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쪽같은 성품…번다한 일 싫어해
‘유명세’피해 산속토굴서 홀로 수행
시골 사진관에 법정 스님의 사진이 걸려있었다. 아마 볼 일이 있어서 마을에 내려왔다가 사진관에 들러 필요한 사진을 찍으신 모양이다. 시골은 좁아서 금방 소문이 난다. 법정 스님 사진이 시골 사진관에 걸려 서울에까지 알려졌다.
“하하, 사진이 그런데 실물 현품이면 어떻겠어요?”
“유명세도 대단할 거예요.”
사실 불일암에서 그런 일이 있었다. 책을 보고 찾아온 한 사람이 법정 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법정 스님을 뵈려 왔는데요. 스님이 꼭 법정 스님 같습니다.”
법정 스님이 대답하였다.
“아, 그래요? 더러 법정 스님과 비슷하다는 말을 들어요.”
그 사람이 다시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법정 스님을 뵈러 왔는데.... 어디 계실까?”
그러다가 불일암을 내려가는 편백나무 숲길에서 한 스님을 만났다.
“스님, 불일암에 법정 스님 안 계셔요?”
볼 일 보려고 산에 오르는 송광사 스님이 대답하였다. “아니, 계실텐데요.”
그 사람은 갸우뚱하고 말하였다.
“키가 큰 스님 한 분만 계시구 아무도 없어요.”
“하하, 그 분이 법정스님이세요”
“네? 그 분이?.... 하하하.”
강원도 평창 생활에서는 죽을 뻔한 일이 있었다. 갑자기 미끄러져서 뒤로 벌떡 넘어져 뒷골을 다쳤다. 법정 스님이 냇가의 미끄러운 돌 위를 잘못 딛어 그만 실족을 하고 만 것이다.
“아, 사람이 이렇게 해서 죽는 것이구나!”
스님은 쓰러져서 한참을 누워 있다가 정신이 들자 이런 생각을 하였다고 회고하였다.
“마을에 약을 사러 가려다가 그만 두었어. 웬 중이 미끄러져 넘어졌다고 할 것 같아서…”
‘국민 스님’은 약 하나 사기도 힘들다.
유명하다는 점은 어쩌면 수행자에게 크게 짐이 되는 일일 것이다. 바람처럼, 물처럼, 흐르는 구름처럼 지내려고 해도 그냥 내버려 두지를 않는다. 발이 닿는 데까지 찾아온다. 처음에는 좋으나 나중에는 피해를 입히는 사례가 한 둘이 아니다.
어떤 사람이 스님을 위해 약을 가져왔다. 귀한 웅담이란다. 그는 큰스님네 문턱을 드나들면서 가짜 웅담을 드리고 용돈이며, 글씨 등을 받아 챙기곤 하는 ‘전문 꾼’이었다. 간이 나쁜 사람에게 특효약이라니 더욱 고마울 수 밖에 없었다. 그가 떠나간 후에 스님은 그것이 가짜 웅담인 것을 알았다.
스님네는 이런 어처구니없는 일을 당하고도 그저 웃을 수밖에 없다.
다른 이야기인데, 나는 법정스님께 늘 이런 생각이 든다.
송광사 원주로 여름 안거 용상방에 올랐을 때였다. 그때가 불일암 공양주를 마친 뒤였던가. 스님이 대중 공양비로 내게 봉투를 건네주고 가셨다. 찰밥 등 맛있는 공양을 송광사 대중 스님들에게 지어드리고, 절 살림에도 보태 쓰라고 하셨다. 그러나 나는 그 적지 않은 돈을 잃어버렸다. 지금도 그 일을 생각하면 마음이 찡하다.
스님이 위로의 말씀을 하셨다.
“그래, 전생 빚 잘 갚고 대중 공양도 잘 했어.”
돈에 관련된 일화가 또 있다.
광주에 나가 연장을 사 가지고 돌아왔을 때였다. 석공의 돌일에 필요한 연장들이다. 잔돈을 그냥 만원짜리에서 끊고 드렸다. 만원 아래 천 단위의 숫자는 반올림하듯 한 셈이다.
“뭘 샀어?” 저녁에 물으신다.
“네, 오함마, 대꼿, 호미를 하나씩 샀지요. 나머지는 여비와 밥값이었어요.”
다음날 아침이다. 스님이 또 물으신다.
“뭘 샀어?”
저녁에 대답한 것과 같이 대답한다.
“네, 오함마, 대꼿, 호미를 하나씩 샀지요. 나머지는 여비와 밥값이었어요.”
그 뒤 점심때 세번째로 물으셨다. 노트에 잘 적어서 올리자 더 말이 없으셨다. 계산을 우물쩍 넘기면 용서치 않는 성품이신줄 뒷날 알았다.
물은 건너봐야 깊이를 알고 사람은 지내봐야 속을 안다고 한다.
쪼개면 짝 소리를 내고 갈라지는 대쪽의 성품, 이것이 법정스님의 성품이다. 번다한 일에는 도저히 참지를 못하신다. 그래서 혼자 산속 토굴 아란야에서 평생을 지내시는 것 같다.
■송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