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불교시민운동이 양적인 성장을 함에 따라불교계의 활발한 사회 참여가 요구되고 있다. ‘불교포럼’은 이와 관련, 지난 21일 서울 종로구 동산불교회관에서 ‘참여불교의 현실과 전망’이란 주제로 제25차 열린토론마당을 갖고 참여불교의 흐름과 한국불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했다. 발제는 박광서 교수가, 토론에는 이정호, 이주원 씨가 각각 나섰다.<편집자>
보살행, 수행 통일된 활발한 참여 요구
▧ 박광서 교수(참여불교재가연대 상임대표)
불교적 사유·철저한 현장주의 전제
20세기 아시아에서 등장한 참여불교는 ‘깨달음’과 ‘보살행’을 함께 추구하는 대승불교 전통을 새롭게 계승하고 있다. 특히 ‘상구보리 하화중생’의 대승불교 전통은 생활수행과 사회참여라는 현대적 용어로 새로 정립됐으며, 이를 나눠 보거나 단계적으로 보지 않게 했다.
이 같이 국제적인 참여불교운동은 사회와 인류가 직면한 문제에 철저히 보편성으로 접근해 해답을 찾으려는 흐름으로 전개됐다. 또 실제 현장에서 중생고를 개선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 이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이와 함께 기성교단과 달리 국가권력으로부터 독립적인 영역을 개척했다.
하지만 90년대 한국 시민사회운동의 급속한 양적ㆍ질적 성장에도 불구, 한국불교의 사회참여운동은 미약하다. 한국불교가 그간 가람불사 위주로, 정작 교육ㆍ복지ㆍ시민사회운동과 같은 ‘참여불교’에는 너무도 인색했기 때문이다. 앞서 지적한 참여불교의 두 가지 전제, 즉 ‘불교적 사유로 세상을 해석하고 해답을 내어놓는 것’과 ‘철저한 현장주의’란 잣대로 보면, 여전히 갈 길은 멀다. 출가정신부터 회복돼야 한다. 그것은 초발심으로 돌아가 대승불교 정신을 확인하는데서 출발한다. 불교의 사회적 기능 회복 또한 사부대중 모두가 불법의 대승적 재해석과 보살도를 실천하는 참여불교에서 찾아야 한다.
▧ 이정호 사무처장(인드라망 생명공동체)
무아·연기적 생활 풍토 필요
참여불교의 등장과 배경은 20세기의 식민지 해방과 국가주의에서 찾을 수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성찰이 바로 참여불교라 할 수 있다. 또한 기성 운동세력이 보였던 ‘선 구조혁명, 후 개인혁명’이라는 구분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제시됐다.
이 같은 참여불교의 두 축은 ‘사회적 고통의 문제’와 ‘일 속에서의 수행’이다. 첫째, 어떤 방식으로 사회적 고통에 참여할지 선택해야 한다. 기존 한국사회의 주된 사회적 고통은 ‘민족과 계급’에 의한 갈등이었지만 현대사회는 ‘환경, 생태계, 에너지’ 등으로 생존의 문제로 바뀌었다. 즉 ‘인간과 인간’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으로 전환된 것이다. 그 대안이 무아ㆍ연기적 견해를 견지하는 것이다. 둘째, 새로운 수행론이 정립돼야 한다. 전통 수행전통이 ‘깨달음을 향한 개인 노력’의 측면이 짙다면, 일속에서의 수행은 일상과 떨어진 ‘그 무엇’으로 여기지 않고, 수행론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주체적으로 풀어가야 할 구체적인 ‘삶의 과제’로 여기는 자세와 풍토 조성이 필요하다.
끝으로, 참여불교 운동이 최근 출범한 조계종 참여종단에 기여할 수 있는 분야는 두 가지다. 현재까지의 가치를 제대로 이어갈 수 있도록 비판과 견제를 하는 것과 새롭게 제시되는 사회적 가치와 불교전통 가치와의 조화라고 본다.
▧ 이주원 소장(아침을 여는 집)
‘경험’전제없는 참여 관념일 뿐
참여불교의 정체는 무엇인가. 박 교수는 달라이 라마와 틱낫한 스님의 이념을 빌려와 참여불교를 보살행과 수행의 통일로 정의했다. 또 사회적 실천에 무게를 실고 보살전통만 강조한 민중불교와 실천불교와는 차이가 있다고 했다. 하지만 이들 간의 차이점은 사유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민중불교는 사회구조 개혁에 중심이 있는 반면, 참여불교는 고통의 밭인 기존의 사회체제를 건드리지 않는다. 따라서 참여불교는 보살행과 수행의 통일이라기보다 수행, 마음의 평화만 강조하는 불교라고 본다.
한국불교는 우리시대의 고통을 얼마나 힘든지 철저히 현장에서 경험해야 한다. 여전히 현실을 사는 대중들의 고통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반면, 한국 가톨릭과 개신교 등은 현실의 고통을 경험했다. 어려운 이웃들과 함께 먹고 살며 정의롭지 못한 현실과 투쟁했다. 한국불교는 이 점을 유심히 봐야 한다. 그러나 박 교수가 제시한 참여불교의 두 가지 조건 중, 실제 현장에서 중생고를 치유하는 ‘현장주의’는 만만한 문제가 아니다. 한국불교는 우리시대의 고통을 경험하지도 이해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먼저 우리사회의 현실을 말해야 한다. 더 구체적으로 많은 서민들이 겪고 있는 고통을 말해야 한다. 말만 해서도 안 된다. 경험해야 한다. 경험이 전제되지 않는 참여는 관념일 뿐이다. 이래야만 참여와 불교의 윤리 실천이 나올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