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에 일어난 살인 사건의 유력한 용의자가 최근 붙잡혔다. 그 사람들이 자백했다는 내용에 따르면 피해자가 사위와 불륜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한 어느 장모가 납치와 살해를 지시했다고 한다. 선재는 불륜이 의심된다고 사람을 해쳤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피해자와 사위의 관계가 이종사촌이라는 사실에, 또 장모가 살해를 지시한 사람이 그 조카라는 사실에 더욱 놀랐다. 의심의 고리가 여러 가족에게 깊은 상처를 준 셈이다.
부처님께서는 증지부 경전의 <까말라숫타>에서 “의심이란 의심스러운 문제에서 비롯되는 것이니라. 소문이나 전래되는 말에 현혹되지 말라. 성전(聖典)의 권위든 단순한 논리나 추론이든 그에 끌려 다니지 말라. 그럴 듯한 겉모습이나 공허한 논리의 기쁨에도 현혹되지 말라. 이것이 나의 가르침이니라.”며 잘못된 판단의 위험성을 경고하셨다.
사람의 행동이라는 것이 생각을 따르는 것인 만큼 이제 의심은 마음으로 그치지 않는다. 선재가 보기에 잘못된 생각이 빚어내는 위험을 가장 실감나게 설명하는 것은 노끈과 뱀의 비유이다.
<섭대승론>에는 유명한 뱀, 노끈, 삼의 비유가 나온다. 어두운 밤에 길가의 노끈을 보고 뱀인 줄 알고 놀랐지만 자세히 보니 노끈인 줄 알아서 안심하고, 다시 생각하니 사실 노끈이란 것도 실체가 아니라 그 자체는 삼[麻]이라고 안다는 내용이다. 뱀으로 잘못 아는 것을 유식학에서는 ‘변계소집성(遍計所執性)’의 비유로 들고 있다. 번뇌나 망상 때문에 잘못 보았다는 뜻이다.
이번 사건의 장본인들은 노끈을 뱀으로 잘못 아는 데 그치지 않고 그 뱀을 죽여버린 꼴이다. 뱀인 줄 알고 휘두른 칼에 노끈이 떨어진 경우라면 위험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내뱉는 안도의 한숨뿐이겠지만, 불륜이라는 의심덩어리에 사로잡힌 오늘 이 땅의 중생이 휘두른 공기총에 떨어진 것은 20대 초반의 젊은이의 미래이고 가족의 붕괴이며, 남의 생명을 앗아간 업보뿐이다.
■최원섭(성철선사상연구원 연학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