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제학
본지 논설위원
6월 24일, 충북 증평의 모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 컴퓨터 음란 사이트 본 후 성행위 모방. 6월 26일, 수원 모초등학교 5학년 강모(11)양 인터넷 온라인 게임료 170만원 때문에 꾸중 듣고 자살. 7월 6일, 서울 시흥동의 한 아파트에서 딸이 컴퓨터 게임에 빠진 것에 격분 베란다 밖으로 컴퓨터를 던져 지나가던 네 살 어린이 중상.
청소년의 인터넷 사용과 관련된 최근의 사건들이다. 흔히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 모든 매스컴에서는 약속이나 한 듯이 ‘충격적’이라는 말로 호들갑을 떤다. 하지만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는 사건임을 헤아리면 단순히 충격적이라는 말과 상투적 개탄의 목소리는 무책임하게 들린다. 소를 잃어야만 외양간을 고치는 우리 사회의 허약한 면역체계를 고스란히 드러내는 사건이 아닐 수 없기 때문이다.
최근 경기 지역 중고등학생들의 40% 가량이 인터넷에 중독되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또 학업이 낮은 학생일수록 증상이 심하고 그들의 대부분은 부모가 맞벌이를 하는 경우라고 한다. 단순히 학생 개인만의 문제가 아닌 구조적인 문제가 연관돼 있는 것이다.
이러한 일련의 사건을 보면서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라는 말을 떠올려 본다. 만약 오늘 우리 사회에서라면 맹자의 어머니는 어떻게 했을까. 천하의 맹자 어머니도 두 손 놓고 말았을 것이다. 이사 따위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인터넷은 이제 ‘물’과 ‘공기’ 같은 것이다.
청소년의 인터넷 중독에 대한 전문가의 조언이라는 것도 무책임하기는 마찬가지다. 누구나 다 아는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의 것들이다. 컴퓨터를 가족이 공유하는 장소에 두라. 숙제 등 할 일을 다 끝낸 뒤 컴퓨터를 켜라. 1시간 이상 하지 않도록 하라. 컴퓨터 사용 일지를 만들어 시간 및 내용을 기록하도록 하라. 부모 자녀 간 많은 대화를 나누어라. 그래도 안 되면 상담원 등 전문기관을 찾아라.
과연 이런 것들이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결코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누구나 다 아는 이것이 안 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다. 부모가 아무도 없는 낮 시간에 이루어지는 일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청소년 인터넷 중독의 진짜 불행은 당장의 현실에 있는 게 아니다. ‘미래를 탕진’한다는 데 있다. 학업 성적 같은 숫자가 미래를 결정하는 암울한 현실이 청소년들을 가상공간으로 몰아넣고 있는 것이다. 그곳에서나마 그들은 위안을 받는다. 이런 현실을 도외시한 채 지당한 말씀으로만 일관하는 해결책은 일회용 반창고에 불과하다. ‘모두 부자되세요’라는 말로 빈곤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과도 같다.
하이퍼리얼(hyperreal)이라는 말이 있다. 우리말로 ‘파생현실’이라고 옮길 수 있겠는데, 이미 우리는 그런 현실에서 살고 있다. 복제된 현실이 현실보다 더 강력한 현실로 작용하는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가상세계의 ‘아바타’에 집착한 나머지 170만원이란 돈으로 ‘자신이 아닌 자신’을 치장하다 끝내는 목숨을 버린 초등학생의 경우는 이러한 현상의 한 예에 불과하다.
“땅에 넘어진 자 땅을 딛고 일어서지 않으면 안 된다.” 국민소득 2만 달러와 같은 구호로 물질만능을 부추기는 한, 1만 달러도 안 되는 정신문화는 더욱 황폐화될 수밖에 없다. 한 푼 더 벌기 위해 청소년의 미래를 내팽개치는 과도한 경쟁구조와 물신주의가 완화되지 않는 한, 청소년 인터넷 중독은 막을 길이 없다. 문제는 현실이다. 우리 삶을 규정짓는 무형·유형의 현실을 건강하게 가꾸는 일만이 본질적 해결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