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현원스님을 처음 만난 것이 84년, 통도사 극락암 선원 여름안거에서다. 스님은 십여 세의 어린 나이로 표충사에 들어와 통도사 강원을 마쳤다. 현원스님은 그의 어머니 표현대로라면 ‘부처님전에 시주한 아들’이다.
선방에서 만났을 때는 20여세 였지만 20년가까이 지난 지금도 앳된 얼굴이다. 그 또래의 젊은이들이 그렇듯이 잠이 많아 입선죽비를 치고 둘러보면 빈 좌복만 놓여있곤 했다.
“혜도(현원스님 법호)야! 죽비 쳤어, 빨리 들어가야지.”
찾아보면 이불장 구석에서 웅크리고 자고 있곤 했다. 깨워도 응석부리는 아이 같이 몸을 더 구부리며 이불을 뒤집어 썼다.
입선시간마다 벌어지는 이런 밀고 당기기에 익숙해질 무렵 안거가 끝났다. 헤어지기가 서로 아쉬워 걸망을 둘러멘 우리는 청도 죽림사에서 한동안 같이 지내게 되었다.
한동안 선원을 다니던 현원이 어느 날, “나, 인도 여행하고 올게” 하더니 바람처럼 떠나고 나서, 4개월이 지나서야 돌아왔고, 잠시 토굴에서 정진하던 그는 다시 1년여 동안 50여 개국을 돌아보는 세계여행길을 혼자서 훌쩍 떠났다. 그로부터 터키의 소인이 찍힌 엽서가 배달되어 왔다.
“현봉(나의 법호)아! 여긴 이스탄불인데, 유럽으로 넘어갈 예정이다. 만약 유럽에 한국인 거지가 한 명 생겼다는 방송이 나오면 난 줄 알아.”
몇 달이 지난 후 씩씩하게 돌아온 그는 여행 중의 실수담을 재미있게 이야기 해주었다.
이런 현원과 내게 있어 93년은 아무래도 새로운 인생의 전환점이 된 해였다.
신도시가 세워질 때마다 교회의 십자가만 늘어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건영그룹의 엄상호 회장과 구룡사 정우스님이 건영이 짓는 아파트의 상가마다 포교당을 세우기로 뜻을 모았다. 그 첫 번째 원력불사로 다섯 군데의 상가에 포교당을 설립했다. 분당의 연화사, 문정동 법계사, 중동신도시 서래사, 평촌 보림사, 송탄(현 평택)의 지산사와 4개의 유치원이었다. 이후 엄회장과 정우스님은 10개가 넘는 포교당과 유치원을 만들어 나갔고 이는 한국 불교 현대사에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될 것이라 본다.
정우스님과 작은 인연이 있었던 나는 송탄의 지산사 주지로, 정우스님의 사제인 현원은 분당 연화사 주지로 부임했다. 그것이 선원의 수좌에서 거듭난 우리의 새로운 포교인생의 시작이었다.
93년 5월 개원할 당시, 분당은 입주가 막 시작된 아파트들과 공사가 진행중인 아파트들로 곳곳의 길이 파헤쳐 있었다. 제대로 도시의 기능이 갖춰지지 않았음에도 현원스님은 적극적으로 포교를 시작했다. 짧은 시간내에 180평 법당에 불자들이 가득 찰 만큼 성장을 이루었다. 우리는 포교의 좋은 방법들을 조언하며 힘든 서로를 격려하곤 하였으니 사람 키우는 불사만이 이 시대의 진정한 불사라는데 공감했던 것이다.
포교당 주지라는 것이 힘든 자리라면 참으로 힘든 자리다. 아파트 안에 절이 있으니 매일 찾아오는 불자들의 눈이 무서워서도 예불 한번을 거를 수가 없다. 법당 염불소리가 시끄럽다고 목청높이는 이교도나 아파트 주민들의 항의에도 적절히 대응하지 않으면 아예 포교당 문을 닫을 수 밖에 없다.
현원스님은 포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지니고 있다. “나는 포교원에서 열심히 진리를 전하는 것을 수행으로 삼고 토굴의 스님들은 참선을 통해 깨달음을 얻는 것을 목적으로 삼지. 그러나 이 둘은 하나의 인연으로 묶인, 같은 수행의 다른 모습일 뿐이야.”
어린이 법회, 거사림 법회, 일요가족법회 등 신도시의 지식인들에게 맞는 법회를 개설하고, 37번의 백일기도를 성취할 만큼 신심으로 투철히 뭉친 현원스님. 외국을 나갔다 올 때도 어린이 법회의 아이들 주겠다며 수백개의 초콜렛을 사서 무겁게 지고 들어온다.
도심포교에 헌신한 현원스님이 5월 17일 연화사 개원 10주년을 맞았다. 그동안 고생도 많았는데 또다시 분당 시내에 440평의 땅을 사고 50억여원의 돈을 투자하여 새로운 법당을 완성할 야심찬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새 도약을 꿈꾸는 스님은 분명 부루나존자의 후예인 것 같다.
덕혜스님은 1959년 전북 진안 生으로 78년 법주사에서 출가, 79년 송광사에서 구산스님을 전계사로 비구계를 받았다. 이후 92년까지 전국 선원에서 참선정진했으며, 지산사·달성사 주지와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서울 정법사 주지와 남대문 경찰서 경승실장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