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기 2568. 10.23 (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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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초스님
자세 늘 반듯하고 곧은기품 간직
분위기따라 시인도…철학자도…

세상에는 유별나게 일하는 것 같은 표를 내면서도 사실은 뚜렷한 결과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진정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척하기 때문일 거라고 생각한다. 무슨 일이든, 또 어디서든 매사를 내 일처럼 최선을 다한다는 것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으리라. 이렇게 모든 사람들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하고 남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세상이 된다면 여기가 곧 극락일 텐데 현실을 보면 거리가 멀다. 그러나 나의 도반 중에는, 늘 노는 것 같으면서도 자신의 일을 깔끔하게 잘 마무리하는 멋쟁이가 있다.
만초스님은 체구는 작고 야위어서 왜소한 편이지만 늘 자세가 반듯하고 스님들 특유의 기품이 살아있는 스님이다. 말소리도 크지 않고 언제나 미소를 잃지 않는 온화한 모습이 너무도 인상적이다. 거기다가 짜증 내거나 남을 비방하는 일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사실이 놀랍다. 지금껏 이렇게 인욕 하는 스님을 본 일이 없다고 말할 정도로 ‘자비보살’이다. 통도사 여러 소임 중 회계(지금은 재무과장이라고 한다)가 있다. 회계소임은 재정을 움직이는 자리기 때문에 객스님부터 시작해서 절 살림에 필요한 물품구입과 공사 현장의 인부는 물론 직업적으로 절에 구걸하러 오는 걸인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러다 보면 순순히 이야기가 되는 사람도 있지만, 말이 안 통하는 무지막지한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런 때에도 스님의 부드러움은 언제나 어색한 상황을 조용하게 마무리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이 되어주고 있다.
법명이 ‘만초’라서 같이 소임을 보던 몇몇 스님들은 ‘잡초’라고 부르기도 했다. 말은 안 되지만, 일만 만(萬)자에 풀 초(草)니까 그냥 잡초라고 부른 것이다. 그런데 알고 보면 잡초의 특성은 어디서나 자신의 내재된 특성을 유감없이 발휘하는 데 있다. 아무리 척박한 땅이라 해도 끝내 자신의 싹을 틔우고 마는 엄청난 생명력을 자랑한다. 그래서인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스님의 행동은 자유롭고, 적응을 잘한다. 서정적인 분위기에서는 부드러운 시인이 되고, 학문적인 분위기에서는 다양한 대안을 제시하는 논리철학자가 되는가 하면, 편안한 분위기에서는 꾸밈없이 천진한 어린아이가 된다. 생각지 못할 잔잔한 장난기가 당황스러울 정도다. 처음 대하는 사람들은 적응하기가 쉽지 않을 만큼 순박한 재치와 고도의 유머가 있어 재미가 있다. 서로 한참을 이야기하다 보면 어느새 먼저 한바퀴 더 저만큼 가고 있을 정도로 생각의 회전이 빠르다.
울산 내원암 주지소임을 살 때 그의 열린 마음을 엿볼 수 있었다. 울산지역의 이웃 종교인들과 모임을 만들어 지역 현안에 대한 지역민의 의견을 전달하는가 하면 종교 간의 화합에 앞장섰다. 절에 신부님이나 목사님이 자연스레 찾아오고, 스님 또한 성당이나 교회를 부담없이 방문해서 종교 간의 친목과 함께 살아가는 사회를 향한 자비의 마음을 공유하는 여유를 보였다. 종교 간 대화와 교류의 모습은 이 시대 절실히 필요한 일이다. 특히 물질이 풍요로울수록 정신세계의 순화는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어느 해에는 산사 음악회를 한다고 해서 가 보았다. 절 입구 너른 공터에서 동네잔치를 벌였다. 산색은 봄빛으로 푸르러 어우러지고, 사람들은 즐거운 미소로 화사하게 피어나고 있었다. 한쪽에서는 맛있는 즉석 음식이 잔칫집을 연상케 했고, 준비된 공연은 완벽하지는 않았지만 청중들을 하나로 묶어내고 있었다. 사실 내원암은 20여년 동안 만초 스님 전임 주지인 호랑이 노스님에 의해서 조용한 절로 인식되던 곳이다. 그런 공간이 젊은 주지스님에 의해 활동적으로 깨어나게 된 것이다. 동네 사람들이 많이 참석해서 달라진 절 분위기를 실감하며 즐거운 한 때를 함께했다. 문화적인 감각 또한 만초 스님의 숨겨진 매력이다.
그런 활동들이 인정을 받았는지 어느 날 조계종 기획국장으로 간다고 했다. 예산, 법령 개정 등등 조계종 전반에 대해 그야말로 기획을 하는 자리다. 내심 부럽기도 하고, 열심히 사는 것에 대한 보람을 보는 것 같아 내 일처럼 흐뭇하기도 했다. 지금은 다시 본 모습으로 돌아와 통도사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자리한 백운암에서 법당 중창불사를 하고 있다. 그의 여유 있는 마음 씀씀이나 깔끔한 일처리를 보면 이 불사 또한 원만한 회향을 할 것이다.
■(사)한나래 문화재단 이사장
2003-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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