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겨울철 일정기간 수행몰두
근기따라 화두삼매·불보살 염송
마침 5월 15일부터 하안거에 들어갔다. 하안거가 시작된 것이다. 부처님께서 활동하던 시기에 제자들 중 여섯 명의 비구들이 우기 때 탁발 수행하다가 강물이 범람해 의복과 발우 등을 잃어버리기도 하고 미생물과 초목을 밟아서 비난을 받았다. 이런 사실을 들은 부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비구여, 너희들의 행동은 청정한 것이 아니다. 사문의 위의가 아니며, 출가인의 법이 아니다. 비구들이여! 이제부터는 안거(安居)를 지키도록 하라. 각자의 방과 침구를 정돈하라. 누울 자리가 없으면 앉아서 하라. 앉을 자리가 없으면 서서하라. 그대들이 안거를 위하여 왔을 때 바로 안거가 이루어진다. 비구들이여, 적당한 곳을 골라 미리 말하고 안거하라. 수행에 장애가 생기는 일이 있으면 곧 떠나라. 안거를 미리 약속하고 지키지 않거나, 안거 중 까닭 없이 떠나거나, 대중의 화합을 파괴하거나, 안거 중 허락된 7일간의 출타를 넘기고 돌아오지 않으면, 법랍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 까닭은 안거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사분율)
안거는 특정 기간을 정해 대중들이 한 곳에 모여 정진하는 것이다. 안거의 원어는 바르시카(Varssika)로 이는 비(雨)를 의미하는 바르샤(Varsa)라는 말에서 유래한다. 음력 4월 15일부터 음력 7월 15일까지 3개월간인데, 이 때를 여름에 하는 안거라는 뜻으로 하안거(夏安居)라 한다. 또 겨울철인 음력 10월 15일부터 다음해 음력 1월 15일까지를 동안거(冬安居) 또는 설안거(雪安居)라 부른다. 안거 때는 일체의 외부출입을 삼가하고, 수행에 전념해야 한다. 부처님 재세 시에는 동굴이나 사원에 모여 좌선하고 수행에 몰두했다. 이후 안거하는 거처가 도량(道場)으로 자리를 잡았고, 안거는 스님과 재가불자들의 중요한 수행방법이 되었다.
부처님 당시 초기 불교 수행자들은 우기에 관계없이 여러 곳을 돌아다니며 수행했다. 인도의 계절은 날씨의 특성상 크게 우기(雨期)와 건기(乾期)로 구분되는데, 여름철인 우기에는 땅속의 벌레들이 모두 땅 위로 나와 활동하기 때문에, 수행자들이 길을 다니다가 본의 아니게 살생을 범하기도 했다. 또한 폭풍우와 질병이 유행하는 시기이므로 탁발수행에도 적합한 계절은 아니었다. 때문에 부처님은 우기에는 외출하지 말고 수행정진 할 것을 제자들에게 말했다. 안거에는 생명의 존엄성을 지키려는 배려가 내재되어 있었던 것이다.
불교가 기원을 전후로 중국에 전래되어 토착화되는 기간은 대략 3-4백년의 시간을 필요로 한다. 여러 국가에서 다양한 루트를 통해 전래된 불교는 외국 승려들의 전도시기를 거쳐 중국인이 출가하여 중국불교의 주축을 이루는 시기로 발전한다. 이때부터 뜻을 같이 하는 승려나 승속이 어우러진 집단이 출현하여 자체의 규약을 정하고 일정한 장소를 중심으로 수행하게 되었다. 여산 혜원의 백련결사를 비롯하여 석도안의 교단이 대표적이다. 특히 석도안은 교단의 운영법규를 정할 때 당시에 들어와 있던 여러 가지 계본(戒本)을 참고로 독자적인 규율을 제정하였다. 이런 전통은 남산율종의 성립으로 완전히 체계화된다. 대략 이때부터 중국에서도 하안거와 동안거를 중심으로 안거가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북반구의 겨울은 혹독하게 춥기 때문에 한 곳에서 수행하는 것이 필요했다. 문화적 자연적 환경이 동안거를 시작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이후 중국의 안거문화가 주변국가에 전파되어 독특한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당시의 인도에서는 1년에 1회의 안거로써 수행에 전념케 하고 이를 근간으로 법랍(法臘)을 삼았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본래 여름철 우기와 관련이 있던 안거의 별칭에는 여름을 의미하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다. 안거의 다른 말로는 하행(夏行), 하경(夏經), 하서(夏書), 하단(夏斷), 좌하(坐夏), 좌랍(坐臘). 우안거(雨安居), 하안거(夏安居) 등이 있다.
안거에 들어갈 때는 결제(結制), 이를 끝낼 때는 해제(解制)라고 한다. 이 시기는 특별 정진(精進) 기간이나 마찬가지다. 해제 때는 제방을 유행하면서 대중들의 삶을 몸소 체험하고 그들을 불국정토로 인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을 찾기 위해 노력한다. 이때를 보통 만행기라 부르는데 일종의 방선 시기라 할 수 있다. 일거수 일투족을 수행의 연장으로 생각하라는 의미인 것이다.
지금도 안거 때마다 전국의 수많은 도량에는 불자들이 구름처럼 모여들어 정진한다. 각자의 근기에 따라 화두를 들기도 하고, 불보살의 명호를 염송한다. 부처님 가르침을 배우고 익히는데 시기와 장소가 따로 있을 수는 없겠지만, 구도(求道)의 일념으로 정진하는 안거의 의미를 바르게 새긴다면 불국정토 건설은 그다지 요원하지 않을 것이다.
<본지 상임논설위원·불교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