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뉴욕에 계시는 여러 신도님과 교포 여러분을 모시고 뉴욕 한마음선원의 개원식 겸 첫 법회를 갖게 되어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우리는 다 같은 길을 가는 도반으로서 이 자리에 함께 모였습니다. 그래서 여기는 어느 특정 종교나 종파를 초월하여 누구나 다 함께 모여 한마음 도리를 공부하는 도량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지금 같이 살고 있는 이 지구를 한 버스라고 가정한다면, 우리 모두는 같은 버스 안에 타고 있는 거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버스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도 모르면서 네 종교 내 종교를 찾아야 할 이유도 없고 또 그럴 새도 없다고 봅니다. 때문에 여러분은 네 종교 내 종교 찾기 이전에 진리를 탐구해야 되는 것이고, 진리를 탐구하기 위해서는 먼저 나를 알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를 알아야만이 비로소 상대를 알고, 내 가정과 사회를 알고, 국가와 세계를 알고, 그리고 우주를 알게 됨을 깊이 믿고 마음을 견고하게 해야 합니다. 우리 마음의 역사를 잘 가져오고 못 가져오는 것은 바로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이것은 결코 개인의 일생이나 국가 민족의 역사만이 아니라 세계 역사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밥이나 해놓고 밖으로 빈다든지 또 생각으로 어떤 허상을 지어 놓고 거기에 맹신한다든지 하는 것이 결코 종교가 아니고 불교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허상을 지어 놓기 이전에 그렇게 하도록 마음 내는 ‘나’가 엄연히 있다는 이 귀중한 사실을 먼저 알고 발견해야 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먼저 본래 내 근본 주인공을 믿어야만 나를 발견할 수 있음을 꼭 알아야 합니다. 즉 현재의식 이전의 자기 자신을 믿어야 되는 겁니다. 비유하자면 이는 마치 심봉이 있음으로써 맷돌이 돌아갈 수 있고 심봉이 있음으로써 차바퀴가 굴러갈 수 있듯이, 한마음 심봉이 있음으로 해서 내 육신이 움직일 수도 있고 우주 천체도 돌아갈 수 있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핵이 없이는 에너지가 없고, 에너지가 없이는 우리가 활동을 할 수도 없고 또 물질을 이룰 수도 없는 이치와 같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본래 근본 한마음 심봉에는 천체물리학 지리학 공학 천문학 의학 생물학 등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습니다. 이것을 다 통달하여 자재하면 그게 바로 자유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러분 모두가 다 한마음의 물리가 터지기를 발원하고 있습니다. 내 마음이 터진다면 바로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되고, 둘이 아닌 도리를 알게 된다면 둘이 아닌 나툼을 알게 되고, 둘이 아닌 나툼을 알게 되면 열반 아닌 열반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그 뒤에는 바로 그대로 모든 것이 여여함을 알게 되어 우리의 찰나 생활을 완성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당연히 색이 공이요, 공이 색이라고 한 문제가 타파되고 여러분이 자유자재할 수 있는 자유권을 얻게 되어 부처님의 뜻을 그대로 반영하면서 삼천 년 전 부처님이 아니라 현실에 자기 자신으로서 부처님의 마음과 서로 계합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를 모른다고 해서 못 믿고 타의에서 구하는 타력신앙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며, 나를 알기 위해서 반드시 자력신앙이 되어야 하고 또 그러한 행을 해야 됨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나’는 무엇인가? 이 몸은 어떻게 하여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가? 즉 여러분이 이 세상에 나올 때에 어떻게 해서 부모님으로부터 몸을 받아 가지고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는가 하는 겁니다.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출현하기 위해서는 부모의 정자와 난자가 합쳐질 때 거기에 영원한 자기의 불씨가 같이 들게 됨으로서 비로소 한 생명이 이 세상에 출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부모가 서로 만났다 해도 거기에 영원한 자기의 불씨가 같이 합해 들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출현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아버지의 뼈를 빌고 어머니의 살을 빌고 거기에 자기 자신의 과거에 살던 의식이 한데 합쳐짐으로써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삼합이 한데 계합되어 이 세상에 등장하기 위해서는 수십억 마리의 정자 난자 가운데에 오직 딱 한 개씩만이 서로 합쳐져서 몸을 받게 됩니다. 이를 말해서 부모님의 몸을 받는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수십억 분의 일의 비율로써 하나의 생명이 이 세상에 등장하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자기가 전자에 살 때에 지은 인(因)의 과(果)인 것입니다. 전자에 지은 인의 과로서 뭉쳐진 몸뚱이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살면서 마음으로 몸으로 부닥쳐 오는 모든 것들 즉, 괴로움과 고독함, 허무감, 또 가난과 병고, 그리고 서로서로 부딪치고 아픔을 겪는 모든 불행한 고통들도 그렇고, 또 편안하고 원만히 잘 되는 행복한 즐거움도 마찬가지로 다 전자에 지은 인으로 해서 생기는 과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전자에 지은 악업·선업이 한데 뭉쳐서 거기에서 여러 가지로 나온 결과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으로만 그치고 만다면, 즉 업보대로 전자에 결정지어진 대로만 받고 마는 인생이라면 우리에게 빛은 없습니다. 열이 없으면 얼음을 녹일 수 없듯이 우리에게 빛이 없다면 한 순간의 어둠도 걷어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본래부터 빛이 있기에, 아니 본래 빛이기에 어떠한 어둠도 걷어낼 수가 있습니다. 마치 칠흑 같은 어둠도 한 줄기 햇살로 인해 걷히듯이 말입니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는 지금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결코 거기에 속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께서 자기가 본래 빛임을 안다면 오히려 고통이 아니라 순간순간 자기를 밝음으로 인도하는 과정이요 밑거름이 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 무엇이라 해도 찰나찰나 돌아가면서 순간순간 형성되어 나왔다 사라지는 것일 뿐이니 겉으로 나온 현재의식에 걸리거나 속지 말고 모든 것을 나온 곳으로 되놓아라, 놓고 쉬라고 하신 것입니다. 되놓고 쉬면 모든 업이 지워지게 되어 있습니다. 마치 녹음테이프를 되돌려 스위치를 누르면 녹음된 것은 지워지고 새로운 것이 다시 녹음되듯이 말입니다. 그래서 그 어떠한 것도 고정된 바가 없는 것이니 나온 곳으로 되놓고 쉬어라, 그리고 또 한생각 돌리라고 하는 겁니다.
그런데 이 모든 것들, 즉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모두 다 자기가 녹음한 대로 테이프가 되어 나오듯이 자기가 짓고 자기가 받는 것입니다. 자기 마음이 짓고 자기 마음이 만들고 자기 마음이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다 마음입니다. 마음 쓰기에 달려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이야말로 선악을 초월해 모든 것을 만드는 전지전능한 창조자입니다. 그러니 이제부터 여러분은 마음에 걸리고 속아서 좁게 생각을 짓는 졸장부가 아니라 걸림없이 자유로이 마음을 쓰는 대장부가 되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창조주다 하나님이다 신이다 부처님이다 보살님이다 하는 이 모두가 다 자기 마음 안에 갖춰져 있음을 알고 자기 마음의 근본을 꼭 믿으십시오.
그렇지 않고 만약 여러분께서 자기 마음 안에 모든 것을 이룰 수 있고 만들 수 있는 핵과 에너지가 충만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당당히 그것을 자유로이 쓰지 못하고 바깥으로 찾거나 끄달리거나 조그만 마음의 갈등에도 걸리고 만다면 이것은 마치 자기가 천하장사이면서도 조그만 지푸라기 하나 들 힘도 제대로 쓰지 못하는 것과 같은 꼴인 것입니다. 여러분께서 이렇다면 얼마나 억울하고 통탄할 일인지 상상을 좀 해 보십시오.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모든 것이 다 한 곳에서 나고 드니 거기에서 나오는 것에 결코 걸리지 말아야 하느니라. 결코 속지 말아야 하느니라.’ 하셨습니다. 그리고 또 ‘모든 것은 하나도 고정됨이 없느니라. 네 마음도 고정됨이 없느니라. 보는 것 듣는 것도 고정됨이 없느니라. 가고 옴도 고정됨이 없느니라. 먹고 입고 자는 것도 고정됨이 없느니라. 그리고 만남도 헤어짐도 고정됨이 없느니라. 그래서 일체가 다 공(空)하였느니라. 그러니 오로지 거기에서 나오는 모든 일체를 다시 거기에다 되놓아야 하느니라. 즉 자기 주인공에 되놓고 쉬어야 하느니라. 이 현상계는 고정불변한 어떤 실체가 있는 것이 아니고 다만 한마음 주인공의 나툼이요 그림자이니라. 그러나 한마음 주인공은 개별적인 하나가 아니라 포괄적인 하나로 돌아가므로 바로 주인공인 것이니라. 이것마저도 또한 공했기 때문이니라.’하신 겁니다. 그러므로 그 자리에서 나온 것 그 자리에다 바로 맡겨 놓고 ‘당신밖에는 나를 이익 되게 이끌어줄 수 없고, 당신밖에는 내 병을 낫게 해줄 수 없고, 또 당신밖에는 우리 가정을 화목하게 할 수 없지.’ 하고 믿고 맡기라고 하는 겁니다. 어떠한 문제가 생겼다 하여도 거기에 절대로 속거나 걸리지 말고 순간순간 주인공에 맡겨 놓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엉뚱하게 밖에 의지해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구하거나 찾거나 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오히려 그 문제에 속고 문제를 더욱 크게 만드는 것밖에는 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어떠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문(門)을 따로 찾으려 하거나 따로 문을 찾아서 밖으로 나가려고 하거나 또는 안으로 들어오려고 하는 자는 보살 될 자격도 없거니와 불자 될 자격도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본래 모습이 없어서 벽도 없고 복장도 없고 문도 없어서 툭 터져 있습니다. 본래 툭 터져 있어 어디에도 걸릴 것 또한 없는 것이므로 그 무엇에도 속지 말란 말입니다. 어디에도 걸림 없이 속지 말고 가고 싶으면 가고 오고 싶으면 오는 것이 그대로 여여함입니다.
그러니 삼재(三災)다 운명이다 팔자다 업이다 하는 것도 다 본래 없는 것입니다. 그런 것이 붙을 자리가 본래 없는 것입니다. 다만 자기가 그렇게 정해놓고 스스로 거기에 갇혀서 나오지 못하는 꼴인 것입니다. 그러니까 스스로 만들어 놓은 마음의 감옥, 관념의 감옥을 타파하고 나와야 되지 않겠습니까? 정말 이와 같이 여러분께서 확실히 알고 실행할 수만 있다면 병도 붙을 자리가 없고 가난도 붙을 자리가 없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약 지금 여러분께서 고통을 받고있다면 다 여러분의 마음, 한생각이 부족해서 그렇게 고통을 받는 것이지 여러분의 마음이 완벽하다면, 어디에도 집착하여 걸리거나 속지 않고 여여할 수만 있다면 무엇 때문에 고통을 받겠습니까?
이제부터 여러분은 모든 것을 둘로 보지 마십시오. 모두 다 자기로, 하나로 보십시오. 이와 같이 모든 것을 하나로 볼 수 있는 사람이라야만이 바로 자비를 베풀 수 있는 도리가 생기는 것이며, 이렇게 될 때에 비로소 내 몸뚱이의 인으로 해서 생긴 과로서의 악업 선업의 생각들이 전부 보살로 화해 천백억 화신이 되어서 나고 들 때마다 삼십이상(三十二相)이 구족하고 삼십이응신으로 화하여 여러분이 원하는 대로 응해 주시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자기가 한번쯤 생각해 볼 수 있는 그런 여유를 가져 보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일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뛰고, 뛰면서 생각할 수 있는 생활이 그대로 참선이란 걸 아셔야 합니다. 생활이 곧 묵선이자 행선이요, 행선이자 참선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모든 생각이 일어나는 것, 즉 아프면 아픈 대로 한번쯤 되돌려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과연 어디에서 이 아픔이 오는 것인가 하고 말입니다.
비유하자면 여러분이 글을 읽을 때 한번쯤 그 글을 담은 백지 생각을 해 보라는 말입니다. 글자만 풀이하느라고 야단법석 하지 말고 그 글자 쓴 종이를 한번쯤 생각해 본다면 여러분이 지금 살고 있으면서 과연 자기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고 있는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 한번쯤 지켜보게 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지금 생활이 곧 참선이라고 말씀드렸는데, 그러면 어떤 분들은 ‘망상을 끊지 못해 어렵습니다. 어떻게 해야 망상을 끊을 수 있습니까?’ 하고 질문을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가르쳐 주신 뜻은 그렇지를 않습니다. 손가락을 쳐들었다면 손가락만 보지 마시고 그 가르치는 본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아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와 같이 망상은 끊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가 부처를 이룰 수 있는 근원이자 거름임을 알아야 합니다. 망상이라고 하는데 만약 마음내는 게 없다면 목석과 무엇이 다릅니까? 망상의 마음을 끊으라고 하지만 그 마음을 왜 끊습니까? 끊는다고 끊어집니까? 찰나찰나 생기는 마음으로 인해서 바로 내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물을 한번 베어 보십시오. 칼로 물을 벤다고 물이 끊어지겠습니까?
우리가 지금 마음 공부를 한다는 것은 마치 폭포수가 내려 쏟아지는 것과 같이 틈을 주지 않는 그와 같은 마음법을 배우고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의 프로펠러가 돌아가는데 거기에 한 치의 틈도 없이 돌고 있는 도리를, 본래 시간과 공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한 치의 틈도 없이 돌고 있는 이 세상을 바로 우리는 보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와 같이 본래부터 자기의 근본은 시공을 초월하고 모든 상대적 세계를 초월하여 고정된 바 없이 쉴 사이 없이 나투어 돌아가고 있으므로 본래 붙을 자리가 없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앞에서 얘기했듯이 부처님께서는 생활에 어떠한 악업·선업이 있다 해도 결코 거기에 속지 말고 걸리지 말라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근본 자리는 어디에도 고정되게 머무는 바 없지만 그 어디에도 쉴 새 없이 나투어 돌아가고 있으므로 그것을 공했다, 주인공이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오로지 자기 주인공만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이 진실하여 결코 물러섬이 없다면 마치 타는 불에 떨어지는 눈처럼 어떠한 악업이라도 스스로 녹아버려 해결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이 진실하여 결코 물러섬이 없다면 새삼스럽게 348계다, 250계다 하는 것들이 다 문제가 될 수 없는 것입니다. 내 주인공에 대한 믿음에 물러섬이 없다면 자연히 일체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되고 일체를 둘 아니게 보게 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 내 모습으로 볼 수 있는 자비가 우러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백지 위에 그려진 글씨를 알려고 10년 20년을 애쓰지 말고 글씨 쓴 백지, 곧 너 자신부터 알고 너 자신부터 믿으라고 하는 겁니다. 자기 자신을 알고 자기 자신을 참으로 믿는다면 우리 마음이 탁 터지게 되고 또 모두가 둘이 아님을 알게 되므로 어떠한 경우에도 일체 모든 것을 자유자재할 수 있는 그러한 여건이 생기게 되는 겁니다. 이와 같거늘 왜 여러분은 그 고를 당하고만 있는 것입니까? 도대체 무엇 때문에, 본래 고가 붙을 자리가 없이 이미 다 갖춰 있는데 왜 끄달리는 겁니까?
그래서 오늘 여러분께서 잘 음미해 보시라고 육조 혜능대사께서 스승이신 홍인선사 앞에 대답하신 말씀을 불(佛)자 밑에 써서 벽에 붙여 놓았습니다. “내 마음이 본래 스스로 청정함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마음이 본래 스스로 걸림 없음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마음이 본래 스스로 갖춰 있음을 어찌 알았으리까?” “내 마음이 본래 스스로 일체만법을 들이고 냄을 어찌 알았으리까?” 저기 써 붙인 불(佛)자 하나가 이 모두를 다 말하고 있습니다. 저 불(佛)자 하나는 바로 여러분의 영원한 근본생명, 핵을 뜻합니다. 그 핵이 아니면 우리가 쉴 사이 없이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만약 마음대로 돌아갈 수가 없다면 자기가 먹고 싶은 대로 마음대로 요리해 먹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에너지는 바로 여러분한테 있습니다. 즉 광력이나 전력이나 자력이나 통신력이 그대로 여러분한테 주어져 있는 것이므로 오신통이라는 자체가 바로 에너지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의 몸이 만약 오븐이라고 한다면 그 속에 넣어서 마음대로 먹고 싶은 대로 요리해 먹을 수 있는 그런 재료입니다. 무엇이든 다 해 먹을 수 있는 모든 재료가 다 우리 마음 가운데 본래부터 갖춰져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곧 불이요, 불이 곧 마음인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가르침이 곧 불교인 것이니 이 세상의 어느 것 하나 불교 아닌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가 오늘날처럼 개명된 세상에 살면서 아직까지도 구태의연하게 네 종교 내 종교, 네 종파 내 종파 가르고 나누고 따지는 소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될 일입니까?
우리 모두가 본래 하나임을 진실히 알고 믿고 나간다면 고에서 해방되어 영원한 자유를 얻을 것이지만 항시 둘로 보고 나누고 갈라서 끝내 모두와 하나로 계합되지 못한다면 영영 고에서 벗어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본래 한마음임을 깨닫는 것, 그래서 무엇을 한다 하는 바도 뛰어넘어 자재하는 것, 이것이 바로 진정한 제도요 구제인 동시에 해방이며 해탈이요, 자유의 증득인 것이며 또한 평등과 평화를 실현하는 길인 것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증득하신 분을 부처님이라 그러는 겁니다. 그러므로 부처님이라고 하는 것은 어느 개별적인 사람이 아닙니다. 넓고 넓은 광대무변한 자재력 그것이 바로 부처님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이 다 여러분께 갖춰져 있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다 할 수 있다 이겁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도리를 꼭 실현해야만 되는 것입니다. 한 철 나기 위해 이 세상에 와서 이 도리를 실현하지 못하고 간다면 언제 다시 와서 실현할 수 있을는지 도저히 다시 기약할 길이 아득한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찰나에 살고 있습니다. 방금 한 철이라 하였습니다마는 저 들에 있는 나무는 봄이 오면 잎이 돋아나고 꽃이 피고, 여름이면 열매를 맺고, 가을이 오면 잎이 떨어지고, 겨울이 오면 앙상한 가지만 남게 됩니다. 그러나 그 잎이 모두 떨어졌다고 해서 나무 뿌리가 아주 죽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나무에 있어서 잎이 떨어지는 것은 바로 우리 몸이 떨어지는 거와 같습니다. 그래서 나무의 잎이 떨어졌다고 해서 나무의 뿌리가 죽는 것이 아니듯이 우리의 몸이 떨어졌다고 해서 결코 죽는 것이 아니란 말입니다. 그러므로 ‘생사가 둘이 아니다. 본래 난 것이 없기 때문에 본래 죽을 것도 없느니라’ 하는 것입니다.
물질에는 반드시 생멸이 있지만 우리 마음은 생사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을 내놓으라고 해도 내놓을 수가 없고 보이라고 해도 보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나무는 한 철 지나 낙엽 되어 떨어진다고 해서 결코 울지 않습니다. 참고 견디면서 아무리 비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쳐도 봄을 기다리면서 조금도 물러서지 않습니다. 그런데 하물며 고등동물로서 우리는 조금만 춥고 조금만 어려워도 갈피를 잡지 못하고 방황하며 온통 야단입니다. 조금만 화가 나도 참지 못하고 신경질을 내고 돌아가고 있으니 이게 무슨 꼴입니까? ‘속지 말라. 걸리지 말라!’ 하고 그렇게 얘기하는데도 왜 거기에 속습니까? 화가 나더라도 거기에 속지 말고 모든 것을 한번 굴려서 놓을 수 있을 때에 비로소 좋은 말이 나갈 수 있고, 또 좋은 일이 생기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한뿌리입니다. 그래서 마치 전기 가설과 같아서 우리는 벌써 서로 전기 가설이 되어 있는 한 방의 식구와 같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만약 불을 켠다면 비록 다른 식구들이 아직 불을 켜지 못하고 밝게 살고 있지 못한다 할지라도 내가 스위치를 올리게 되면 식구들이 있는 방 전체가 밝아지므로 식구들도 다 밝게 살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공밖에는 우리 가정을 화목하게 이끌어 줄 수 없다고 믿고 진실로 맡겨 놓는다면, 믿고 맡겨 놓는 순간이 마치 전기 스위치를 올리는 것과 같으므로 그 순간부터 나뿐만이 아니라 모든 게 다 밝아지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다 한생각의 차이입니다. 믿고 맡겨 놓느냐, 한생각 차이가 얼마나 크게 벌어지는지 알아야 합니다. 한생각 잘하면 무량수와 같이 수많은 밝은 빛을 낼 수 있을 것이고, 한생각 잘못하면 무량수와 같이 많은 죄를 뒤집어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을 뒤집어 얘기한다면 본래 죄가 없기 때문에 죄가 붙을 자리가 없다는 말이 됩니다.
모두 이렇게 해야만 이게 된다, 업을 벗는다, 죄를 씻는다 이러는데 이것은 언어도단입니다. 여러분은 어디에도 걸리지 마시고 그냥 지금 이 순간부터 ‘본래 병도 붙을 자리가 없다. 가난도 붙을 자리가 없다. 업도 붙을 자리가 없다. 팔자운명도 붙을 자리가 없다. 그러니 오직 거기에서밖에는 해결할 수가 없다.’ 하고 믿음을 가지고 나가신다면 머지않아서 ‘아하! 이런 것이구나!’ 하고 그 이치를 아시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망상이다 번뇌다 하고 그것을 끊으려고 하지 마시고 망상에 속지 마시고, 거기에서 나온 것 거기에다 맡겨 놓으시라는 겁니다. 마치 온갖 잡쇠를 용광로에 넣듯이 말입니다. 용광로에 넣는 작업만 한다면 자동적으로 녹아서 여러 가지 새 쇠로 이름을 지어 자동적으로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거기를 용광로로 알고 모든 것을 거기에 놓는 작업만 하시고 거기서밖에는 해결하지 못한다고 굳게 믿는다면 바로 자가발전소에서 무한량 전기가 나가듯이 전부 통하게 되어 모든 것이 다 밝아지게 되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 자신에게 본래 다 갖춰져 있는 오신통의 재료를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 오신통에도 매이지 말고 거기서마저도 벗어나야만 오신통을 마음대로 굴릴 수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종교를 믿을 때, 잘못하면 지혜를 밝혀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반대로 더욱 어둡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잘못하면 짐을 벗겨 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덧씌워 주기 십상입니다. 이래서는 참 안되는 일입니다. 우리에게는 예전부터 이렇게 믿어 왔으니 꼭 이렇게 해야만 된다 하는 생각이나 습이 있다 해도, 그러한 고집을 다 버리고 놓고 현재에 들어오는 대로 닥쳐오는 대로 살아가면서 우리가 한번 좀더 돌려 좋게 생각 할 수 있는 여유를 가진다면 우리는 참으로 자유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면 오늘 여러분께서 의문이 있으시면 질문해 주시기 바랍니다. 내가 무엇을 잘 알아서 질문하시라고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알든 모르든 같은 길을 가고 있는 도반으로서 서로 토론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는 젊고 늙고도 없고, 소승 대승도 없고, 잘 알고 모르고도 없습니다. 오직 진실, 마음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지금 사는 이 찰나의 생활만 보지 마시고, 우리가 늙었으면 젊어지고 젊었으면 늙어진다는 사실을 잘 알아야 됩니다. 그러니 늙었다고 해서 절대로 허무하다 생각하지 마시고, 또 젊었다고 해서 너무 자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본래 늙음도 젊음도 붙을 수 없는 그런 자리에서 자나깨나 일하면서 생각하고, 생각하면서 일하는 이 생활이 그대로 자유이며 여여한 것이며, 그대로 완성된 생활이라는 부처님의 가르침의 뜻을 잘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실천궁행을 해 보지도 않고 남을 원망하거나 탓을 해서는 안됩니다. 여러분이 지금부터라도 자기 주인공을 진심으로 믿는다면 안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진실로 믿는다면 인과로 인해서 얽히고설킨 모든 고가 가차없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오무간 지옥이니 화탕 지옥이니 그 어떠한 것도 다 무너지게 되어 있습니다. 진실로 자기 주인공을 믿는다면 인과에도 얽매이지 않고 윤회에도 얽매이지 않고 시간과 공간에도 얽매이지 않습니다.
나도 지금 배우는 사람에 속하지, 안다는 사람에 속하지 않습니다. 때문에 내세울 바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벌레가 되었을 때도 부처라고 할 수 없고, 사람이 되었을 때도 부처라고 할 수 없고, 부처가 됐을 때도 부처라고 할 수 없는 것이 진리라고 봅니다. 그러니 여러분은 과연 무엇이 되었을 때를 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 노릇을 할 때를 나라고 하겠습니까? 자식 노릇 할 때를 나라고 하겠습니까? 아니면 남편 노릇을 할 때를 나라고 하겠습니까? 그래서 그 어디에도 나라고 내 놓을 수 없는 평등진리가 바로 부처님이라고 봅니다. 그러니 고집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 아닙니까? 나라는 존재가 고정되게 본래부터 있는 것이 아닙니다. 단 하나 있다면, 지금 말할 뿐이고 그대로 먹을 뿐이고 그대로 잠잘 뿐입니다. 이렇게 가도 가도 끝도 없고 시발점도 없이 돌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이와 같이 여러분이 믿고 행할 수 있다면 참으로 훌륭한 여러분이 되어서 가정에서나 사회에서나 어떠한 일을 하더라도 조금도 손색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오늘부터 한생각을 잘 하셔서 성과를 꼭 이루도록 합시다.
그러니까 지금 어떠한 괴로움이나 역경에 처해 있다 하더라도 아예 그냥 뿌리를 몽땅 뽑아버릴 생각을 한번쯤 해 보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에 또 다른 괴로움이 들어오면 오는 대로 닥치면 닥치는 대로 또 그와 같이 해서 괴로움의 뿌리를 뽑으시기 바랍니다. 이와 같이 해서 나중에 괴로움의 뿌리가 다 뽑아졌을 때 위로 하늘을 쳐다보고 ‘허! 허!’ 하고 한번 웃지 않으면 안 되고, 그리고 전체를 한번 둘러보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이치를 알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아무쪼록 열심히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질문자1: 한마음선원이 세계 중심지인 뉴욕에 개원됨을 진심으로 환영하고 축하합니다. 지금 뉴욕의 한국교포 수가 약 3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불교신도 수는 너무나 적습니다. 물론 불자로서 불교신도 수가 너무나 적은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그러나 그에 못지 않게 기독교와 같은 외래 문화와 종교에 휩싸여 우리 한민족의 얼과 자각을 잃어 가는 것 또한 큰 일이라 생각됩니다. 그러니 불법공부도 열심히 해야 되겠습니다 마는 먼저 신도 수를 많이 확보하는 포교 노력이 더 큰 급선무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데, 스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그리고 어떻게 기도를 해야 참다운 기도가 되는 것인지 말씀을 하여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님: 선생님 말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지금 가만히 보면 모든 종교가 타력신앙으로 가는 경향이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불교를 믿든 기독교를 믿든 가톨릭을 믿든 상관하지 않습니다. 단 하나 있다면 자기 주처를 똑바로 알고 똑바로 믿고 결코 거기에서 물러서지 말라 이겁니다. 즉 절대로 타의에서 구하지 말라, 자의에서 구함으로써 불교일 수 있다는 말입니다.
만약 그게 아니라면, 생명은 무엇입니까? 자기 생명을 떠나서는 결코 진리가 없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자기 생명을 떠나면 부처님이 어디 있으며, 기독교는 어디 있으며, 또 하나님은 어디 있습니까? 나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자기 완성이 바로 하나님이다, 그리고 자기 지혜가 바로 하늘님이다, 또 일체의 통신력이 바로 한울님이다라고 말입니다. 이 삼합이 한데 합친 것이 바로 불교입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를 하나로 꿰어서 자재하시는 분을 부처님이라고 하는 겁니다.
모든 일체의 만물 만생이 다 불자 아님이 없습니다. 왜? 무엇을 믿든 안 믿든 누구나 다 자기 생명을 없다고는 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자기 불(佛), 자기 생명에 의지해서 모두 움직이고 삽니다. 그러므로 저는 여기에 신도가 많이 올까 안 올까 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안 온들 어떻고 온들 어떻습니까? 다 부처님의 뜻입니다. 여러분께서는 어느 곳에든지 다 가서 들으시기 바랍니다. 나는 본래 걱정을 안 하고 삽니다. 그냥 내가 한다고 생각했으면 할 뿐입니다. 신도 안 온다고 걱정을 안 합니다. 한 사람이면 어떻습니까? 한 사람만이라도 진정 사람이 된다면 이 세상을 다 손안에 쥐고 다 흔듭니다. 그러니 무엇이 그리 걱정이겠습니까?
중이 될 때에 옷 입으려고 한 것도 아니고, 먹고살려고 한 것도 아닙니다. 진짜 자기 밥을 내려먹을 수 있을 때, 그때 비로소 사람이 되는 겁니다. 알고 보면 내 밥 내가 먹는 것이지 누가 갖다 줘서 먹는 것이 아닙니다. 예전에 제가 이렇게 말했다가 내쫓긴 적이 있습니다만 내 밥 내가 먹는다고 했다가 내쫓겼거든요. 그 때는 내가 너무 용렬해서 그랬겠죠. 그러니 그 분이 바로 스승입니다. 모든 것이 스승 아님이 없습니다.
여러분! 항상 자기 부처는 자기한테 있는 반면에 천백억화신이 되어 보살로 화해 가지고 나를 이끌어주고 또 전체를 돌봐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걱정합니까? 부처는 바로 우리의 일심입니다. 일심 속에서 이 허공을 꽉 채우려면 채우고 비우려면 비우고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이 마음을 모르시겠거든 지금 한번 마음으로 여러분 집에 갔다 와 보십시오. 순간 갔다 오셨을 겁니다. 빛보다도 더 빠르게 갔다 오니 아주 좋지 않습니까? 그거와 같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주 전체를 순간 돌아봐도 돌은 사이가 없이 돌아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아무리 그 무엇을 본다 해도 그것은 도가 아니라 하셨습니다. 가고 옴이 없이 가고 온다고 해도, 숙명을 알고 남의 마음을 알고 누진을 안다 해도 도가 아니니라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여러분께 ‘부처님께 열심히 기도해라, 부처님께 잘되게 해 달라고 부탁해라!’ 이렇게 가르치지 않습니다. 진정으로 해결할 일이 있으면 자의로서 자기 주인공한테 ‘주인공! 당신밖에는 해결할 수가 없어.’ 하고 관(觀)해야지 밖으로 구하고 찾아보아야 더 미(迷)해지기만 하니 그렇게 해서는 안됩니다. 밖으로 찾으면 벌써 둘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나는 기도라고 언급하지 않습니다. 기도라고 하면 벌써 자기 자신을 저 밑에다 내려놓고 밖으로 높이 허상을 찾게 됩니다. 그래서 직접 관(觀)하라고 합니다. 목 마르면 직접 마셔라 이런 뜻입니다. 내가 자고 싶으면 그냥 자고 먹고 싶으면 먹고 하는 것이지, 하늘이 열 쪽이 난다 해도 그렇습니다. 죽든 살든 어차피 낙엽은 떨어질 것을, 그것을 그렇게 웅크려 쥐고는 어떻게 될까 봐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니 고가 생기는 겁니다. 그러니 거듭 말씀드리지만 좀 더 놓으십시오! 죽고 사는 생사마저도 그냥 놓으십시오!
옛날 어느 큰스님께서 다음과 같은 법문을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길을 가는데 큰 해골 무덤 앞을 지나게 되었느니라.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해골 무덤 앞에 멈춰 서시어 그 해골에다 큰 절을 하셨느니라. 그러니까 제자들이 놀라 부처님께 여쭈었느니라. ‘부처님께서는 사생자부이시온데 어찌하여 해골에다 절을 하시옵니까?’ 부처님께서는 ‘저 해골들은 내 부모도 될 수 있고 내 형제도 될 수 있으니 어찌 내가 절을 하지 않겠느냐?’ 하셨느니라.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마침내 통곡을 하면서 ‘세존이시여! 저희들은 미처 몰랐습니다.’ 하였느니라.” 그런데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나는 무엇이 터졌느냐 하면, ‘아 시공을 초월한 마당에 윤회가 따로 없이 찰나의 생활이 그대로 나오는구나. 아! 죽는 것도 여기에서 죽어가고 살아나오는 것도 여기에서 살아나오고 당초 한자리에서 그렇게 나고 죽고 돌아가는구나!’였습니다.
그러나 그뿐입니까? 구름이 한데 모였다가 바람이 불면 흩어지고 그리고 또 다른 구름하고 다시 모이듯이, 이 집에서 살다가 저 집에서도 살고 그럽니다. 그러니 우리 인생이 한 철 생활이 아니고 무엇입니까?
그러므로 내 부모 네 부모 가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또 내 자식이 영원히 내 자식이요, 네 자식이 영원히 네 자식이어야 할 텐데 어느 때는 부모가 되었다가 어느 때는 자식이 되었다가 형제도 되었다가 그러다가 딴 집에도 태어나고, 딴 집에서 이 집으로 태어나 한 식구가 되었다가 어느 때는 짐승으로도 되고 사람으로도 되고, 온통 이렇게 뒤섞이니까 그것이 탁 터지면서 ‘허! 허! 그 해골 하나가 이 세상을 다 완성시키고도 남음이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좋고 기뻐서 정말 펄펄 뛰면서 ‘야! 해골 하나로 인해서 온 세상의 이치가 다 떠오르는구나.’ 하고 웃었습니다.
그러니 여러분! 우리가 지금 이 집에서는 남편과 자식과 아내로서 행복하지만 저 집에 태어나서는 온통 싸우고 부딪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또 저 쪽에서는 행복하게 사니 어느 부모인들 내 부모 아니라고 볼 수가 없더라는 얘기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것을 둘로 봄이 없이 그대로 여여하게 할 수 있는 지혜를 가지고 살아간다면, 굳이 불교인이다 기독교인이다 분별할 것도 따질 것도 없는 것입니다. 본래 둘 아닌 진리를 배우는 것인데 이름이야 어떠하든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불교다 기독교다 하는 그것은 다 상표에 불과한 이름일 뿐입니다. 우리가 고귀한 불자가 되어서 이름에 걸리거나 속아서야 되겠습니까? 여러분이 좀 더 지혜를 얻고 나라는 존재를 안다면 모두가 다 부처님 법 아님이 없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코 말씀드립니다마는 나는 여러분이 여기에 한 분도 안 오신다 해도 하나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왜냐? 내가 하는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한 분도 안 오셔도 여기가 꽉 찰 수 있기 때문입니다. 허공에는 생명들이 없는 줄 아십니까? 너무나 많습니다.
여러분! 오늘부터 한생각을 잘 내시기 바랍니다. 한생각을 잘 내면 구덩이에서 나올 수도 있고, 한생각을 잘못내면 구덩이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말 한 마디 이렇게 하고 나면 백년이 흐릅니다. 그렇기 때문에 즉각즉각 변하지 않는 음식을 즉석에서 해 먹어야 합니다. 여러분이 한생각만 잘 하면 즉석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즉석요리 말입니다. 개구리탕도 즉석에서 해 먹을 수 있고 용탕도 즉석에서 해 먹을 수 있습니다. 이승 저승이 따로 없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오직 나 자신부터 믿고 나 자신부터 지켜보고, 나 자신부터 실험을 해 보고, 체험을 통해서 자신을 바로 알고 자유인이 됩시다. 그리고 우선 오늘부터라도 괴로운 것들을 무너뜨리는 작업부터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기한테서 나온 것을 자기한테 맡겨 놓는 것밖에는 달리 없음을 깊이 아시기 바랍니다.
여러분! 괴로운 것들 모두 다 자기 주인공에 맡겨 놓고 나날이 좋은 날 되시기 바랍니다.
※위 법문은 대행스님 법어집 「한마음」의 내용 중에서 27호를 발췌한 것입니다. 한마음선원 홈페이지(www.hanmaum.org나 한마음선원)에서도 같은 내용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