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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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인간소외
과거 농본사회와 달리 산업사회로의 발전은 전면적인 사고의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특히 자본주의의 발전은 생산과 이득으로 인간을 평가하고 있으며, 인간이 본래 지니고 있는 고유의 인간성에 대해서는 외면하고 있다. 더구나 기계화의 촉진과 자동화, 그리고 날로 심해지고 있는 정보화와 사이버화는 인간소외현상을 초래했다. 인간은 기계의 부품처럼 전락하게 되었다.
자본주의의 심화와 발전은 결국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도 급격한 변화를 초래했다. 그것은 삶의 진실을 엮어내는 인간성 전체와 전체로서의 관계가 아니라 인간을 대상화시키는 관계다. 대상화된다는 점에서 부분적으로는 재물과 재물의 관계로 나타나게 되었으며, 명령과 지시에 따라야만 하는 인간이 된다. 이렇게 대상화 된 인간은 상품으로서 임금에 의해 노동의 가치를 평가받게 되며, 그로인해 인간성을 상실하게 된다. 또한 이러한 체제 아래서 사람들은 인간의 본래적인 삶의 환희를 느낄 수 없기에 노동 자체는 고통이 될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노동 자체가 자신의 것이 아닌 자본가의 것이요 자본가를 위한 것이 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돌이켜 본다면 이러한 인간소외의 사회적 현상은 자연이 인간들에게 부여한 것도 아니며, 신의 선물도 아니다. 바로 인간 자신에 의해 만들어지고, 동시에 그렇게 규정되고 있는 자본주의라는 이름의 사회체제라고 말할 수 있다. 현대사회의 인간소외가 근원적 본질적으로는 이렇게 규정되기 때문에 이러한 기초 위에서 생성, 발전해 가는 사회현상이 인간소외를 부추키고 그것을 다시 사회에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불교의 입장은 근본적으로 현대자본주의의 사회현상에 동의하지 않는다. 물론 인간은 본래적으로 혼자요 단독자임에 분명하다. 그렇지만 사회라는 말이 성립됨과 동시에 역시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관계 속에서 살 수 밖에 없다. 그것을 불교적인 용어로는 연기적 관계라 말한다. 인간과 인간이 전인격적으로 교류할 수는 없지만 인간과의 관계를 벗어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라는 점에서 단독자로서의 의식 보다는 사회연대의식을 지녀야 한다고 강조한다.
혼자만이 아닌 누군가와 함께 존재해야 한다는 현실은 그래서 나의 일거수일투족이 다른 사람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직시하라고 말한다. 나의 의지와 무관하게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이미 다른 사람, 다른 존재와의 관계 속에 있는 것이다. 그래서 부모형제나 일가친척이 별도로 존재하지 않는다. 남의 아픔을 나의 아픔으로 승화시킬 줄 아는 사람, 남의 기쁨을 나의 기쁨으로 수용할 줄 아는 사람이 있다면 그야말로 진정한 친구요 형제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실 때 한 바라문이 찾아와 가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질문한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선남자가 집에 살면서 즐거울 때 함께 즐거워하고 괴로울 때 함께 괴로워하며 일을 할 때는 뜻을 모아 같이 하는 것을 가족이라 말하느니라.” 이상은 <잡아함경> 제4권에 나오는 내용이다. 물론 피를 나눈 부모형제가 소중하지 않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슬픔과 괴로움을 함께하고, 일과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 역시 소중한 사람들이란 의미이다. 망망한 인생의 바다에서 고독과 소외감을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은 바로 우리 자신과 음양으로 연결되어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부처님 당시에 울사가라라는 한 청년이 부처님을 찾아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달라고 요청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선지식을 가까이 하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란 대답을 한다. 선지식이란 정형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기에 여러 가지로 해석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이상에서 인용한 가족도 바로 선지식인 것이다. 동시에 그들이 있기에 우리들이 소외감을 벗어던지고 활달하게 살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생각해 보면 <증일아함경> 제34 칠일품에 나오는 가르침도 귀감이 된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공경하고 섬길만 한 일곱 종류의 사람을 거론하고 있다. 첫째는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둘째는 남을 연민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이다. 셋째는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이다. 넷째는 남을 보호하고 감싸는 사람이다. 다섯째는 집착하지 않고 마음을 비운 사람이다. 여섯째는 부질없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이다. 일곱째는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부처님께서 섬길만한 일곱 종류의 인간상에 대해 말씀하셨지만 사랑은 받는 것 보다는 주는 것이 행복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우리 모두 타인에 대한 사랑과 연민의 마음을 가지고 원하는 것없이 집착하지 않고 살 수 있다면 현대사회의 병리현상인 인간소외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3-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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