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밌고 구수하게 송광사 안내
78세 열반때까지 빼놓지 않고 계속
1966년부터 69년까지 승보종찰 순천 송광사 주지를 지냈던 인암(忍庵)스님.
보기에 따라서는 인암 스님을 애사(愛寺) 스님 혹은 그 반대 스님이라고 할 수가 있을 것이다.
종단 정화 후, 효봉(曉峰) 스님의 제자 구산(九山)스님이 송광사 삼일암(三日庵) 조실로 모셔질 때였다. 반대측에서 맨 앞에 나선 스님으로 인암 스님을 꼽는다고 전해 들었다. 허나 송광사의 정화 대중은 전혀 다툼이 없이 한 절 안에서 동주(同住)하여 정화의 모범적인 사례 사찰로 손꼽힌다.
이것은 당시 송광사 어른이신 취봉(翠峰)스님의 공으로 알려져 있다. 왜냐하면 취봉 스님이 부휴(浮休)선사 이후 풍암(風巖)스님 문도가 송광사를 400여 년 간 지켜온 문중의 수장이신데 그냥 말없이 타 문중을 받아들여 삼일암 조실로 모셨기 때문이다.
취봉 스님은 풍암 스님의 후손이다.
법정(法頂)스님은 풍암 스님 후손의 수장인 취봉 스님을 일컬어서 가장 훌륭한 스님의 한 분으로 칭송하는데 붓을 아끼지 않으셨다. 참으로 요즘에 보기 힘든 스님의 청정한 자취라고.
나는 취봉 스님의, 호수와 같이 평온하고 조용한 모습을 지금도 기억하는데 추억하는 자체가 큰 즐거움이다.
예나 지금이나 ‘송광사 스님은 매가리가 없는 스님’이라고 한다. 외부에서 기백이 없어 보이는 송광사 스님들을 평한 말이다. 보조국사의 목우(牧牛) 가풍 때문일까. 혹은 조계산 산수(山水) 때문일까. 송광사에 들어오면 펄펄 날뛰는 장정(壯丁)도 순한 양이 되어버린다. 허나 인암 스님의 경우는 예외로 대단한 열정이 불타고 있었다.
송광사 스님은 염불도 썩 잘하는 편이 못되어 제방에서, 염불을 못하는 스님은 송광사 스님이라고 할 정도이다. 염불을 잘하는 스님이 왜 드물까. 그것은 송광사 분위기가 선(禪)수행 위주 도량이다 보니, 행자 때부터 염불을 뒷전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스무 해 전의 일이다. 방장 구산 스님 당시에는 창법으로 조금 길게 빼어 소리를 내 예불을 올려도 꾸중을 들었다.
“왜 그렇게 길게 염불 소리를 빼냐? 아----어---하고 소리만 빼는 건 뜻을 생각 안한 게야. 염불은 그냥 뜻만 생각하고 간절히 하면 되는데 그렇게 길게 늘바리(느림보의 사투리)로 염불소리를 뺄 필요가 있느냐?”
이런 법문이 있는 날에는 조석 예불의 속도가 더욱 빨라졌다. 지금도 보면 해인사 예불보다 빠른 것이 송광사 예불이다.
염불을 못한다는 송광사 스님의 경우와 달리 인암 스님은 범성(梵聲)도 좋았다고 기억된다.
인암 스님을 처음 뵈온 것은 행자 시절 노스님의 방에 장작불을 지피러 다닐 무렵이었다. 스님의 거처는 도량의 서쪽 도성당(道成堂) 가운뎃 방이었다.
당시 송광사 공양방 아랫목 어간 자리에는 노스님이 꽉 찼다.
임경당(臨鏡堂)에는 향봉(香峰)스님과 취봉 스님이 계셨고, 차안당(遮眼堂) 학산(鶴山)스님, 법성료의 해월(海月)스님, 도성당의 성공(性空)스님 등. 방장 구산 스님을 비롯해서 여섯, 일곱 분이었다. 물론 다같이 한 산중에 계신 것은 아니었다. 이 스님이 출타하였을 때에는 저 스님이 들어오시고 저 스님이 들어오시면 이 스님이 출타하고 한 것이다.
그 아래로 지금 방장이신 보성(菩成) 스님, 회주이신 법흥(法興) 스님의 자리였으니, 웬만한 스님은 어간 자리에 발을 붙이지 못할 정도였다.
인암 스님은 다리 한쪽이 좀 불편하신 탓으로 지팡이를 짚었는데 마지막 열반하실 때까지 그러하였다. 스님은 기력이 좋고 공양도 아주 잘하신 편이었다. 특히 말을 재미있게 잘 하셨다. 송광사 안내라면 인암 스님이 으뜸일 것이다.
열반에 드신 78세 무렵까지 송광사 안내를 빼놓지 않았다. 아마 득음(得音)의 경지가 아니신가 할 정도였다. 누가 스님의 방문 밖에서,
“스님, 안내해 주십시오.”
하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누워있다가도 곧 아픈 노구(老軀)를 털고 일어나 지팡이를 짚고 안내를 신나게 하신 것을 자주 보았다.
어떤 참배객은 이런 경우도 있다. 아예 송광사 오기전부터 인암 스님의 안내를 받기로 작정하였다. 그랬는데 만약 스님이 출타하고 자리에 계시지 않으면 큰 낭패처럼 여겼다. 다른 사람이 성의껏 안내를 해도 스님의 안내를 받지 못한 참배객은 맥빠진 모습을 감출 수 없었다. <송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