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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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득(전북대 윤리학 교수)
동거, 함정 가득한 행복

새로운 문화 코드로 ‘고양이족’이 등장하였다. MBC 드라마 ‘옥탑방 고양이’의 위력이다. 결혼이란 제도의 울타리에 얽매이지 않고 사랑하는 사람과 한 지붕 밑에 동거하는 남녀가 바로 고양이족이다. 사실 결혼이란 모험이다. 20~30년 간 서로 다른 문화 속에 살면서 서로 다른 가치관을 지닌 남녀가 오직 ‘사랑’ 하나로 ‘한 몸’을 이루고 산다는 것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이혼율의 증가가 이를 잘 말해준다.
북유럽에서는 동거가 결혼만큼이나 흔할 정도로, 서구에서 동거란 새로운 형태의 대안 가족이다. ‘옥탑방 고양이’의 두 주인공 경민과 정은은 그냥 눈이 맞아 충동적으로 성관계를 가진 뒤 동거에 들어간다. 카메라폰 광고가 생각난다. “일단 찍고 본다. 사랑은 그 다음이다.” 오늘날 동거는 카메라폰 사랑이 삶의 현장에 그대로 반영되어, “일단 동거하고 본다. 결혼은 그 다음이다.” ‘사랑→육체’의 공식은 이제 더 이상 동거 젊은이에게 고리타분하다. ‘육체→사랑’의 수순이 이들에게 정석이다. 사랑과 결혼의 정석이 바뀌고 있는 셈이다.
왜 청춘남녀들은 ‘고양이’를 키우고자 하는가? 이유 없는 반항인가? 그냥 또 하나의 사대주의로 유행에 불과한가? 결혼만큼 한번의 선택으로 인생이 결정적 영향을 받는 것은 이 세상에 없다. 그런데 결혼은 불확실한 미래요, 쉽게 번복할 수 없는 사회 족쇄이다. 그래서 결혼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고자 갖가지 묘안이 개발되었다. 그 중 하나가 궁합이다. 그러나 궁합은 궁합일 따름이요 현실은 그렇지 않다. 연애를 해도 도무지 사람 속마음을 알 수 없다. 연애를 통한 사랑 고백, 그것 믿다가 큰 코 다친 남녀가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팔자소관을 탓하면서 수많은 부부들이 ‘평생 원수’로 삶을 마감하곤 했다.
운명의 노예가 아닌 운명의 주인이고자 하는 현대인은 팔자를 걷어치우고 이혼을 선택하였다. 하지만 이혼 역시 그 희생이 너무 크다. 청춘을 되돌릴 수도 없고, 또 자녀 양육의 문제 역시 만만찮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아예 싱글 족으로 살고 싶어 한다. 하지만 독신은 너무 외롭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고 싶다. 이 욕망을 충족시키면서 결혼의 불확실성을 피할 수 있는 길은 없는가? 그 답이 다름 아닌 동거가 아닌가? 사주팔자에 따른 미신적 궁합이나 관념적 사랑을 통한 정신적 궁합, 그 어느 것 하나 결혼의 불확실성을 제거해주지 못했다. 이제 믿을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직접 경험밖에 없다. 동거는 바로 경험적 사랑을 통한 육체적 궁합의 추구이다. 이는 단순한 과학의 논리이다. ‘관찰과 실험’을 직접 해보고 예상되는 결과가 나오면 결혼하고 그렇지 않으면 ‘실패한 실험’으로 둘은 쿨 하게 헤어지면 그만이다.
과연 동거란 결혼의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행복을 보장해 줄까? 답은 ‘아니오’이다. 최근 영국 사회조사연구소 발표에 따르면 동거 커플은 생활 형편과 정서가 불안정하여 바람도 더 피운다고 한다. 아이들의 문제는 더 심각하다. 동거 커플 밑에서 자란 자녀들은 이혼 부모의 아이들보다 공부도 못하고 비행에 빠질 가능성도 더 높다고 한다. 영국의 경우 동거 열 커플 중 여섯 쌍이 결혼하지만, 이 중 35%가 10년 안에 헤어지고 있다. “살아보고 결혼한다”는 육체적 궁합 역시 미래를 보증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결혼 생활에는 법칙이 없다. 법칙이 없기 때문에 예측은 아예 불가능하다. 열길 물 속 깊이는 알아도 한 길 사람 마음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궁합, 연애, 동거. 그 어느 것도 결혼의 확실성을 보장하지 못한다. 결혼은 다만 두 남녀가 미래지향적으로 함께 만들어 가는 살아있는 생명체일 따름이다.
2003-0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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