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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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정배(서울불교대학원대학교 총장)
어린생명 또한 부처입니다

인간에게 가장 친근한 것이 어머니의 품이다. 천하의 악독한 사람도 어머니라는 이름에는 숙연해지기 마련이다. 남성 우월주의에 물들어 여성을 폄하하는 사람도 어머니가 있기에 세상에 태어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런 어머니가 자녀들의 목숨을 자기 임의대로 앗아가 버렸다면 어떻게 봐야 할 것인가? 자식의 목숨을 자신의 목숨과 동일하게 생각하여 함께 죽어야 한다는 생각이 아직도 우리 주변에 남아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지 않을 수 없다.
오래 전 이야기가 아니다. 바로 며칠 전 인천에서 발생한 사건이다. 생활고에 지친 한 여인이 아이 셋과 함께 아파트 옥상에서 투신자살한 것이다. 그것도 죽기 싫다고 발버둥치는 아이들을 내던져버리고 함께 죽은 비정한 모정이다. 죽을 수밖에 없도록 내동댕이친 이 사회의 무관심도 문제려니와 자신만 죽으면 자식들이 홀대 받으며 고생할 것이라 생각한 여인의 어리석음도 탓하지 않을 수 없다. 한국사회에 아직도 마더콤플렉스가 남아 있단 말인가? 유교적 가부장 사회의 유습인 마더콤플렉스는 자식밖에 의지할 곳이 없었던 조선시대의 가련한 여성상을 말하는 것이지만 지금은 시대적 환경이 달라졌기에 그렇게까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이기도 하다.
어머니와 자녀들이 함께 죽은 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초등학교 학생이 아파트에서 투신 자살한 사건이 발생했다. 폭력을 행사하는 아버지가 무서워 죽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내 자식 내 마음대로 하는데 누가 뭐라느냐는 것이 아직도 무지한 사람들의 생각인 것 같다. 그렇지만 중진국을 벗어나 선진국 사회로 진입하겠다고 큰소리치는 이 사회의 청소년 관리 대책이 얼마나 훌륭하기에 자라나는 새싹이 죽음을 선택하지 않으면 안되도록 방치한단 말인가?
최근 국가경제가 어렵고 정치가 혼탁하다 보니 서민들의 삶에 드리운 그림자가 짙어지는 것이 아닌가 진단해 본다. 자기 한 몸 보전하기도 어렵다 보니 이웃의 아픔을 돌아볼 여유가 없는 것이다. 무엇보다 걱정스러운 것은 자식의 생명을 부모의 마음대로 해도 괜찮은 것으로 생각하는 어리석음이다. 자식은 이미 하나의 인격체이며, 그렇기에 그 누구도 그 생명을 좌지우지할 수 없다. 불교적으로 말한다면, 불성을 지니고 있는 고귀한 인격체이며 자라나고 있는 부처의 새싹들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어린 생명을 꺾었다는 것은 결국 부처님의 싹을 잘랐다는 의미가 되므로 그 두텁고 무거운 업의 굴레를 피해갈 수 없다. 이미 어떤 인연으로 이 세상에 왔건만 자신의 몸을 빌렸다는 이유로 그들의 생명에 위해를 가한다는 것은 부처님의 몸에 피를 내게 해서 받게 되는 중죄에 해당하는 것이다.
세상이 어려우면 남을 돌아볼 여유가 없다. 사회가 어려우면 자신의 몸 하나 지키는데 급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렇지만 한 시대, 한 세상을 공유하고 산다는 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지중한 인연이 있는 것이다. 이제 정치인은 위민정치의 모범을 보여야 할 것이며, 경제인은 국가경제의 기틀을 잡아야 할 것이다. 교육자들은 사랑과 화합으로 포용하는 인간을 양성하도록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나라의 장래는 암울하다 말하지 않을 수 없다. 희망과 용기를 잃지 말자고 부처님의 말씀을 인용하고자 한다.
한 가정에는 아내와 자식 그리고 부처님으로 장엄하고(一室莊嚴妻子佛)
하루하루 살림은 쌀과 소금 그리고 꽃꽂이가 있어야 하네(六時經濟米鹽花)
2003-07-30
 
 
   
   
2024. 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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