고 할까. 작은 체구에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오는지, 아마 공심으로 살아오신 힘이 아닐까 생각한다. 산 중턱에 자리해 어려운 여건임에도 불구하고 사리암 중창불사를 원만히 회향하고 운문사 주지 소임을 역임하셨다.

눈은 마음의 창이라고 했던가, 그렇다면 수행자의 말과 행동은 그 수행자가 품고 사는 사상의 표현일 것이다. 내가 운문사 강원에 입학하기 전이었을 것이다. 그때 나는 내면에 크고 작은 갈등을 품고 있었고, 승가공동체에 대해 회의적이었다. 그 알량한 분별심 때문에 강원에 가기 싫어하는 내 마음을 어떻게 아셨는지 조용히 부르셨다. 아랫사람이 견책 받을 만한 잘못을 했을 때 스님은 항상 나지막하게 타이르셨다. 부처님 말씀이나 선사스님의 말씀으로 비유를 들어 이해를 시키고 잘못을 바로 잡아주시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당신 수행생활에서 얻은 지혜로운 말씀은 설득력이 있었다.
“진명아! 선지식은 항상 역순의 경계에 함께 있단다. 순경계의 선지식 보다는 역경계의 선지식이 네가 반듯한 수행자의 모습을 갖추어 가는데 좋은 거울이 될 것이고 너를 단단한 수행자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니 강원에 가면 모든 대중스님을 부처님처럼 생각하고 하심하고 인내하며 살도록 해라. 그것이 수행자로 살아가는 첫째 조건이다” 라고 하셨다. 오직 부처님과 역대 선사들처럼 반듯한 수행자만 좋은 선지식이라고 생각했던, 아직 마음이 어린 나에게는 참으로 어려운 말씀이었다. 어떻게 언행이 바르지 못한 사람이 선지식이 될 수 있단 말인가 생각했다. 강원에서 많은 대중이 부처님처럼 보이고 역경계가 ‘참 선지식’이라고 느낄 때 나는 비로소 스님의 말씀을 마음 깊이 실감할 수 있었다.
“스님, 대중을 부처님처럼 볼 수 있는 눈을 갖게 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라고 글을 올렸더니 오히려 “네가 그렇게 알아 들어주니 고맙다” 라고 하셨다.
한참이나 어린 아랫사람이지만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고, 조용하고 간곡하게 말씀하시는 스님의 성품은 인자하신 수행자 그 자체다. 휴지 한 장도 아껴 쓰고 주인 없이 흘러가는 물도 함부로 넘치게 쓰면 안된다고 하시는 혜은 스님은 시은(施恩)을 대할 때는 누구보다 엄격하셨고, 작은 토굴에서 공부하다 도움을 청하는 스님들이 있으면 소리 없이 보살피셨다. 운문사 주지 소임을 보고 계실 때 어느 정월에 인사를 드리러 갔더니 소임을 수행하시는 틈틈이 사경을 하고 계셨다. 마음밭을 갈고 계시는 당신 생활의 질서가 농부의 손길에 잘 정돈된 밭이랑 같으신 분이다.
스님은 어느 해인가 암 진단을 받아 그동안 두번씩이나 대 수술을 받으셨다. 두번째 수술을 받고 빠르게 회복을 하시고난 후 남은 생은 덤이라고 최선을 다해 사신다고 하셨다. 누구나 사람이라면 크고 작은 병마에 시달리며 살기 마련이지만, 거의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암이라는 병마를 거뜬히 물리치고 지금도 문수선원에서 대중들과 함께 죽비소리에 따라 앉으시는 여여 하신 스님의 모습은 후학들의 귀감이 되는 선지식의 모습 그대로다.

진명스님은 1983년 운문사로 출가, 84년 정심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다. 운문사 승가대학과 동국대 선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 선학과를 수료했다. (사)‘맑고 향기롭게’ 사무국장 역임했으며 현재 불교방송의 ‘차 한잔의 선율’을 7년째 진행하고 있다.
2003-0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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