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자시절을 막 끝낸 초심자가 큰스님처럼 주지실 마루에 앉아 있었다. 하도 노숙하게 앉아 있어서 같은 도반들이 인사를 했다면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그렇다고 몸집이 큰 것도 아니고 연로해 보이지도 않는 야무진 체형의 조그마한 스님이 말이다. 이런 모든 모습을 다 묶어 표현한다면 오뚝이 같은 스님이다. 강원에서 처음 만나서 어느새 십년을 훨씬 넘는 세월을 함께 하고 있다. 그때나 지금이나 오직 학문을 향한 한길을 가는 스님인데 법명이 묘경이다.
이런 묘경스님에게는 아픈 기억이 있다. 통도사 강원에 있을 때 운전면허시험을 치러 갔는데, 다소 쉽게 생각했던 모양이다. 같이 간 스님은 한번에 붙었는데 묘경스님은 몇 번을 가야 했다. 그때 도반들이 다 한마디씩 했다. “그래서 어찌 살래? 묘경스님 대학 나온 거 맞나?”
역시 운전면허는 공부 잘하는 사람이 못 딴다는 말이 맞는 것인가 싶다. 나름대로 자존심도 상하고 빨리 합격을 해야겠다는 욕심도 생긴데다가, 도반들의 넉넉한 핀잔과 조롱에 은근히 약이 오른 묘경스님은 마침내 면허 시험에 통과를 하게 된다. 그저 아련한 하나의 추억일 뿐이다.
묘경스님의 강당 생활은 열심이었다. 자부심도 대단했고, 고집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리고 단순하게 사는 법을 일찍이 배웠다. 당나라의 마조스님께 한 스님이 묻되 “도를 어떻게 닦아야 깨달음의 경지에 오를 수 있습니까?” 하니 스님 말씀이 “도를 닦는다는 게 별 게 아니지. 그저 배고프면 밥 먹고 졸 리우면 잠자는 게지.” 라고 하셨다.
세상에 이처럼 쉬운 일이 또 있을까마는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밥 먹을 때 밥만 먹고 잠 잘 때 단순히 잠만 잘 수 있어서 매 순간을 번뇌 없이 충실하게 사는 사람처럼 행복한 사람은 없으리라. 그런데 이런 가르침을 실천이라도 하듯 묘경스님의 일상에는 특별히 꾸미거나 인위적인 가식이 없다. 어찌 보면 지극히 낙천적이다. 그래서 아쉬울 것도 답답할 것도 없는 여유로 사는 듯 하다. 그렇기 때문에 때로는 저런 성격에 학문이 되나 싶을 때도 있다. 원래 일 잘하는 사람은 표 나지 않게 일하고 공부 잘하는 하는 사람은 남들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공부를 하는가 보다.
한번은 이런 낙천적인 성격을 대변하는 일이 있었다. 가끔 부산을 지날 때는 내가 사는 처소에 들리곤 했다. 내 방 냉장고에 오래된 우유가 하나 있었는데, 평소에 우유를 잘 먹지 않는 터라 별 관심 없이 내버려둔 것이었다. 그걸 기분 좋게 마시고는 빈 통을 냉장고 위에 올려놓았다. 내가 그것을 발견했을 때 어이가 없어 날짜를 확인해 보니 한달하고도 반이나 지난 것이었다. 그런데 그 사실을 안 후의 묘경스님의 반응은 생각보다 미미했다. 그렇게 오래된 것을 왜 그렇게 놔두었느냐는 정도의 투정으로 끝난 것이다. 그것을 그렇게 내버려둔 나도 무심하지만 그것을 먹고도 태연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아마 소심한 성격이라면 당장 화장실에 가서 토하든 설사를 하든 무슨 일이 있어야 정상일 텐데, 그냥 그런 가부다 하고 수용하는 눈치였다. 물론 그 속사정이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말이다.
많은 추억과 사연을 뒤로한 체 함께 공부하던 도반들이 강원을 졸업하고 각자 선방으로 가거나, 아니면 소임을 살러 인연 따라 떠날 때 묘경스님은 할 게 공부밖에 없다고 생각하고는 대학원에 진학했다. 그때부터 지극한 노력으로 공부한 결과, 대학원을 마치고는 일본에 교환학생으로 공부하러 간다고 떠났다. 내 경험으로 볼 때 생활공간이 한번 움직일 때 마다 세상이 뒤바뀌는 혼란이 찾아오는 법인데 그런 면에서는 참 자유롭게 사는 편이다. 그것은 단순하게 살아온 생활 습관이 크게 작용했으리라고 본다. 이런 저런 여건과 환경에 굳이 무어라고 주장하지 않고 주어진 현실대로 순응하며 사는 모습이 보기 좋은 스님이다. 그러고 보면 전생에 복을 닦아도 많이 닦은 모양이다. 왜냐하면 공부하고 싶다고 마냥 공부할 수 있는 것도 드문 일이기 때문이다. 시간이 허락되면 경제력이 안되고, 경제력이 있으면 시간이 안 되는 것이 세상사이고, 만약 모두가 다 충족되면 지혜가 부족해서도 힘든 법인데 그래도 오뚝이처럼 언제나 공부한다고 자신을 추켜세우는 모습에 도반으로서 흐뭇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이제는 박사과정까지 끝냈다. 이제 그의 공부에 있어서 제도상의 과정이 끝나면 어느 강단에 서든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알리는 불법홍포의 별이 되기를 기대하고 기원해 본다. ■(사)한나래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