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1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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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보일배
갯벌 중생과의 약속

새만금 갯벌을 살리자며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이 시작한 삼보일배 정진이 회향됐다. 비행기를 탔다면 1시간도 안 걸렸을 거리를 60일이 넘도록 정진한 두 분의 노력에 선재는 우선 머리를 숙인다. 그저 존경의 표시로만 알고 있던 삼배가 이처럼 강력한 힘을 발휘할 줄은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조선시대와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추락한 스님들의 위상을 높여 신도들이 삼배를 하도록 한 것은 1947년 봉암사결사가 처음이었다. 불과 60년도 안 된 일이다. 그런 삼배가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는 시위보다 더욱 강력한 호소력을 갖는다는 사실에 그저 놀라울 뿐이다.
선재가 법당에서 올리는 삼배를 처음 배웠을 때 삼배에는 경배의 의미와 함께 참회의 의미를 담는다는 설명을 들었다. 나의 가장 높은 곳에 있는 머리를 상대의 가장 낮은 곳인 발보다도 더 낮게 함으로써 경배하면서, 그 경배 속에 나의 잘못을 참회한다는 것이다. 예전 주석가들은 ‘참회(懺悔)’를 ‘참’과 ‘회’로 나누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것’을 ‘참’이라 하고 ‘앞으로 잘못을 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회’라고 설명하였다. 참회를 위한 전단계라고 할 수 있는 자신의 반성을 아비달마에서는 ‘참괴(懺愧)’라고 설명한다. ‘참’은 스스로의 잘못을 돌아보며 느끼는 부끄러움, ‘괴’는 다른 사람을 대했을 때 느끼는 부끄러움을 말한다.
두 달이 넘게 절을 한 수경 스님이 그토록 부끄럽게 참회하신 일은 무엇일까? 원래부터 그렇게 살고 있던 갯벌의 중생들에 대한 참회이고, 새만금만큼은 꼭 지키겠다는 참회이다. 그러나 티베트 순례자의 모습 그대로인 스님의 모습에서 정작 참회하고 참괴하는 것은 삼보일배니 새만금이니 하는 이야기들이 나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으로만 생각했던 선재 자신이었다. “옴 살바 못자모지 사다야 사바하”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
200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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