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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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진스님
20여년전 신장·각막 보시후 입적
장기기증 첫 스님…사회에 큰 반향

내 지갑속에는 보물처럼 아주 소중하게 간직한 것이 있다. 바로 생명나눔 실천회에서 발급한 장기기증 서약증이다. 비록 사후에 기증하는 조건이지만 불교 단체에서 운영하는 곳이라 편안한 마음으로 누군가를 살리는데 필요한 것들을 모두 줄 수 있으리라. 나는 오랫동안 불교계에서 운영하는 장기기증 단체가 만들어지길 학수고대 기다려왔고 ‘생명나눔실천회’가 생겼을 때 누구보다도 기뻤다. 그 이유는 바로 나의 사형 혜진(慧眞) 스님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20여년전인 82년, 그때는 장기 기증이 보편화 되지 않았고, 일반의 인식 또한 매우 낮았다. 그러한 때 혜진 스님이 선구적으로 장기기증을 하고 입적했다. 아마도 혜진 스님이 장기기증을 한 것은 스님들 가운데 최초였을 것이다. 혜진스님은 80년 통도사 강원을 졸업하고는 대강백이 되고자 자장암에서 백일기도를 하고 있었는데 유난히 머리가 아팠다고 한다. 진통제를 수십알씩 먹어야 겨우 아픔이 가라앉을 정도였다. 백일기도가 끝나는 날 병원에서 검진받은 결과 뇌종양이었다. 급성으로 뇌종양이 온 것이다. 대구 동산병원에서 일차 수술을 했다. 연락을 받고 중환자실에 가보니 머리에 붕대를 감고 누워있던 혜진스님은 얼굴이 퉁퉁 부어서 알아보기조차 쉽지 않을 정도였다.
혜진 스님 곁에 속가 누님인 혜조 스님(현 청룡암 주지)이 손을 꼭 붙들고 있어서 겨우 찾았다. 다시 연세대병원에서 2차 진료를 했는데 종양이 악성으로 판명되었다. 그 때 우리나라에서 뇌종양에 걸려서 병원을 찾는 이가 한해 6백명 내지 7백명 정도 된다고 말한 담당 의사는, 혜진스님의 경우 그중에서도 한 두명 정도 걸리는 악성이라 더 이상 수술이 곤란하다고 했다. 바로 옆에서 듣고 있던 나는 가슴이 답답하고 정신이 멍했는데 당사자 혜진스님은 담담하게 받아들였다. 스님은 서울 구룡사에서 요양을 했는데 증세가 더욱 악화되자 구룡사 주지스님의 배려로 한양대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사형 사제 몇 명이 번갈아 가며 간병을 했다. 나도 두달 정도를 병원에서 먹고 자며 간병을 했다. 뇌종양은 한번씩 통증이 찾아오면 못견딜 만큼 극심했고 진통제 주사를 맞아야만 잠시 고통이 잠잠해 졌다. 진통제 주사의 부작용은 구토를 유발해 곁에서 지켜보는 사람조차 고통스러웠다. 혜진스님의 강원도반들이 문병을 와서는, (혜진스님이)훌륭한 강백이 될 정도로 실력도 있고 꼭 될 줄 알았는데 젊은 나이에 너무 아깝다고 이구동성으로 아쉬움을 토로했다. 혜진 스님이 장기 적출수술 동의서에 서명하던 날 우리들은 병실에서 조촐한 파티를 열었다. 혜진 스님은 다음생을 기약하며 자신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을 주고자 했으며 무엇보다 장기기증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기뻐했다. 그때 구룡사 주지 정우스님이 스님의 장기를 받는 사람으로 불교인을 1순위로 하고 수술비를 마련할 길 없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사람을 일부러 찾았으나 그 또한 쉬운 일은 아니었다. 우여곡절 끝에 젊은 아가씨 한 명과 봉화 지역에 사는 집배원이 각각 스님의 신장을 받게 되었다.
당시 같은 병원 18층에 입원해 계시던 탄허스님께서 몇 번이나 혜진스님 병실에 오셔서, 모든 병은 전생에 지은 업으로 인해 생기는 마음병이니 그 어떤 병앞에서도 마음을 잘 다스려야 한다, 승려는 모름지기 죽음 앞에 초연해야 한다, 이렇게 장기를 기증하겠다고 발원한 이상 많은 이들의 귀감이 되었으니 이것이야말로 대승보살이 나아가야 할 길임을 누누히 강조하셨다.
당시 여성 월간지인 <여원>에서도 혜진스님의 이야기가 다루어져 사회적으로도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을 일깨우고 확산하는데 일조를 했다. 장기기증을 꺼려했던 일반인들의 인식을 바꾸고, 절에서 수행만 하는 줄 알았던 스님들에 대한 세인의 고정관념을 바꾸는 계기를 혜진스님이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이었을 텐데 혜진스님은 한치의 흔들림 없이 초연하게 입적했다. 스님을 곁에서 지켜본 나도 장기기증을 하고자 서원했고 불교계에 장기기증운동본부가 생기자 당장에 기증서약을 하였다.
음력 5월 6일 혜진스님 기재날이면 나는 우리 절 신도들에게 장기기증 서약서를 나누어주며 동참을 권유한다. 젊은 사람들이 흔쾌히 서약하는 것을 보며 자신의 모든 것을 보시하고 간 혜진스님을 떠올린다. 우리나라 모든 불자들이 생명나눔을 실천하는 그날까지 혜진스님의 발원은 유효할 것이라 생각하며… ■분당 연화사 주지
200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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