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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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각스님
어린 사미승에게도 늘 높임말
이름난 단청장…검소함 철저

어린 사미승에게까지 늘 경어를 썼던 분이 바로 혜각(慧覺) 노스님이다.
1976년 당시 표충사에 강원이 있었다. 40여 어린 승려들이 올망졸망 모여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며 살았다. 자연히 수계를 먼저 받은 스님, 절에 하루라도 먼저 들어온 사람으로 위계 질서가 정해졌다. 그러다 보니 한살이라도 많은 사형들이 큰 이유도 없이 어린 사제들에게 매일처럼 기합을 주었다(못살게 굴었다). 어린 나이에 공부한답시고 학교도 어머니의 자애로운 손길도 모두 포기하고 출가수행자의 길에 접어들었는데 왜 그리도 섧던지 남모르게 눈물을 많이 흘렸다. 몸이 힘든 것은 참을만 했지만 거칠게 날아오는 말이 어린 가슴에 비수처럼 꽂히는데 견디기가 힘들었다. 그냥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그때 한계암(寒溪庵)에 계시던 혜각 스님의 짐을 올려 드릴 기회가 있었다. 노스님을 가까이서 모시게 되니 두려움과 경외감이 교차하는 그 조심스러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스님은 내가 힘들어 보였는지 나지막한 목소리로 벙어리 3년 귀머거리 3년의 마음으로 꼭 견디어 내라고 용기를 주셨다. 그런데 가만히 들어보니 전부가 높임 말로 해주시는 것이 아닌가. 어린 철부지였고, 승려라는 것 하나 밖에 없었는데 꼭 법명 뒤에 스님이라고 불러 주시는 것이었다. 존대하는 말을 듣다보니 편안한 할아버지처럼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고만고만한 또래들 속에서 좌충우돌 힘겹게 살아가던 내게 마냥 혼자서라도 좋아할수 있는 스님이 계시는 것 하나만으로도 어려운 절집의 시집살이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이 되었다. 그 뒤로 스님이 계시는 암자에 자주 올라가 뵈었는데 그때마다 어린 고사리손을 꼭 잡으시고 스님의 자랑거리를 한보따리 풀어놓으셨다. 당시 스님께선 이름난 단청장(丹靑匠)이었다. 나라에서 부여하는 무형문화재 기능보유자 단청장. 그러나 스님은 승려에게는 그런 직함이 안 어울린다고 한사코 거부하셨다. 혜각 스님께선 신문이나 그림, 우표, 옛날 돈 등을 소중히 모으셨다. 나중엔 그것들로 병풍을 만들어서 독특한 예술세계를 조성하기도 했다. 이렇게 수집한 것들을 나중에 모두 통도사 성보박물관에 기증하셨다. 돈으로는 도저히 측량이 불가능한 역사적 자료라 큰 절(통도사)에서도 귀하게 여겨 지금도 박물관에서는 특별전이 열리고 있다.
스님은 참 자상하셨다. 오래된 작품들을 보여주셨을 뿐 아니라 단청에 대해서도 자상하게 설명해 주셨다. 스님께선 또 검소함을 원칙으로 생활하셨다. 얼음이 두껍게 얼었던 폭포위 암자에서 겨울을 나셨던 스님. 나는 쌀과 마른 누룽지 한푸대를 올려드리곤 했는데, 스님은 누룽지를 물에 불려서 끼니를 때우곤 하셨다. 늘 누룽지를 드시는 스님에게 어느날 내가 “누룽지가 맛있으세요?” 묻자 스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수행자는 절대 살이 쪄서는 안된다”고 말씀하셨다.
스님께선 후학들을 길러내는데도 열심이셨다. 상좌인 동원 스님은 지금도 사명암에 주석하면서 불화와 큰 절들의 단청을 해주시는데 미적 감각이 유난히 빼어나다.
내가 1978년 통도사 강원으로 공부하러 갔을때 혜각 노스님께서도 연로하셔서 통도사에 주석하고 계셨다. 스님은 강원에서 수학하는 후배들의 모범이셨다. 통도사 무풍한송(舞風寒松) 속을 힘차게 걸어다니시던 스님의 모습이 너무나 기상차 학인들은 우러러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당시는 자동차가 많이 없어, 무슨 일이 생기면 젊은 스님들은 택시를 불러타고 나가곤 했는데, 혜각 스님은 언제나 걸어 다니셨다. 노스님이 걸으니 젊은 스님들은 택시 타는 것이 죄스러워 아주 화급한 일이 아니면 모두 걸어서 다니기로 결의하는 일까지 생겼다. 후학들을 대견하게 생각하셨던지 스님께서는 일필휘지로 쓰신 불(佛)자를 학인들에게 한 장씩 내려주셨는데 정말로 대단한 명필이었다. 스님께서는 자비하셔서 혜각스님의 글을 소장하고픈 스님이나 법호를 듣고 찾아오는 일반인들도 원하는대로 흡족하게 스님의 글을 받을 수 있었다.
포교당에서 살다보면 많은 이들을 만난다. 머리를 깎고 있는 한, 아무리 나이가 어린 사람을 만나도 누구에게나 경어를 쓰려고 노력하는데 이것은 모두 혜각 노스님에게서 받은 영향이다. 요즘 세속의 말들이 너무 거칠다. 서로를 배려하는 경어야말로 이 사바세계를 따뜻하게 원만하게 하는 마지막 보루가 아닐까.
■분당 연화사 주지
200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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