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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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 불교적 모습
죽음·늙음·병 그 소멸과정 다룬 학문에 불과
생·사 연연말고 심안의 지혜 키워 나가야

생명과학과 불교를 이야기하기 전에 간단히 생명과학에서 다루는 생명이란 무엇인지 조금 생각해 보아야 한다. 왜냐하면 엄밀히 말하여 생명과학은 생명을 다루지 않기 때문이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생명이란 좀 더 정확히 말하면, 개체성을 지닌 생명체이다. 다시 말하면 생명과학에서 다루는 생명이란 생명체를 의미한다.
한편, 이러한 다양한 생명체의 근원이 되는 것을 가리켜 불교에서는 진리, 법, 마음, 도(道), 참나, 한물건 등으로 부르고 기독교에서도 길(道), 진리, 생명 등으로 부른다.
부처님 말씀처럼 무릇 태어난 것은 늙고 병들어 죽는다고 하지만, 여기서 죽는다는 것은 태어난 생명체가 소실된다는 것이지 결코 생명이 죽는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는다. 본디 생명이란 <반야심경>에서 언급되고 있듯이 늘거나 주는 것도 아니며, 생명체를 이루는 물질 또한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단지 온 곳으로 돌아갈 뿐이다.
그렇기에 생명과학이란 생명 자체를 다루는 학문이 아니고 죽음이라 불리우는 개체의 소멸과 더불어 늙음이나 병이라고 불리우는 그 소멸 과정을 다루는 학문에 불과하다. 그런 의미에서 생명과학이란 어떤 의미에서는 죽음과학인 것이다.
그나마 요즘 항간에서 이야기되고 있는 생명복제라는 것도 잘 들여다보면 진정한 생명 복제가 아니라 생명체 복제라고 해야 옳으며, 그렇기에 지식체계로서의 생명과학은 생명 그 자체에 대해서는 완전히 무지한 것을 알아야 한다. 이는 마치 정신과학이 실제로는 비정상적인 정신병 연구로부터 시작되었기에, 병적인 정신 상태에 대한 정의는 쉬워도 정작 무엇을 정상적인 정신 상태로 볼 것이냐고 할 때 결코 그 정의가 쉽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원래 과학은 과학자 간의 기본적인 약속(가설)에 바탕을 두고 있는 하나의 지식체계이며, 이를 바탕으로 이 세상을 바라보는 하나의 관점에 불과하다.
따라서 과학적 지식에 의한 생명체 조작 역시 불교에서 말하는 사대(四大)와 오온(五蘊)을 조작하는 이 시대의 한 방법에 불과함을 알 수 있다.
그렇기에 작금에 사회를 시끄럽게 하는 인간복제라는 것도 불자들에게는 그리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이 역시 단지 사대의 변화, 변용(變容)이라는 연기적 모습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생명은 끊임없이 그 모습을 바꾸며 시작도 끝도 없이 변화하는 흐름으로서만 파악된다. 이 흐름 속에서 생명이 단속적인 개체로서 사대를 취해 그 모양을 나타낼 때 생명체로 불리우며 육근(六根)의 인식 대상으로 존재하게 된다. 불자들은 소위 현대의 생명과학이란 것은 단지 유한한 겉모양을 다루는 지식임을 알아, 심안(心眼)의 지혜를 키워 진정한 나를 찾아 나아가야할 것이다.

우희종 교수는

1981년 서울대 수의과대를 졸업하고 87년 일본 동경대 대학원 생명약학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미국 하바드 메디컬스쿨 강사, 보스톤 대학교 의과대 조교수를 거쳐 현재 서울대 수의과대 수의학과 부교수로 재직중이다.
2003-06-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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