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묵 속 자상함 변함이 없어
자신에 철저, 후배들 큰 영향 받아
20년을 훨씬 넘긴 출가전. 고등학생의 눈에는 만나는 스님마다 신기할 뿐이었다. 온화하고 따뜻한 서정적인 정서에서 서릿발 같은 기상에 두려움을 느끼게 할 정도로 독특한 스님들을 보면서 청소년기의 생각이 커가고 있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을 지내면서 부처님과의 인연을 만난 후 너무도 독특한 스타일의 스님을 만나게 되는데, 현근스님도 그 중 한 분이다. 물론 출가전의 일이다. 그때 본 스님은 깡마른 체구에 눈은 예리하게 빛나고 삭발을 한 모습은 한 치의 빈틈도 용납하지 않는 서슬 푸른 수행자의 전형이었다. 말을 많이 해서 전후좌우를 설명하시는 스타일도 더더욱 아니었다.
그래서인지 울산 해남사 불교학생회에 나온 학생들에게는 많은 사연과 추억을 남겨준 잊혀지지 않는 호랑이 스님이 되었다. 지금도 이 글을 쓰노라니 어디선가 문을 활짝 열어 젓치고 들어오실 것만 같은 느낌이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스님의 이미지 중에는 검정 고무신이 크게 자리하고 있다. 언제나 삭발을 막 끝낸 모습에 검정 고무신을 신고, 옷은 헤어져 탈색된 남루한 누비가 강한 인상으로 남는다. 겨울이 아닐 때에는 광목을 염색해서 주로 입고 다니셨는데, 단정하다기 보다는 이미 세상과는 먼 한 경지 오른 도인을 연상하게 했다.
그때는 그 모습이 어찌나 좋던지 항상 흠모와 동경의 대상이 되었다. 많은 스님들이 흰 고무신을 신고 계실 때 유독 검정 고무신만을 고집하는 스님의 마음에서 존경심이 일어났다. 그냥 왠지 멋져 보이고 그래야 될 것 같고, 그런 것이 당연한 모습일거라는 생각이 들었던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나도 출가 후 십 년 정도 지나 내 스타일을 감당할 수 있을 때부터는 검정 고무신만을 고집하고 있다. 거기다 한 수 더 떠서 안경도 가장 단순한 디자인의 검정 뿔테 안경을 지금껏 끼고 있다. 입만 열면 불교의 현대화와 생활화, 세계화를 이야기 하면서도 그때의 강한 인상을 지울 수 없어 현대화도 생활화도 못하고 과거의 추억으로 살고 있다.
그러나 스님의 멋이 겉모습에만 있었다면 오늘 이렇게 기억될 일도 없었으리라. 가끔 절에서 모습을 보이지 않을 때에는 항상 선방에서 정진하시고 해제하면 다시 절로 돌아오셨다. 한번은 몇 명의 학생들과 같이 버스를 타고 해인사를 갔었다. 날씨가 덥다고 느꼈는데 그때까지 누비를 입고 다니셨다. 그리고 7일 용맹정진을 하신다고 했다. 일주일 잠을 안자고 참선을 하신다며 자상하지 않은 특유의 말투로 이야기 하셨다. 한껏 기죽은 우리는 내심 탄성을 질렀다. 이처럼 자신에게 철저할 뿐 자상하지도 않은 스님을 왜 그렇게 따르게 되었는지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그리고 오랜 시간 스님과 함께 한 인연은 아니었지만 절에 계시는 동안에는 언제나 학생회에서 법문을 해주셨다. 어느 날은 법문을 시작하시면서 대뜸 이렇게 물으셨다. “면도날은?” 모두 의아해서 처다 볼 뿐이었다. 다시 물으셨다. “면도날은?” 학생회장이던 나는 누군가는 대답해야한다는 의무감에 “없습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랬더니 작은 미소를 지으시면서 “도루코야!” 하시는 것이다. 어이없는 상황에 와르르 웃고 말았다. 한때 유행하던 ‘결론은 버킹검’이라는 광고문구가 떠올랐다. 불교는 어렵지 않으니 엉뚱한 생각을 접고 단순하게 세상을 보라는 큰 의미가 담겨져 있었는데, 알아 차리지 못했던 것이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몇 년 전 내가 통도사부산포교원 소임을 살 때, 스님이 통도사승가대학 강주로 오셨다. 개인적으로는 반가움보다 어떻게 변하셨을까 하는 설렘이 더 컸었다. 그런데 아니나 다를까 통도사승가대학을 운영해 가시는 방법이 그때의 서슬 푸른 호령의 기상이 그대로 살아있는, 강한 이미지 그대로였다.
첫째 학인들의 출입부터 엄하게 통제되었다. 학인들이야 못마땅할 일이지만 객관적으로는 바람직한 운영이었다. 그리고 승가대학의 기강이 서고 긴장이 느껴지는 수행자의 공동체라는 이름에 걸맞는 분위기가 되었다. 그리고 때때로 시자를 데리고 도량을 거니는 스님의 과묵한 모습은 25년 전 치열한 구도의 과정에서 보여주셨던 고집스러움과 편견을 넘은 완숙함 이었다.
오늘 출가대중의 일원으로 함께 할 수 있도록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현근 스님께 마음으로부터 존경과 감사를 드리며, 우리 주변에 스님 같은 철저함으로 후학을 이끄시는 선배 스님들이 많이 계심을 다행으로 여기고 있다.
■(사)한나래 문화재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