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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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안에 있는 화살을 빼자
이우상
소설가·대진대 문예창작과 교수

시간과 공간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것은 깨달은 자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닌 모양이다. 지금 한국 사회는 시공을 초월해서 목청을 돋우는 이들이 난무한다. 반 백년 세월을 거뜬히 퍼와서 질펀하게 판을 벌이고 있다. 해방 직후에 들불처럼 번졌던 남남 분열과 좌우 대립 현상이 21세기에 다시 활활 타오르고 있다.
소설의 기본 에너지는 갈등이다. 억지로라도 갈등을 야기하여 서사구도를 만든다. 갈등이 없는 소설은 존재 가치가 없다. 개인과 개인, 개인과 사회, 개인과 운명 등등. 그런 토대 위에 고통스런 갈등이 설정되어야 그럴듯한 픽션이 된다. 갈등이 아슬아슬하게 첨예화되어 있을수록 소설의 재미는 증대된다. 갈등의 증폭을 위해서는 살인과 죽음마저도 불사한다.
지금 우리 사회는 소설보다 더 뜨거운 가열 양상이 벌어지고 있다. 보수와 진보라는 깃발을 상대에게 창처럼 겨누고 일전을 벌일 기세들이다. 빨리 도화선에 점화를 하라고 외치는 형국이다. 저마다 명분과 세력이 탄탄하다. 규탄대회, 성명전, 연판장 등 온갖 성토의 함성이 자욱하다. 극단적 이념 대립과 사회 갈등이 정치 불안과 계층간 대립으로 확산되고 있다. 한동안 우리 사회의 깊은 속병앓이로 존재했던 지역 감정, 지역 갈등이란 말이 이제는 오히려 왜소해져버린 느낌이다. 어느 한쪽에 편입되지 않으면 사람 구실을 못하는 듯하다. 어느 단체에라도 가입해야 불안이 해소될 것 같다. 수많은 깃발의 향연에 풍덩 몸을 던져야 시대를 사는 사명에 충실할 것 같다.
부처님께서는 일찍이 보(保)든 혁(革)이든 그들의 속내를 훤히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경계의 가르침을 설했다. “무엇인가에 내 것이라고 집착해 동요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라. 그들의 모습은 메말라, 물이 적은 개울에서 허덕이는 물고기와 같다.” 덧붙여 설하시기를, “욕심에 끌리고 소망에 붙들린 사람이 어떻게 자기의 견해를 초월할 수 있을까. 그는 자신이 완전하다고 생각하는 바를 그대로 행하고 아는 대로 떠들어댈 것이다.”라고.
인간 지혜의 산물 중에 하나가 상징, 비유 그리고 허구화의 능력이다. 그것들은 대리만족을 제공하고 갈등 해소의 역할을 한다. 소설은 그 중 가장 허약한 도구이다. 강한 도구는 스포츠이다. 전쟁은 에누리 없는 현실이고 스포츠는 상징화된 전쟁이다. 그러나 스포츠는 정글의 법칙이 적용되는 제로섬게임이다. 융기하는 절대 승자와 소멸하는 절대 패자가 있을 뿐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제로섬게임장인가. 절대선, 절대악의 대결장인가. 문제는 도끼이다. 태어날 때부터 입에 도끼를 물고 나오는 것이 인간이라고 붓다가 경고하셨던가. 그것을 쓰지 못해서 안달하는 것이 지금 세태는 아닌가.
죽이고 할퀴고 쥐어짤 일이 뭐가 그리도 많은가. 소설에서는 그것이 가능하다. 현실은 숨고르기가 필요하다. 과장과 엄살은 소설에서 필요한 문법이다. 소설에는 숨고르기가 필요하지 않다. 현실에서는 준비운동부터 마지막 숨쉬기까지 모두 요긴한 동작이다. 누가 누구를 죽이고 살릴 일이 있을까.
지금은 전시가 아니다. 극렬한 전시에도 붓다의 가르침을 따르면 모두가 승리할 수 있다. 그래서 설하기를, “온갖 살아있는 것이 결국 장애에 부딪치는 것을 보고 나는 불안해졌다. 그리고 나는 그들의 마음 속에 차마 볼 수 없는 번뇌의 화살이 박혀 있는 것을 보았다”라고. 상대에게 쏠 화살을 벼리는 것에 열중할 것이 아니라 내 안에 박혀 있는 화살을 빼내는 것을 우리 시대의 화두로 삼아야 한다.
2003-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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