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통령이 취임한 지 세 달이 다 되어간다. 선재는 이전 대통령에게 걸었던 기대보다 훨씬 많은 기대를 새 대통령에게 했었다. 선거 기간 동안 대통령 스스로도 말했듯이 자발적인 국민들의 성원에 힘을 얻었던 그는 국민에게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적극적으로 파병안을 처리하도록 노력하면서 기대를 저버리기 시작하더니 이번에는 과거 공안정국에서 늘 듣던 이야기들이 보도된다. 결국에는 그들이 하던 ‘대통령의 노하우’를 쓰고야 말았다. 그런 비법은 어떻게 그리도 잘 전해지는지...
도대체 대통령들은 직접 처리하기 껄끄러운 문제들은 왜 꼭 해외에 나가있을 때 처리하는지 모르겠다. 화물연대의 파업에 대해서 ‘엄중’, ‘법대로’, ‘불법’ 등의 듣기에도 섬뜩한 단어들을 사용하더니 결국 ‘공권력 투입’이라는 무척 귀에 익은 단어까지 등장하였다. 문제는 대통령이 국내에 없다는 사실이다. 자리를 비울 때 벌어진 일이니 대통령은 책임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묘안인 셈이다.
믿기는 싫지만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는 말을 점점 실감하는 선재. 선재가 처음으로 법당에 들어갔을 때, 법납에 따라 앉는 자리가 정해져 있다는 설명을 듣고는 그 보이지 않는 질서에 놀란 적이 있었다. 하지만 자리가 정해져 있다고 해서 그 자리에 앉으면 사람까지도 변한다는 말은 아니었다. 의상스님은 할아버지와 아버지, 아들을 시간에 비유한 적이 있다. 복잡한 내용이 더 있지만 아버지란 할아버지의 과거이고 아들의 미래라는 점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고정적인 시간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있어야 할 자리라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대통령의 자리라는 것이 절대적인 자리가 아니라 국민을 상대로 한 자리인 점에서 늘 국민을 생각해야 하는 자리이다. 따로 혼자 존재하는 자리를 생각하기 때문에 자리가 사람을 만들게 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리에 앉는 사람이 문제이다. 그것이 대통령 하는 ‘노하우’일 텐데.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