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9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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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웅산 수지 (上)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

“미얀마인들은 자비를 전하고, 실천하며, 모든 존재들이 행복하기를 바랍니다. 선한 마음은 미얀마의 민주화를 돕는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아웅산 수지의 ‘Shambala Sun’과의 인터뷰 중에서)
‘비욘드 랭군’이라는 영화를 보면 주인공 여의사가 남편과 아이를 사고로 잃은 뒤 미얀마로 여행을 갔다가 미얀마의 민주화 운동을 경험하게 된다. 그리고 총과 칼을 든 군부대 앞에 두려움 없이 당당하게 나서는 한 여성을 보게 되는데, 그가 바로 아웅산 수지(66, Aung San Suu Kyi) 여사다.
최근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인 아웅산 수지 여사에게 다시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미얀마 군부가 지난 5월 30일 수지 여사가 참석한 대중 집회에서의 유혈 충돌을 이유로 그를 다시 구금했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수지 여사의 석방을 요구하는 국제 사회의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비폭력 민주화운동으로 1991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아웅산 수지 여사는 ‘미얀마의 간디’로 불릴 정도로 세계인의 존경 받는 불자다. 정치인으로서 종교적인 입장을 공개적으로 드러내진 않지만 수지 여사는 자신이 참된 불자가 되려고 노력하며, 이러한 자세가 군사정부의 탄압을 이겨내는 힘이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나는 불교 집안에 태어나 불자로 교육을 받고 자라났습니다. 때문에 불교를 나 자신의 가치관과 분리해서 설명한다는 건 사실상 어려운 일입니다. 부족하지만 제 삶이 곧 참된 불자가 되려는 몸짓이었으니까요.”(1996년 1월 ‘Shambala Sun’과의 인터뷰 중에서)
수지 여사는 2002년 5월 자택 연금에서 풀려난 이후 이틀간의 성지 순례를 다녀오기도 했다. 그는 평소 존경하던 우 위나야(U Winaya) 스님을 만나뵙기 위해 양곤에서 남동쪽으로 약 100마일 가량 떨어져 있는 카렌 주에 있는 타마냐 산을 참배했다. 그는 오랜 가택연금 생활로 친견하지 못했던 우 위나야 큰스님을 뵙고 민주화운동의 방향과 함께 개인적인 신행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것이다.
아웅산 수지는 1945년 6월, 미얀마의 수도 양곤에서 독립영웅으로 칭송받는 아웅산 장군(General Aung San)의 딸로 태어났다. 그녀가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으로 존경을 받는 것은 미얀마 독립의 영웅인 아웅산 장군의 딸이라는 후광도 있지만, 군사 독재정권과 타협하지 않고 민주화를 위해 온몸을 바친 희생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지 여사는 15세 때 영국 옥스퍼드대학에서 공부했으며, 그곳에서 영국인 교수 마이클 아리스와 결혼해 두 자녀를 낳아 기르던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그러다 몸이 불편한 어머니의 간병을 위해 1988년 일시적으로 귀국했다가, 당시 전국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민중들의 반독재 시위와 이를 잔학하게 탄압하는 군부의 폭거를 목격한 후, 그대로 민주화 투쟁 대열에 가담하게 되었다.
그러나 민주화투쟁은 88년 8월 8일 군사정권의 발포로 수천 명이 사망하면서 실패로 돌아갔다. 아웅산 수지는 그때부터 영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고국에서 민주화를 위해 오늘날까지 독재정권에 맞서서 투쟁하고 있다.(계속)
김재경 기자
2003-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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