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로 승화된 선·교종 만남
송광사 하면 곧바로 승보(僧寶)를 떠올린다. 이 절은 부처님이나 경전보다는 스님들로 이름난 사찰이다. 고려 중기 보조국사 지눌부터 시작하여 200여 년에 걸쳐 쌓은 16국사들의 역사는 송광사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승보사찰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물론 이분들 외에도 송광사에는 이름난 고승들이 많이 배출되었지만, 송광사의 근간이자 중심을 이룬 이들은 16국사인 것이다.
지눌(知訥)은 고려 중기에 활동한 선사이다. 당시는 불교계가 선종과 교종으로 갈라져 극단적으로 대립하던 때였다. 이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한 이가 바로 보조국사 지눌이다. 선종은 부처님의 마음이고, 교종은 부처님의 말씀이다. 선종과 교종의 접점을 찾은 이 깨우침은 언뜻 간단해 보이지만 한국불교사에서 한 획을 긋는 지침이 되었다. 송광사는 바로 지눌이 선종과 교종을 아우른 실천의 장인 것이다. 이러한 지눌의 뜻은 후세에 이어져 15국사를 연속하여 배출하기에 이르렀다.
선종과 교종의 조화를 중요시한 지눌의 깨우침은 송광사의 가람배치에도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 중앙의 대웅전을 중심으로 그 뒤에 선종의 공간을 배치하였다. 축대를 쌓고 그것도 높은 담장으로 둘러쌓아 폐쇄적 공간을 마련한 것은 대웅전을 중심으로 한 예배공간과 분명하게 구분 짓기 위한 것이다. 그만큼 이 구역은 송광사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특히 보물 263호로 지정된 하사당은 조선초기의 작고 간소한 살림집 형식으로 되어 있는 선방이다. 이 건물은 소박한 외양을 띠고 있지만 그곳에서는 선(禪)적인 격조가 피어나고 있다. 선이 지향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이 건물 하나가 소리 없이 보여주고 있다. 아울러 이 구역에는 16국사를 모신 영당도 있다.
대웅전의 왼쪽의 구역은 스님들이 공부하는 강당과 생활하는 요사채가 있다. 대웅전 뒤가 선종의 공간이라면 대웅전 왼쪽은 교종의 공간인 것이다. 이러한 선방과 강당들로 대웅전을 가득 둘러싸고 있어 다른 사찰에서 볼 수 없는 승보사찰의 면모를 과시하고 있다. 더군다나 사찰의 배치가 종축이 아니라 횡축으로 뻗어있다. 우화각을 건너가면 종루를 지나 바로 대웅전의 마당에 이르게 된다. 다른 큰 절에 비하여 대웅전에 이르는 길이 유난히 짧다. 반면에 그 좌우의 폭은 매우 길게 전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송광사의 운치는 입구에서 맛볼 수 있다. 키가 우뚝한 측백나무 숲을 지나 일주문을 들어서면 사찰이라고 믿기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정원이 전개된다. 조계산의 맑은 물이 졸졸 흐르는 계곡을 따라 가다가 왼쪽으로 무지개다리와 지붕이 있는 전각인 우화각을 통해 건너게 되어 있다. 이 절경은 많은 시인묵객의 마음을 움직여 우화각 천장에 많은 시문의 현판을 남겼다. 또한 이 다리를 건너면 좌우에 누각이 있는데 왼쪽에는 물과 다리의 경치를 감상하게 꾸민 임경당이 있고 오른쪽에는 목련극과 팔상극을 공연할 수 있는 침계루가 있다. 이 구역만큼 예술적 향기로 가득한 사찰도 드물 것이다. 지눌이 지향한 선종과 교종의 만남은 이러한 예술적 향기와 운치를 통해서 하나로 융화된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