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일체평등, 제도개선 필요
법무부가 호주제 폐지와 개인별 신분등록제 도입을 담은 민법개정안을 입법예고할 예정이라고 밝힘에 따라 사회 각계각층의 다양한 의견이 분출되고 있다. 이에 호주제 존폐론자들이 주장하는 찬성과 반대의 근거는 무엇이며, 불교경전에서는 호주제 문제의 골격을 이루는 남녀평등 문제를 어떻게 말하는지 알아보았다.
<정리=오유진 기자>
Yes
이화(불교여성 개발원 사무국장)
사회 곳곳에 여성의 참여가 늘어가지만, 우리의 사회·문화적 의식과 제도적 장치들 속에는 여전히 여성에 대한 차별이 존재한다. 그 중 하나가 호주제다.
호주제가 폐지되면 이혼율이 증가하고 가족관계가 해체될 것이란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호주제가 존재하는 지금도 우리나라의 이혼율은 세계 2위로 선두를 다투는 실정이다. 문제는 변화하는 사회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분출되는 요구들을 수용할 수 있는 이념의 부재에 있다. 전통적인 문중, 가족의 정체성에 대한 것들은 사문서인 족보가 대신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또 호주제가 우리 고유의 전통이라는 주장이 있지만, 호주라는 말은 조선총독부가 일본식 조선호적령을 만들면서 사용됐다. 조선 후기의 호적을 보면 지금처럼 당연히 아들이 호주를 승계하는 것이 아니라 부인이 호주를 승계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지금도 사회는 변하고 가족의 형태는 다양해지고 있지만, 현행 가족법은 변화된 현실을 담아내지 못하고 있다. 법이 부계혈통을 우선적으로 강조하고 다섯 살 손자가 호주가 되어 집안을 이끌어가는 비현실적 상황을 연출한다면, 이것은 살아있는 법이 아니다. 여자, 이혼자, 소수자란 이유로 남성들의 어머니, 아내, 딸들이 차별받고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면, 그것은 결국 모두가 고통 받는 것이다. 이것이 호주제가 폐지되어야 하는 가장 큰 이유다.
No
구상진(참여불교재가연대 자문위원)
호주제란 가계계승제도를 호주 개인의 권리의무의 형태로 표현한 법률형식이다. 호주제 폐지는 직접적으로는 호주를 없애는 것이지만, 호주를 통하여 연결되던 집안이 모두 폐지되는 결과를 초래한다. 남녀평등의 구실로 가계계승을 부정하는 것은 부당하다. <대반열반경>에서 인도 마가다의 왕이 밧지국을 정복할 계획을 세우고 부처님께 지도를 구했을 때 부처님은 “밧지국민은 윗사람을 공경하고 조상의 사당을 보존·예법대로 제사를 지낸다”며 정복 될 수 없다고 설했는데, 이를 보더라도 선후대간의 유대는 반드시 보존되어야 한다.
또 호주제가 일제의 잔재라는 주장은 근거가 빈약하다. 왜냐면 일본은 명치유신 이후 1870년대에 성씨를 만들었고, 일제시대 이전에 이미 한민족에게는 성씨와 가문이 존재했으며, 호주제는 장부 형식만이 도입된 것이기 때문이다.
불가에서는 부처님과 조사들의 가르침에 따라 선조의 천도의식을 행하고, 현세에서의 불행한 가족관계는 전생의 업보로 인한 것이라는 인식이 있다.
기존 가족법규에서 이혼자나 혼외자의 어려움을 배려한다는 구실로 종래의 전통 가족문화 전체를 적대시하고 이들을 위주로 가족법 전반을 변경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 호주제는 아름다운 우리 가족제도의 근간이므로, 문제부분을 개선해야지 결코 폐지돼서는 안 된다.
▧ 경전에서 본 남녀평등
경전에서는 남녀평등으로 축약되는 호주제 폐지 개정안에 대해 어떻게 제시하고 있을까. <대살차니건자 소설경>에서는 “세상에는 남자가 우월하고 여자가 열등하다는 관습이 있지만 부처님은 남녀간의 차별을 두지 않으며, 다만 불성을 아는 것을 가장 존귀하게 여긴다”라며 남녀의 구분이 중요치 않음을 강조했다. 또한 “남녀는 일체 평등하다. 하늘은 아비이고 땅은 어미이므로 천지가 낳은 것이지, 무슨 다를 것이 있으랴”고 <보문품경>에 제시, 남녀를 평등하게 간주하고 있음을 살필 수 있다.
불교가 처음부터 인도의 카스트 제도에서 파생된 계급의 모순을 지적하고 나선 점, 교단에서 출신성분을 개의치 않았다는 점과 여성의 출가가 승인되고 초기 불전에서 깨친 여성들의 이야기를 밝히고 있는 점 등은 불교가 근본적으로 남녀는 물론 인간, 나아가 중생의 평등을 설하는 가르침이라는 사실을 뒷받침 해준다.
그러나 <사분율>이나 <법화경> 등에는 남녀평등을 의심케 하는 사건들이나 표현들도 상당 수 있다. 하지만 경전이란 시대를 뛰어넘는 열린 내용이니만큼 관망적이나 이해의 차원을 넘어선 해석학적인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