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도 걸림없는 지혜 광명 터득
훌륭하게 현실계에서 생활하는 보살
선재동자는 해운 비구로부터 남쪽으로 60유순쯤 가서 능가(楞伽)산 가는 길옆의 해안(海岸)이라는 마을에 선주(善住) 비구를 찾아가 보살행을 물으라는 가르침을 듣고 그를 찾아간다. 그 마을에 이르러 선주 비구를 찾다가 이 비구가 허공에서 거닐고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곳을 보니 무수한 천신과 용왕, 긴나라왕, 마후라가왕, 아수라왕, 가루라왕, 나찰왕, 야차왕, 범천왕, 정거천인(淨居天人)들이 합장, 경례, 공양, 찬탄하고 있었다. 이것을 본 선재동자도 환희하여 선주 비구에게 합장 예경하면서 보살이 어떻게 불법을 수행하는지 등에 대해 가르침을 청했다.
선주 비구는 선재동자가 이미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었으면서도 다시 불법과 온갖 지혜의 법을 묻는 것을 칭찬하고 이렇게 설한다. “선남자여, 나는 이미 보살의 걸림 없는 해탈의 문을 성취했으므로 오고 가고 다니고 그침에 따라 생각하고 닦고 관찰해서 곧 지혜의 광명을 얻었으니 이름이 끝까지 걸림 없음이니라.
이 지혜의 광명을 얻었으므로 일체중생의 마음과 행을 아는 데 걸림이 없고, 죽고 나는 것을 아는 데 걸림이 없고, 지난 세상일을 아는 데 걸림이 없고, 오는 세상일을 아는 데 걸림이 없고, 지금 세상일을 아는 데 걸림이 없고, 말과 음성이 제각기 다름을 아는 데 걸림이 없고, 의문을 결단하는 데 걸림이 없고… 이 몸으로 시방의 모든 세계를 두루 이르는 데 걸림이 없나니, 왜냐하면 머무름도 없고 짓는 일도 없는 신통한 힘을 얻은 연고이니라.
선남자여, 나는 이 신통한 힘을 얻었으므로 허공에 다니고 서고 앉고 눕기도 하며, 숨고 나타나기도 하고, 한 몸도 나타내고 여러 몸도 나타낸다. 장벽을 뚫고 나가기를 허공처럼 하고, 공중에서 가부좌하고 자유롭게 가고 오는 것이 나는 새와 같이 하며, 땅 속에 들어가기를 물과 같이 하고 물을 밟고 가기를 땅과 같이 하며… 한 생각 동안에 동방으로 한 세계도 지나가고, 두 세계·백 세계·천 세계·백천 세계·한량없는 세계와 말할 수 없는 세계를 지나기도 하며… 저 세계의 모든 중생을 내가 다 분명하게 보고 그들의 크고 작고 잘나고 못나고 괴롭고 즐거움을 따라 그 형상과 같은 몸으로 교화하여 성취하게 하며, 만일 나를 친견하는 중생은 모두 이러한 법문에 편안히 머물게 하느니라.
선남자여, 나는 다만 이 부처님께 공양하고 중생들을 빨리 성취시키는 데 걸림 없는 해탈문만을 알거니와, 저 보살들이 크게 가엾이 여기는 계행·바라밀다 계행 ·대승의 계행·보살의 도와 서로 응하는 계행… 때를 여읜 계행을 가지나니 이러한 공덕이야 내가 어떻게 알며 말하겠는가.”
이상과 같이 선주 비구가 성취한 것은 ‘보살의 무애 해탈문’이다. 그는 오고 가며 다니고 머무를 적에 항상 생각하고 닦고 관찰해서 어디에도 걸림없는 지혜의 광명을 얻게 됐다. 이 때문에 일체의 것을 아는 데에 걸림이 없고, 몸으로 시방의 모든 세계에 두루 이르는 데도 걸림이 없다. 그리하여 모든 세계의 부처님을 공양하고 모든 세계 중생의 모습과 처지에 따라 적절히 교화하고 성취시킬 수도 있다.
선주 비구는 지혜로써 미혹함을 모두 다스려서 어디에 머무는 바도 없다. 선주 비구는 고요함과 시끄러움에 집착하지 않고, 오염과 청정의 경계에 구애받지 않는다. 그러므로 선주 비구는 그 이름처럼 훌륭하게 현실 세계에 머물면서 생활하는 사람인 것이다.
이렇게 생활하는 가운데 선주 비구는 항상 모든 부처님을 공경, 공양하고 중생들을 각성시키고 정화해서 깨달음을 이루게 하는 데 아무런 장애가 없다. 이러한 자세는 보살도의 근본인 동시에 대승의 계(戒) 가운데에서도 중심이 된다. 모든 부처님을 공경, 공양하고 중생들을 개화(開化)시키면서 살아가는 것이 선주 비구에게는 이미 계(戒)로서 자리하고 있는 것이다.
덕운 비구의 염불삼매의 법문을 통해 부처님[佛]과 선정[定]에 관한 것을 배우고, 해운 비구의 큰 바다를 관찰하는 법문을 통해 진리[法]와 지혜[慧]에 대한 가르침을 받은 선재동자는 이제 다시 선주 비구로부터 불도 수행자[僧]와 계(戒)에 관한 것을 배우게 된 것이다. 선재동자는 이들 세 비구들로부터 부처님과 부처님이 설하는 진리, 그리고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아가는 사람 [三寶]에 대해 배우고, 실천적으로는 마음을 집중 통일하는 것, 진리를 바르게 관하는 것, 바른 생활규범에 따라 생활하는 것[계정혜 三學]에 대해 가르침을 받았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