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위의 네 면, 동서남북에 불상을 새긴 것은 사방불이라 부른다. 사방불은 각면에 모시는 불상이 다르다. 예를 들어 서쪽에는 서방극락을 주재하시는 아미타불, 동쪽에는 동방의 약사불, 남쪽에는 정광불, 북쪽에는 칠보당불이 그러한 예이다. 남쪽과 북쪽은 사방불마다 모시는 불상이 약간씩 다르다. 경주 남산의 동쪽 기슭 부처골에는 탑곡마애조상군이 있다. 9m 높이의 네모진 바위 위에 7세기의 조각들이 부조로 새겨져 있다. 그런데 이 바위는 기본적으로 사방불이 중심이지만, 그밖의 다른 상들과 함께 종합적인 군상을 이루고 있다.
옥룡암에서 왼쪽으로 잠깐 올라가면 바로 마주치는 바위면이 탑곡마애조상군의 북쪽 면이다. 가운데 앉아 계신 불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목탑이 서 있고 그 밑에는 사자 두 마리가 지키고 있다. 왼쪽 목탑은 9층으로 고려시대 몽고란 때 불타 없어진 황룡사9층목탑을 연상케 하는 형상이고, 오른쪽 목탑은 7층이다. 쌍탑인 것이다. 여기서 왼쪽으로 돌면 동쪽의 바위 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 바위면에는 결가부좌를 틀고 앉아 계신 아미타삼존을 중심으로 위에는 비천들이 날고 오른쪽 아래에는 스님이 무릎을 끓은 채 아미타부처님께 병향로를 들고 향공양을 하고 있다. 왼쪽으로 조금 더 올라가면 보리수로 보이는 나무 밑에서 선정하는 스님상을 만날 수 있다. 다시 꺾어 남쪽 면으로 올라가면 삼존불이 계신다. 전반적으로 고졸하게 표현한데다 양쪽 보살들이 본존을 향해 약간 몸을 기울고 있어 정감이 더욱 넘친다. 그 앞에는 환조로 된 불상과 석탑이 놓여 있는데, 이들은 모두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것으로 바위 위에 새겨진 부조보다 시대가 떨어진다. 그리고 서면에는 옹색할 정도로 좁은 면이지만 자세히 보면 나무사이에서 선정에 든 불상과 비천이 쌍을 이루고 있다.
이 바위에는 불상뿐만 아니라 탑, 스님상, 공양자상, 그리고 역사상 등 다양한 상들로 가득 차있다. 그렇다면 절을 구성하는 분들이 모두 계신 것이 아닌가. 바위 속에 절 하나가 통체로 들어앉아 있는 것이다. 이러한 예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독특한 착상이다.
그렇다면 왜 절이 바위 속에 있는 것일까? 그것에는 사방불로만 해석할 수 없는 다른 무엇이 개제되어 있다. 신라인들은 불교가 들어오기 전부터 바위 속에 신이 계신다고 믿었다. 정령신앙, 즉 애니미즘이다. 경주 남산의 상사암과 같은 바위에는 불상이 새겨진 곳이 아니지만 지금도 할머니들은 치성을 올리는데 열중이다. 불교가 전래된 이후에도 정령신앙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바위 속의 신이 바위 속의 부처님으로 대체된다. 그래서 경주남산의 불상들은 대개 주위의 불필요한 돌덩어리를 훌훌 털어내고 바위의 가운데에 있는 불상을 밝히 드러내 보이는 느낌으로 조각된다. 그런데 탑곡마애조상군에서는 단지 불상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사찰 전부가 고스란히 있는 것이다. 이 얼마나 대단한 상상력인가? 사방불의 형식과 애니미즘의 상상력 속에서 이루어진 결정체가 바로 탑곡마애조상군인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