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4.12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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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엄경 입법계품 <22>
선재동자의 선지식 탐방

지금까지 보아 온 바와 같이 선재동자는 문수보살이 “선지식들을 친근하고 공양함은 온갖 지혜를 구족하는 첫째 인연이기 때문에 이 일에 고달파하는 생각을 내지 말라”고 하는, 가르침에 따라 선지식을 찾아 구도의 여행길에 오르게 되었다. 그리하여 덕운 비구, 해운 비구, 선주 비구를 필두로 하여 50여 선지식을 차례로 찾아가 가르침을 청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상한 점은 선재동자가 이들 선지식을 만날 때마다 묻는 내용이 한결같이 같다고 하는 것이다. 선재동자는 선지식을 만날 때마다 다음과 같이 말한다. “저는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사오나, 아직 어떻게 보살의 행을 배우고 보살의 행을 닦는지 알지 못합니다. 듣자오니 거룩하신 이께서 잘 가르치신다 하오니 부디 말씀하여 주십시오.”
이와 같은 물음은 처음부터 끝까지 변함이 없다. 이러한 물음을 통해서 입법계품의 내용은 일단 보리심을 발한 사람을 위한 얘기라고 하는 것을 알게 된다. 선재동자는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닦는가?’하는 오직 한 가지의 물음을 가지고 50여 선지식의 가르침을 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선지식은 선재동자가 발보리심 한 것을 확인하고 그것을 칭찬하며 용기를 북돋우어 준다. 심지어 어떤 경우에는 선재동자가 보리심을 발한 것을 확인하고 나서 선지식이 선재동자에게 엎드려 예경하면서 그의 대중들에게 선재동자를 본받으라고 권하기도 한다. 선지식은 이와 같은 자세를 취하기까지 하면서 보살을 교화하려 하는 것이다. 이것을 통해서 보더라도 입법계품의 내용이 진실로 진정한 인간의 삶을 지향하려는 사람을 위한 얘기라고 하는 점을 알 수 있다.
50여 선지식들은 대부분 현실세계의 다양한 영역에서 이런 저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여러 계층의 사람들이다. 이들 중에는 사문도 있고 바라문도 있다. 또한 고행하는 수행자·의사·장사꾼·뱃사공·기술자·거리의 여인 등 현실세계의 온갖 신분의 사람들이 망라되어 있다. 이들은 도시와 시골, 온갖 마을에 있는 중생들의 처소에서 갖가지 형상과 위의, 여러 가지 음성과 언론으로 깨달음의 삶의 모습을 몸소 실천하고 자신들이 터득한 바를 사람들에게 가르치면서 살아간다.
이들 선지식들은 이른바 ‘생사(生死)로부터 해탈한다’든가 ‘생사를 초월한다’고 하는 입장을 취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생사 가운데에서 해탈’하는 깨달음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들의 삶을 통해서 깨달음의 삶이란 현실의 중생세계의 생활 속에서 다양하게 구현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선재동자는 이러한 여러 선지식들을 탐방하면서 일체의 세계에서 두루 널리 중생들에게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보현의 덕(德)을 갖출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선지식들의 가르침에서 인상적인 것은 그들이 한 가지씩의 법문을 설한 뒤에, “나는 다만 이 한 가지의 법문만을 알 뿐이며, 보살들의 여러 가지 훌륭한 덕행이나 경계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는 점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선지식들은 어디에 사는 누구를 찾아가서 보살행을 배우고 닦는 법을 물으라고 권한다. 이들 선지식들은 자신들의 부족한 경계를 솔직하게 시인하는 겸손함을 보이면서도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은 진지하게 가르쳐 준다.
이러한 선지식들에 대해 선재동자는 지극한 공경심을 가지고 그 가르침을 생각하고 따르려 한다. 선지식을 지극하게 공경하는 선재동자의 자세는 다음과 같은 입법계품의 경문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이 때 선재동자는 해탈장자의 발에 예배하고 오른쪽으로 돌며… 앙모하며 눈물을 흘리면서 일심으로 생각하기를 ‘선지식을 의지하며 섬기고 공경하며,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온갖 지혜를 보았으니, 선지식에게 거스르는 생각을 내지 아니하며 선지식에 아첨하거나 속이는 마음이 없으며 마음으로 선지식을 항상 순종한다. 선지식에게 어머니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나니 모든 무익한 법을 버리기 때문이요, 선지식에게 아버지라는 생각을 일으켜야 하나니 모든 선한 법을 내게 하는 까닭이다’라고 하면서 하직하고 물러갔다.”
“선재동자는 비목구사선인 앞에 나아가서 오체투지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저는 이제 진실로 선지식을 만났습니다. 선지식은 온갖 지혜에 나아가는 문이니, 저로 하여금 진실한 도에 들어가게 하기 때문이다. 선지식은 온갖 지혜에 나아가는 법이니 여래의 지위에 이르게 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경문의 예를 통해 보더라도 선재동자가 선지식들에게 얼마나 존경심을 갖고 있나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선지식을 존경하는 만큼 그의 가르침을 받들고 따르리라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입법계품을 읽을 때마다 느끼게 되는 것은 ‘내가 진실로 보리심을 일으켰는가?’ 하는 점과 ‘선지식에 대해 선재동자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는 점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
2003-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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