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하고 거대한 석굴사원이 많지만 그 가운데 석굴암이 우뚝 솟은 것은 한치의 흐트러짐 없이 완벽하게 짜여진 건축과 한국 불상의 고전이 되는 조각이 만났기 때문이다. 석굴암의 조각은 통일신라 조각의 절정인 8세기 중엽 경덕왕 때에 조성되었고, 당시의 다양한 조각이 한자리에 모인 곳이 석굴암이다. 본존불에서 느끼는 위엄, 십일면관음상의 우아함, 10대 제자상의 인간미, 감실상의 단아함, 인왕상의 강인함, 팔부중의 엄격함 등 다채롭기 그지없다. 본존불은 신라인이 이상으로 여긴 불상의 이미지가 극치에 달한 사실주의적 기법으로 표현된 모습이다. 가늘게 내려뜬 눈, 날카로운 콧날, 길게 호를 그리며 독수리 날개처럼 펼쳐진 눈썹, 갈매기 날개짓하는 형상의 입술 등 신라인이면서 부처님인 것이다. 본존불은 이전의 불상보다 살집이 올라 첫눈에 육중한 체구가 보는 이를 압도한다. 그런데 워낙 얇은 옷이 몸에 짝 달라붙었기에 옷 속으로 젖가슴이 도드라졌지만, 상 전체에서 풍기는 권위는 이러한 육감적 표현을 사소하게 보이게 한다. 그렇지만 오른쪽 겨드랑이에 세 줄로 표현된 옷주름은 간략하면서 힘있게 맺혀 있어 자못 기운생동하다.
본존불 뒤에는 우아한 자태의 십일면관음보살상이 왼손에 정병을 쥐고 오른손으로 영락을 잡아당기며 조심스럽게 서있다. 김상옥 시인은 그 모습을 이렇게 노래하였다.
몸짓만 사리어도 흔들리는 구슬 소리 / 옷자락 겹친 속에 살결이 꾀비치고 / 도도록 내민 젖가슴 숨도 고이 쉬도다.(<십일면관음> 중에서)
수많은 장신구와 천의 자락으로 몸을 감싸고 있는 모습은 구슬들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며, 차가운 돌에서 들리는 숨소리에 따뜻한 온기가 느껴진다. 얼굴은 높은 부조로 명료하게 새겼지만 몸은 돌 속에서 스며나오듯이 얕게 표현하였다.
그런데 석굴암 조각의 놀라움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위용이 넘치는 본존불과, 화려함과 우아함을 뽐내는 십일면관음상에서 잠깐 눈길을 위로 돌리면 의외로 감미로운 조각을 만나게 된다. 오른쪽 세 번째 감실에 모셔진 보살상은 왼쪽으로 떨군 고개를 손등으로 가볍게 괴고, 오른손은 쭉 뻗어 비스듬히 꿇어앉아 오른발을 가볍게 감싸고 있다. 고결함을 간직한 채 달콤하게 꿈꾸는 듯, 깊은 사색에 잠겨 있고, 풍염하면서도 섬세한 부드러움이 온몸을 감싸고 있다. 온화한 정감을 불러일으키는 소박한 광배가 화음을 이루면서 우리를 차분한 숨결로 휘감기게 한다. 사람을 압도하는 신성함 속에서 숨통을 트여주는 역할을 하는 상이 바로 이 감실의 보살상이리라.
■경주대 문화재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