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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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운동을 바라보며
요즘 세간의 화두는 환경이다. 특히 수경스님, 문규현신부를 비롯하여 기독교의 목사와 원불교의 정남이 함께 새만금방조제 설치 반대를 내세우며 3보1배를 벌이며 세간의 이목을 끌고 있다. 개발이 전가의 보도처럼 이 사회를 짓누르던 시대에서 벗어나 자연과 인간이 공존해야 한다는 명제가 사회적 지지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인간은 이제까지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생각해 왔다. 자연은 인간의 문명을 살찌우기 위해서는 언제나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 지배적인 사고였으며, 그렇기에 자연파괴를 당연한 일로 생각했다. 그렇다면 최근 일고 있는 환경문제에 대한 관심고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 혹자는 이것도 역시 인간들의 이기심이 내재되어 있기에 진정한 의미의 환경운동이라 말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인간들에 의해 자연환경이 파괴되자 그 업보 역시 인간들이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한 것이다.
자연을 인간과 별개의 대상으로 파악하지 않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특히 서양문명 속에서는 자연을 인간의 영광을 수립하기 위해서는 언제나 필요한 도구에 불과하다고 생각해 왔다. 그렇지만 불교는 출발 당초부터 자연을 인간과 별개의 존재로 파악하지 않았다. 문명이 자연과 인간과의 대립과 갈등, 그리고 초극이라는 일련의 과정에서 인간의 승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것만이 아니라 자연과 타협하고 순응하면서도 서로의 안녕과 존재를 인정하는 가운데 만들어진다는 점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기에 각각의 다양성과 그 속에 내재된 고유의 가치를 인정하는 일에 익숙해 있었다.
불교에서는 인간과 환경을 마음이란 의미의 의(意)와 인식의 대상이란 의미의 법(法)이란 구조로 설명하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들의 마음을 의미하고, 동시에 인식의 주체가 되는 의는 법이란 대상에 우리들의 의지를 끊임없이 반영하고자 노력한다. 따라서 법은 인간들의 의지를 수용하여 끝없이 변하는 동시에 반대로 인간의 의식에 끊임없는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의와 법의 구조 속에서 의가 인간의 의식이나 마음을 의미한다면 법은 자연을 포함한 문화적 환경을 의미한다. 그런 점에서 인간이 자연적 환경과 문화적 환경을 변화시키기 위해 부단히 노력할수록 환경은 변하게 되어 있다고 보며, 동시에 인간의 의식 역시 환경의 영향을 받아 변해 간다는 것이다. 결국 환경과 인간은 상호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서로를 지탱해 주고 있는 것이다.
불교가 인간과 환경을 별개의 존재 내지는 정복과 피정복의 관계로 설명하지 않는다는 것은 경전의 도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인왕반야경>에서는 “중생과 부처가 둘이 아니며, 국토와 내가 둘이 아니다. 국토가 중생이며, 국토가 곧 부처인 것이다. 국토와 부처가 둘이 아니기 때문에 협동의 실현이 가능한 것이다”라 선언한다. 신토불이의 이론적 근거가 이것이라 말할 수도 있다. 근본불교를 대표하는 경전 중의 하나인 <법구경>에서는 “인간은 자연을 이용하기를 꿀벌이 꽃가루를 채집하듯이 하라. 꿀벌은 꽃의 아름다움이나 향기를 다치는 일이 없듯이 사람도 자연을 이용할 때 자연의 풍요로움이나 아름다움을 오염시켜서도 안 되며, 자연에게서 회복할 수 있는 자생력과 활력소를 빼앗아서도 안 된다”고 말한다. 상호의존적 관계에서 상대를 다치게 하는 일이 없이 서로 활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분율>에서는 “땅을 파지마라. 살아있는 나무를 꺾지 말라. 노지에 불을 놓지 마라. 고의로 축생들의 목숨을 빼앗지 마라. 벌레 있는 물을 마시지 마라”고 말한다. 여기서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킨다는 점에 역점을 두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살아 있는 나무도 생명체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을 평등한 관계에서 설명하고 있는 대표적인 경전에 <화엄경>이 있다. 여기서는 “국토의 평등이 중생의 평등과 어긋나지 않는다. 중생의 평등이 국토의 평등과 어긋나지 않는다. 온갖 중생들의 평등이 온갖 존재의 평등과 어긋나지 않는다”고 말한다. 사실 화엄은 일체의 존재를 법신불의 현현으로 파악한다. 때문에 그것이 무생물이라 할지라도 인간 내지 생명체와 차별해선 안 된다고 말한다. 그런 점에선 국토와 중생이 평등한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수경스님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환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을 제고시키며, 새만금 갯벌 살리기에 진력하고 있다. 그 속에 살고 있던, 그곳을 터전으로 살아온 숱한 생명들을 생각해보자. 환경을 파괴하며 개발하는 일에 대한 인간들의 산술적인 경제적 가치는 우리들의 눈을 현혹할 수도 있다. 당장은 약간의 이익이 있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자손만대를 생각한다면 환경을 보호한다는 것은 우리들의 삶의 터전을 지키는 일이며, 우리들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200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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