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굴암은 신라건축의 정화이자 신라조각의 절정이며, 한국건축의 완성이자 한국조각의 백미이다. 그런데 석굴암은 그 하나하나를 면밀히 살펴보면 인도, 더 나아가 유럽의 문화까지 연결되는 실크로드 문화의 집적(集積)이자 총합(總合)이다. 어느 한 시대 한 문화의 영향이라고 못 박기에는 여러 문화가 혼합되어 있고 더욱이 무엇보다도 그것들을 신라적인 시각으로 조화시킨 역량이 돋보인다.
석굴암의 구조는 원형의 평면에 돔의 천장을 갖고 있는 주실에 사각형의 평면인 전실이 복도로 연결되어 있다. 그런데 전실에는 세속의 잡된 것으로부터 불법을 수호하기 위한 지킴이들이 세 단계로 배치되어 있다. 제1선에는 8부중이 양쪽에 4구씩 나뉘어져 있고, 제2선에는 주실로 들어가는 통로 양옆에 인왕상이 각기 한 구씩 서있다. 그리고 제3선으로 통로 양쪽에는 2구씩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이처럼 철통같은 지킴이를 통과해야만 비로소 부처님이 계시는 공간인 주실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다. 주실에는 가운데 본존불을 중심으로 보살들과 십대 제자가 호위하고 있고 2층 감실 안에 보살들과 유마거사가 앉아 있다. 전실은 속세의 공간, 주실은 부처님의 공간으로 명확하게 구분되어 있는 것이다.
석굴암식의 구조를 갖춘 석굴사원은 간다라 문화권인 북인도와 아프가니스탄에 걸쳐 나타난다. 그 중에서도 바미얀이나 하아바크 등의 아프가니스탄의 석굴사원과 유사하다. 사각형의 전실에 돔 천장을 갖춘 원형의 주실이 비슷할 뿐만 아니라 지붕 아래에 불상을 안치한 감실이 줄지어 있고 천장을 기하학적인 패턴으로 장식한 점도 석굴암을 연상케 한다. 아잔타나 엘로라 같은 중인도 석굴사원의 길쭉한 원형 공간에 비하여 북인도와 아프가니스탄의 석굴사원에서는 둥근 원형의 돔이 등장하는데, 석굴암은 후자에 가깝다. 또한 간다라식의 석굴구조는 그 뿌리를 찾아가자면 비잔틴의 교회당에 닿아있다. 중국에서는 이러한 구조가 석굴암보다 늦은 10세기 투르판에 있는 베제클릭 석굴을 제외하고는 거의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 조각의 경우는 중국 당나라 조각과 관련이 많다. 둥근 석굴 중심에 불상을 모시고 그 주위 벽에 10대 제자상을 부조로 새긴 방식은 중국의 중심에 해당하는 중원, 즉 낙양의 용문석굴 가운데 당나라 석굴인 간경동의 제자상들과 닮았다. 또한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천룡산 석굴에서 나온 당나라 십일면관음보살상(동경박물관 소장)과 비슷하다. 석굴암은 인도의 석굴사원에서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온 실크로드의 기나긴 역사 속에서 다듬고 조화를 꾀한 신라인의 국제적이자 역사적인 산물인 것이다.
■경주대 문화재학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