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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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이야기(3)-법
우리는 법을 등불로 삼아야 하며, 자신을 등불로 삼아야 한다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을 수 없다. 그렇다면 법을 등불로 삼는다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무엇인가? 또한 어떻게 법에 의지하는 것이 불교의 기본적인 의무 사항이 될 수 있는가? <대반열반경>에 이러한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가르침이 나오고 있다. 이 경전에 의하면 부처님께서 쿠시나가라의 사라 숲에 계실 때의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즉 이 때 갑자기 사라쌍수에 꽃이 피어나 부처님께 떨어졌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게 된다.
“아난아, 너는 저 나무가 때 아닌 때에 꽃을 피워서 나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았느냐?”
“예, 보았습니다.”
그때 하늘과 용과 귀신 등 8부중들이 허공에서 미묘한 꽃비를 내리면서 풍악을 울리게 된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다시 말씀하신다.
“너는 저 하늘 등 8부중이 나에게 공양하는 것을 보았느냐?”
“예, 이미 보았습니다. 세존이시여.”
“나에게 공양하며, 은혜를 갚고자 하는 이는 반드시 꽃과 향, 풍악 등으로 할 필요가 없느니라. 계율을 청정히 지키고 경전을 읽고 외우며 법의 깊은 뜻을 생각하면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공양하는 것이니라.”
이상은 부처님에 대한 찬양이 초목이나 팔부신중에 의해서도 행해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런 대목은 당나라의 시인인 이태백의 “양인대작산화개(兩人對酌山花開)”라는 시를 연상시킨다. 두 사람이 마주 앉아 술을 마시는 정경이 너무 아름다우므로 산에 있는 꽃조차 저절로 피어나 분위기를 돋운다는 의미인데 초목을 상대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나와 함께 호흡하고 어울리는 주체로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님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언급하고 있다는 점이다.
어떻게 해야 부처님의 은혜를 갚을 수 있을까? 이 사고무친한 세상에서 부처님의 가르침을 만나 사랑을 배우고 실천할 수 있으며, 고독하지만 희망을 가지고 살 수 있다는 것은 정녕 커다란 은혜가 아닐 수 없다. 살아가면서 숱하게 느끼게 되는 죽음보다 깊은 병이라는 절망의 늪을 헤치고 나올 수 있게 만드는 것도 그분이 가르쳐준 자비가 아니면 안 되기에 그분에 대한 연모의 마음을 감출 수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마음을 익히 알고 받아들이지만 그 방법에서 사뭇 우리들의 상식을 벗어난다. 그것은 꽃, 향, 풍악 등의 물질이나 소리로 공양하지 말고, 계율을 지키고, 경전을 외우며, 경전의 깊은 의미를 살펴보고 그것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부처님께서 우리들에게 요구하는 것은 물질이나 입바른 아부나 찬탄이 아니다. 설사 말은 없을 지라도 행동으로 보여줄 것을 요구한다.
세상은 무상한 것이며, 무아인 것이며, 그래서 고뇌하게 된다는 사실을 직시하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들의 현실이다. 현실은 늘 변하고, 어느 것도 고정된 실체를 지니고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며, 그래서 우리들은 불만과 고뇌에 사로잡히게 된다는 점이다. 역설적으로 이러한 현실을 직시할 줄 아는 사람은 맑은 물처럼 담담해질 수 있다. 그것이 나의 의지대로 움직여 주지 않았다고 해서 슬퍼하거나 절망하지도 않는다. 세상의 이치가 인연 따라 생멸을 거듭하는 것이며, 거기에는 우리들의 마음이나 일체의 사물이 예외일 수 없다. 그렇기에 부단한 노력이 필요할 뿐이며, 그래서 세상을 따뜻한 눈길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자비의 눈이란 의미의 자안(慈眼) 또는 자비의 눈으로 바라본다는 의미의 자관(慈觀)이라 한다.
동시에 가르침에 대해 옳고 그름을 논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왜냐하면 법도 무상한 것인데 그것을 가지고 시비를 논한다는 것은 토끼에게 뿔이 있는가 없는가를 논하는 것처럼 무익하다고 여긴다. 따라서 “남의 가르침을 인정하지 않고 자기 견해만 고집하는 사람들은 어리석고 저속하며 이해가 부족한 사람들이다.”고 규정한다. 여기서 세상에는 진리를 인식하려는 마음 이외에는 영원한 진리가 없다는 점을 인정하고, 자신들의 고집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그렇게 된다면 세상에서 반목과 논쟁이 사라지면서 평화로운 세상을 건설하는데 한 걸음 다가서게 된다는 것이다. 마치 요즘의 한국사회를 빗댄 이야기 같지만 <경집>이란 책에 나오는 말씀이다.
법은 우리들이 이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직시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며, 무익한 논쟁을 없애고 상대를 이해하여 평화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길을 안내하는 길잡이다. 고집에 의한 절대주의가 아니라 있는 현실을 그대로 직시하는 상대주의적 시각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
200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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