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상통해 ‘제행무상’의 삶 통찰
결혼후 27년이 지난 후에야 그녀는 디파(Dipa)라는 여자 아이를 낳았고, 이 때부터 디파의 어머니라는 의미의 ‘디파 마(Dipa Ma)’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 뱅갈어로 디파는 빛이었기에, ‘빛의 어머니(mother of light)‘라는 별명도 갖게 되었다.
얼마 후 디파마는 고혈압에 걸려 몇 년간 누워만 지낼 수 밖에 없었다. 남편 라자니는 엔지니어로서 풀 타임 근무를 하는 고된 와중에서도 그의 아내를 간호하고 걸음마 하는 어린 디파를 돌볼 수 밖에 없었다. 1957년 어느 날 밤, 그는 일을 마치고 집으로 온 뒤 디파마에게 아프다는 말을 한 뒤 불과 몇시간만에 심장마비로 죽고 말았다.
디파마는 슬픔과 혼란에 휩싸였다. 10년이라는 기간에 그녀는 두 아이(유산)와 남편, 그리고 자신의 건강을 잃은 것이다. 그녀의 건강은 자꾸만 나빠졌고, 살아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명상 수행일 뿐이라고 확신하게 되었다.
마침내 그녀는 친척이자 친구인 아나가리카 무닌드라(Anagarika Mudindra)가 지도하는 미얀마의 타타나 예이크타(Thathana Mudindra) 명상센터에서 본격적인 수행을 하게 된다. 놀랍게도 첫째 주의 명상기간 동안 그녀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의 삶을 통찰하는 체험을 얻는다. 그녀가 밤낮으로 지니고 있던 슬픔도 사라졌다. 그녀의 오랜 두려움도 사라졌으며, 전례없는 평정심과 사물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이후 디파마의 수행은 극적으로 깊어졌으며, 그녀는 전통적인 관법의 다음 수행 단계로 나아갔다. 6년 뒤, 그녀는 또다시 독특한 수행 체험을 얻었으며, 심오하고도 궁극적인 변화를 감지했다. 53세의 나이에, 제한된 가르침과 수행 기회를 통해 해탈을 갈망한 지 30여년 만에 디파마는 처음으로 견성체험을 하게 된다. 이듬 해 집과 명상센터에서 수행을 계속한 후 그녀는 두 번째 깨달음을 얻고 육체적 정신적 상태 역시 거듭나게 되었다.
디파마는 자신의 변화에 놀라는 주변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신선해졌고 어두운 그림자라곤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대들도 명상을 하게 되면 마찬가지로 행복해 질 겁니다. 마술이 아닙니다. 오로지 믿고 따르세요.”
1963년 디파마의 스승 무닌드라는 그녀에게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신통력과 영적 힘을 기르는 수행을 지도했다. 그녀는 특별한 집중력과 결점없이 계율을 지킨 수행자로서 선택된 것이었다.
1967년 인도로 돌아간 디파마는 제자들이 바쁜 일상생활에서도 마음챙김(mindfulness)할 수 있는 수행법을 만들었다. 말하기, 다림질하기, 요리, 쇼핑, 아기 돌보기 등 어떤 순간에서도 활용될 수 있는 마음챙김을 가르친 것이다. 이후 디파마는 일상의 혼돈 속에서 힘을 발휘하는 명상을 보급함으로써 미국을 비롯한 서구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김재경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