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의 눈으로 일체제불을 보라
억념염불은 보살도 실천의 근본
문수보살의 지도에 따라 덕운비구를 찾아간 선재동자는 보살이 어떻게 보살행을 배우고 닦으며 보현행을 빨리 원만케 하는지 가르쳐주기를 청한다. 이에 덕운비구는 선재동자가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내어서 보살의 행을 묻는 것을 칭찬하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착한 남자여, 나는 자유자재하고 분명하게 이해하는 힘을 얻어서 믿는 눈이 청정하고 지혜 빛이 밝게 비치므로 경계를 두루 관찰하여 모든 장애를 여의었으며, 교묘하게 관찰하여 넓은 눈이 밝아서 청정한 행을 갖추었으며, 시방의 모든 국토에 가서 여러 부처님을 공경하고 공양하며, 모든 부처님 여래를 항상 생각하며 모든 부처님의 바른 법을 모두 지니고 시방의 모든 부처님을 항상 뵈옵느니라. 이른바 동방에서 한 부처님·두 부처님·열 부처님 내지 불가설 불가설 부처 세계의 티끌수 부처님을 뵈옵느니라. 동방에서와 같이 남방·서방·북방과 상방·하방에서도 역시 그러하며, 낱낱 방위에 계시는 부처님들의 갖가지 빛깔·갖가지 형상 ·갖가지 신통·갖가지 유희·갖가지 모인 대중과 장엄한 도량·갖가지 광명이 끝없이 비치는 일·갖가지 국토·갖가지 수명과 중생들의 갖가지 마음을 따라서 갖가지로 바른 깨달음을 이루는 문을 나타내어서 대중들 가운데서 사자후 하느니라. 착한 남자여, 나는 이 모든 부처님의 경계를 생각하여 지혜의 광명으로 두루 보는 법문(憶念一切諸佛境界智慧光明普見法門)을 얻었다.”
여기에서 설하는 바와 같이 덕운비구는 진리를 바르게 이해할 수 있는 힘을 갖추어서 모든 것을 진실되게 믿을 수 있는 안목을 갖고 있다. 그리하여 청정한 지혜의 눈으로 일체의 경계에서 아무런 장애 없이 모든 것을 분명하게 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는 시방세계에서 항상 널리 티끌수와 같은 부처님과 그 경계를 자유자재하게 볼 수 있다. 이 법문에서 강조하고 있는 것은 결국 지혜의 눈을 갖고 항상 시방세계의 모든 부처님을 보고 그 경계를 생각하는 점이다. 그러므로 덕운비구가 선재동자에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염불삼매를 닦으라는 것이다.
덕운비구는 지혜의 눈을 갖고 항상 시방세계의 일체 제불을 본다고 하면서 보살들이 지혜를 갖고 청정하게 수행하는 21가지의 염불문(念佛門)을 설한다. 그 가운데 몇 가지만을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① 부처님이 큰 지혜의 빛으로 법계를 두루 비추는 것을 염한다. ② 부처님이 중생들을 전도된 삶에서 떠나게 해주신다는 것을 염한다. ③ 부처님은 위대한 열 가지의 힘을 가지고 계심을 염한다. ④ 부처님은 어떠한 법에도 전도됨이 없음을 염한다. ⑤ 부처님이 시방세계에 항상 상주하고 계심을 염한다. ⑥ 부처님이 국토에 따라서 몸을 달리 나타냄을 염한다. ⑦ 부처님의 열반의 모습을 염한다. ⑧ 부처님이 일체 장소에서 바른 깨달음을 성취하는 것을 나타내 보인다고 염한다.
이와 같은 염불문은 부처님의 덕을 염하는 것으로서, 실천적으로 모든 부처님을 염하는 의미가 될 것이다.
여기에서 항상 부처님을 생각하는 염불삼매는 정토교에서 말하는 아미타불을 칭명하는 염불과는 뜻이 다르다. 즉 이 염불은 칭명염불이 아니라 부처님과 그 세계를 일념으로 생각하는 억념염불(憶念念佛)이다.
문수보살의 지도에 따라 찾아간 최초의 선지식에 의해 염불이 설해지는 것은 염불이 보살도의 실천에 근본이 되고 중요한 것이기 때문일 것이다. 보살도는 부처님을 떠나서는 있을 수 없다. 보살도는 부처님을 이상으로 하여 그 덕을 기리면서 출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항상 부처님의 덕을 일념으로 생각하는 염불삼매는 모든 보살행에 앞서게 된다. 그리고 항상 염불함으로써 여러 가지 번뇌와 어려움을 소멸시키는 인연이 되기도 하고, 훌륭한 행을 이루게 하는 인연이 되기도 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본다면 염불삼매는 보살도의 출발에서부터 모든 과정에서 일관되게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염불삼매는 모든 부처님과 그 경계를 보게 해 주며, 중생들의 원에 응해서 자비의 행을 펼치게 하고, 부처님의 큰 힘을 염해서 수습하는 등 여러 가지의 덕이나 자재한 작용을 갖추고 있다. 그러므로 보살은 이러한 염불삼매를 제대로 닦을 수 있도록 지혜로운 안목을 갖출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지혜의 눈을 얻어야만 모든 부처님들을 볼 수가 있고, 진정한 부처님을 발견해내는 것이 깨달음의 도에 들어가는 첫걸음이다.
<금강대 불교문화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