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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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철스님
불교에서는 세상의 변화와 중생들의 만나고 헤어짐을 섭리라는 단어 대신 인연이라는 아름다운 말로 표현하고 있다. 씨줄과 날줄처럼 촘촘히 얽힌 시간과 공간의 흐름속에서 마음이 만날 때 우리는 피할 수 없는 인연의 블랙홀에 빠져든다.
92년, 한달여의 인도 여행을 마치고 귀국 후 태화산 마곡사 선원 동안거에 방부를 들인 나에게도 이러한 인연의 시간표가 기다리고 있음을 어찌 알았을까? 20여 선승들이 저마다의 화두를 들고 참나를 찾기 위해 산사의 적막 속으로 빠져들던 그때 원철과 나는 도반이라는 하나의 인연의 실에 묶였던 것이다.
원철의 인생역전은 그의 첫 연극 ‘붓다를 훔친 도둑’ 처럼 극적이다. 올 2월6일부터 3월 22일까지 대학로 ‘알과핵극장’에서 공연된 스님의 첫 작품은, 도둑이 스님으로 변장하고 절에 들어와 물건을 훔치려다 부처님의 법에 감화되어 참 스님이 된다는 내용이다.
평소 과묵하다가도 격정적이고 생김새도 말투도 우락부락한 원철스님과 처음부터 친해진 것은 아니었다. 천안에서의 어떤 사건을 통해서 우리는 가까워지게 되었다.
천안이 고향인 원철스님이 어느 목욕삭발날 천안으로 목욕을 하러가자고 하여 스님 다섯이서 천안 나들이를 하게 되었다. 사우나에서 원철스님이 다른 손님과 시비가 붙어 그만 우리는 모두 경찰서로 연행되고 말았다.
경찰서 안에서도 원철은 집기를 뒤집어 엎고 경찰을 폭행해 고향선배들의 도움으로 치료비를 합의하고 간신히 풀려나게 되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산길을 걸으며 우리는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겉으로는 거친듯한 그가 사실은 여린 심성과 뚝심, 의리 있는 본면목을 지녔다는 것을 서서히 파악하게 되었다. 나는 그런 그의 성격에 매료되어 그와 함께하는 시간이 늘어났다.
해제 후 정우스님이 주지로 있는 구룡사에 함께 머물게 되었다. 이때 원철은 연극계의 원로인 극단 ‘신시’의 김상렬 선생, 이호재씨 등과 친하게 되었고 연극에 관심을 갖게 됐다. 그러면서 그에게 내재해 있던 예술에의 끼가 분출되기 시작했다. 이 일로 인하여 스님의 인생은 새로운 전환점에 서게 되었고, 완전히 새 사람이 됐다.
이후 원철스님은 활발한 시작(詩作)을 통하여 문단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시집<광대>를 출간하여 깊이 있는 사상과 남다른 문학적 재능을 보여주었다. 97년 황희 문학상을 수상한 후, 허균 문학상, 충헌문화 예술상(황금마패상), 매월당 문학상(시부문상) 등을 잇따라 수상했다. 많은 이들이, 만해의 계보를 잇는 불교문학의 새로운 가능성을 그를 통해 보게 되었다고 입을 모았다.
98년 고향 천안 옆 수철리 산속에 ‘한암사’ 라는 조그만 암자를 세운 원철은 연로하신 부모님과 외할머니까지 모시고 효도를 하며 살고 있다.
그러던 그가 지난해 3월, 천안시 쌍룡동에 작은 땅을 마련하고 여기에 포교와 문화공연을 함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겠다며 기공식에 참석해 달라는 연락을 해 왔다. 불사의 시작을 알리는 첫 삽을 뜨며 이 불사를 통하여 척박한 천안의 불교가 기름진 옥답처럼 변하기를 부처님전에 간절히 기원했다. 원철스님은 비록 힘들더라도 분명히 이 불사를 마칠 수 있을 거라는 믿음을 주었다. 그런데 1년여만에 원철은 건물이 다 완성되었으니 부처님을 모시는 점안법회를 하겠다면서 점안식을 해달라는 전화를 했다.
반갑고도 고마운 마음이 앞섰다. 얼마나 힘들었을까? ‘한암사 천안 불교문화원’이라는 현판이 붙은 건물에는 연극 등의 공연을 할 수 있는 90평 규모의 지하공연장이 들어있다. 2층은 방사, 3층에는 100평 규모의 법당이 마무리 공사중이었다. 오랜만에 함께 차를 마시며 원철스님은 불사의 고충을 털어놓았다.
전화를 하면 돈 달랄까봐 전화를 피하는 신도도 있었고, 불사금을 내겠다고 약속해 놓고도 약속을 지키지 않아 공사업자들에게 빚 독촉을 당한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지금도 12억원의 공사대금중 5억여원을 갚지 못하여 공사 잔금을 줄일 일이 걱정이라면서도 이렇게 말하였다.
“덕혜스님, 불사를 한번 해보시오. 그럼 철이 듭니다. 나는 이번 불사를 경험 삼아 한번 더 이러한 대작 불사를 해 볼 생각입니다.”
어느새 원철스님은 젊었을 때의 불량한 ‘끼’는 쏙 빠져버리고 3층 법당보다도 더 높은 성숙한 면모를 보여주고 있었다.
■서울 정법사 주지
200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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