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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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 상(4)
웃음의 향연

한국미술의 특징을 꼽으라면, 나는 주저 없이 낙천성을 든다. 세상을 밝고 따뜻하게 바라보고, 행복한 생활을 염원하는 가치관을 우리 미술에서 손쉽게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탑에서 부처님의 사리를 지키는 인왕상이 귀엽고, 무덤 앞의 문인석은 무심하게 웃고 있으며, 귀신을 쫓아야 할 호랑이가 거세되어 바보스럽게 등장하고, 민화 속에는 꿈과 사랑의 환상이 펼쳐진다. 우리만큼 웃음과 해학이 가득한 미술도 드물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시기의 작품이라도 미술 속에서는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어려운 처지와 힘든 상황을 긍정적인 사고와 해학적인 여유로 극복하는 지혜가 돋보일 뿐이다. 이것이 수많은 침략을 겪으면서도 5천년의 역사를 지킬 수 있었던 비결인 것이다. 국난을 밝음과 웃음으로 극복해내는 지혜를 우리민족은 밝히 빛내었던 것이다.
불상도 마찬가지이다. 인도의 불상을 보라. 대개 편암이나 사암의 어두운 색 돌이라 분간하기 어렵지만, 인자한 미소가 흐르고 있다. 하지만 인도불상의 미소는 위엄 속에 가려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중국에 와서는 미소가 풍부해진다. 특히, 북방민족인 북위의 불상에서는 그 독특한 미소에 빠지게 된다. 중국을 답사하다보면 종종 마주치는 북위 불상에서 그 미소만 보더라도 여행의 피로가 말끔히 사라질 정도이다. 고구려 불상처럼 길고 갸름한 얼굴에 눈가와 입가를 살짝 올려 짓는 미소는 매혹적이다.
우리나라 서산마애삼존불에서는 아무런 거리낌이 없는 미소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아무런 권위와 어떠한 형식에도 얽매이지 않아 자연스럽고 환한 웃음이다. 이처럼 활달하고 시원하게 웃는 부처님은 세상 어느 곳에서도 만나기 힘들다. 물론 그 연원을 따지면 중국 공현석굴(鞏縣石窟) 제1굴의 불상과 같이 북위시대의 미소에서 좀더 부드러워진 동위시대의 미소와 어느 정도 관련이 있지만, 그 웃음을 훨씬 자연스럽고 자유롭게 승화시킨 능력을 백제인은 갖고 있는 것이다.
서산마애삼존불의 세 분은 각각 웃음이 다르다. 가운데 석가불은 풍만한 몸집과 원만한 상호, 그리고 시원하게 큰 눈에 쾌활한 웃음이 가득하다. 반갑게 맞이하는 듯한 넉넉한 웃음을 보면, 처음 보는 이라도 쉽게 친근감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권위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주고 있다. 누구든 아무런 거리낌 없이 맞이하는 웃음은 부처님과 우리의 거리를 말끔하게 없애준다. 오른쪽에 보배구슬을 양손으로 꼬옥 쥐고 서있는 제화갈라보살은 매우 자신감 넘치는 웃음을 띠고 있다. 또 왼쪽에서 오른발을 무릎 위에 올려 반가를 틀고 오른손을 얼굴에 대고 사유하는 미륵보살상의 웃음은 매우 귀엽다. 친근함을 나타내는 데는 웃음만큼 효과적인 방편도 드물다. 이처럼 웃음의 향연을 펼친 서산마애삼존불은 우리 민족이 갖고 있는 낙천적인 기질을 웅변적으로 보여주는 상징인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
2003-0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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