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형폐지 등 인권 운동 앞장
시대아픔 온몸으로 감싸안아
스님이라고 해도 모두 다 같은 길을 가는 것은 아니다. 네거리에서 목탁을 치며 인권운동에 뛰어든 스님이 있는가 하면, 산중에서 소나무와 벗하며 피나는 정진을 하는 스님 등 각각 다르다.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은 잊혀질만 하면 모습을 보인다. 바람같이 왔다가 바람같이 사라지는 바람같은 스님이다.
오늘도 웬 목탁 소리가 나서 절(서울 종로구 사간동 법련사) 밖으로 나가봤더니, 아니나 다를까, 가랑비가 소리없이 내리는 중에 황색 가사를 수하고 목탁을 치는 스님이 이쪽으로 오고 있었다. 모자와 상하 동방은 검은 색이고 유독 하얀 구두가 눈에 띄었다. 스님이 광화문 쪽 방향에서 오는 걸 보아 미국대사관 앞에서, ‘양키 고우 홈’ 뜻으로 나무 약왕보살 정근을 하다가 저녁 밥 때 한끼 먹으려고 오는 성 싶다.
진관스님이 절 입구 쪽에서 모시로 깔끔하게 차려입은 한 비구니 스님에게 느닷없이 말을 던진다. “스님, 목탁 치고 다닙시다.”
그 비구니 스님은 움찔 하고 피한다.
식탁 한쪽에 자리를 잡고 앉자마자 쉼 없는 무용담이 쏟아졌다. 이렇게 진관 스님과 함께 있으면 이야기 삼매에 쉽게 빠지는 것 같다.
저녁 후였다. 배웅 인사를 하다말고 현관에서 그만 한시간 반 넘게 이야기는 계속되었다. 그저 어정쩡한 자리에 서서 이야기가 오래 계속되다 보니 옆의 의자에 앉았다가 섰다가 하며 들었다. 정말 대중을 휘어잡는 힘이 있는 것은 체험에서 우러나오는 진솔한 이야기 때문일 것이다.
오대산 월정사에서 밤늦게 내려오다가 까치밥이 될 뻔 했다는 이야기는 실감이 났다. 그때 운전은 법주사 스님이 했는데 약간 마음이 상기된 상태에서 운전을 하다가 사고를 친 것이다. 사고 순간 앞 유리를 머리로 받았는데, 이때 유리창을 깨고 밖으로 빠져나간 머리가 피범벅이 되었으나 그냥 손으로 머리에 묻은 유리조각을 쓸어내리고 몇 시간 후에 병원에 갔다는 것이다.
후유증은 일년이 지나서 왔다. 머리가 띵 하게 아프고 어지러웠다. 주위에서는 이대로 가다가는 등뼈까지 아플 것이라고 했다.
이 모두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인권을 위해 밤낮으로 날뛰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어디서나 진관 스님은 자유자재 하다. 최근에는 삼 년 동안 국립선원 격인 교도소에서 있다가 나와서, 사형 폐지 운동에 앞장서고 있다.
밥을 주고 옷을 주고 독방을 주니 교도소는 아주 좋은 선방이란다.
진관 스님은 8·15 범민족대회에 참석한 것과 비전향 장기수 북 송환 운동을 벌인 것이 결국 국가보안법을 위반했다 하여 96년 10월과 99년 8월에 각각 구속 수감되기도 했다.
다음은 일간지에 난 기사 내용이다.
“인권운동으로 수행하고 시로 법문하는 스님은 <지나간 세월>을 펴냈다. 수행과 삶이 단절돼 있지 않듯이 삶과 시 역시 떨어질 수 없음을 보여주려는 듯 스님의 시는 모두 민주화와 인권 운동이라는 역사의 현장을 지키며 잉태됐다.
이번 시집은 비전향 장기수 송환운동 참여로 구속됐다가 대통령 특별사면으로 출소한 98년 3월부터, 99년 8월 범민족대회 참여로 긴급 체포되기까지 1년 6개월 동안 쏟아낸 시어들이다.”
누가 시킨다고 그렇게 할 것인가. 목숨을 떼어놓고 사는 사람 같다. 언제 봐도 열정적이다.
다른 사람은 스님 더러 실속을 차리라고 하지만 그게 잘 안된단다. 성격상 그런 모양이다. 북한 돕기에 누가 손을 뻗치지 않아도 끝까지 노력한다. 평양 시민의 발이 될 자전거를 100대 기증한 일도 그렇다.
죽어도 인권, 살아도 인권, 금생에 죽어 내생에 다시 태어난다고 해도 아마 이 길을 멈추지 않을 스님이 바로 진관스님이다.
진관 스님은 희곡을 쓴 적이 있다. 그게 지난 5월 명동 창고극장에서 20년 만에 무대에 올려졌다. 연극 제목은 ‘염화미소’.
이 작품은 87년에 <희곡문학> 가을호에 실렸고 신인희곡상을 수상한 작품이다. 한 수행자가 장님 어머니를 모시면서 깨달음을 향해 나아간다는 불교 희곡이다.
배웅을 하면서 스님의 뒷모습을 보고 있자니, 홀연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무엇이 한스러워 그러는 걸까. 무엇이 그를 산중에서 끌어내 거리로 나서게 하는 것일까. 잠시 생각을 해 보았다.
진관스님은 이 시대의 아픔을 온몸으로 감싸 안고가는 스님이다. ■송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