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에 가고싶은 마음은 똑같아요”
20일은 유엔이 지난 1981년에 제정한 ‘세계 장애인의 날’이다. 스물세 번째 장애인의 날을 맞아 불교계 복지시설 및 단체들은 다채로운 행사들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이 같은 행사들이 일회성에 머물 뿐, 장애인을 위한 근본적인 복지정책 마련과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도 적지 않다. 불교계 장애인 복지단체장과 실무자 등 현장의 목소리를 통해 이들이 느끼는 ‘장애인의 날’을 살펴봤다.<편집자>
▧범종단 차원의 지원책 마련 절실
불교 경전 자체가 복지경전이다. 소외된 사람들 즉, 사회적 약자를 안타깝게 여기셨음을 알게 하는 내용들로 꽉 차 있다. 부처님 제자 가운데서도 엿볼 수 있다. 시각장애인이었던 ‘아나율’, 정신지체장애인 ‘출리반타’, 지체장애인 ‘웃다라’ 등의 제자들에게 더욱 가슴 아파하며 한량없는 자비심을 베풀었다. 이 같이 경전에 나타난 부처님의 사상을 근본으로 이제는 장애인 문화ㆍ복지사업에 불자들이 앞장서야 한다. 이에 앞서 장애가 ‘전생의 업’이라는 부정적인 시각부터 바꿔야 한다. 그래야만 장애인들이 절실히 느끼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릴 수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도 장애인들이 언제 어디서든 사찰에 드나들 수 있도록 배려해야 된다. 한결같이 ‘마음 놓고 사찰을 참배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장애인 불자들의 하소연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높은 법당 문턱만큼이나 이들이 겪은 좌절감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늦지 않았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범종단 차원의 지원책 마련이다. 불교계 장애인복지관과 종단을 아우르는 ‘장애인 복지 운영위원회’ 설치가 시급하다. 이를 통해 △장애에 대한 인식 전환을 위한 캠페인 전개 △전국 사찰에 장애인 편의시설 확충 △시각ㆍ청각 장애인을 위한 점자 경전 및 수화통역사 양성 △장애인 포교사 제도 실시 등을 정책적으로 담아내 장애인 포교의 새로운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해성스님(광림사 연화복지원장)
▧공간 배려, 신도들의 따뜻한 손길 필요
나는 부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사찰에 가는 것을 좋아한다. 사찰은 누구에게나 항상 문을 열어 놓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체적인 장애로 인해 움직이는 것이 어려운 장애인들과 함께 절에 편안하게 가기란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절은 도시보다는 산에 많이 있다. 절에 가려면 산을 올라야 하고, 산을 올라 도착하면 계단을 올라 신발을 벗고 법당에 들어가야 한다. 도시에 있는 절도 그 예는 다르지 않다. 들어가는 입구가 계단이 아닐지라도 법당에 이르는 길은 장애인들에게는 ‘가지 못 할 길’이 되기 쉽다.
장애인들을 위해 사찰을 지어달라는 얘기가 아니다. 장애인들이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는 장애인 전용석을 외부에 별도로 만들어 본다거나 장애인 전용 화장실, 식당의 전용석 등이 필요하다. 또 행동이 느리다고 재촉하지 않는 주변 신도들의 따뜻한 배려와 정다운 손길도 쉽게 장애인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이다.
이런 변화들이 모여 장애인들이 꼭 가보고 싶은 전통 사찰이 되고, 종교를 떠나 불교의 아름다운 전통문화를 다 함께 공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면 불교의 위상도 더 높아질 것이다.
나는 많은 장애우들과 함께 사찰에서 차를 마시며 부처님의 말씀을 나누고 싶다. 장애우가 휠체어를 타고 편안하게 사찰에 갈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불자라면, 사찰에 가고 싶은 마음은 ‘장애-비장애’라는 구별 없이 똑같을 것이다.
박은아(강북 장애인종합복지관 총무기획팀장)
▧마음 놓고 부처님 정법 들을수 있기를…
불교단체들이 장애인의 날을 맞아 다양한 행사를 준비하고 있다고 한다. 사실 아직도 우리 사회는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이 심하고, 그래서인지 장애인들을 위한 편의시설도 매우 열악한 상황에서 나 같은 장애인을 위해 행사를 준비한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하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을 위한 사찰의 편의시설은 부족하다. 나의 원찰인 인천 주안 H사의 경우, 도심에 위치한 사찰이지만 나 같은 장애인이 절을 다닌다는 것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휠체어를 사용하는 나로서는 절에 가려면 큰 맘 먹고 나서야 할 정도다.
절에 갔을 때 장애인들이 가장 불편한 것은 화장실이다. 재래식 변기를 이용할 수 없는 장애인에게 절은 너무나 먼 곳이다. 공양을 할 때도 장애인들을 위한 배려가 부족하다. 불교가 이런 장애인들을 조금만 배려해 준다면 그들도 부처님 정법을 들을 수 있을 것이다. 타종교의 경우에는 예산도 풍부하게 지원되고 장애인에 대한 배려가 잘 되는 것 같은데, 불교는 너무 이 부분에 소홀한 것 같다. 듣자하니, 서울 강남 봉은사는 보우제 때 장애인노인들을 초청한 행사를 성대하게 열고 있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볼 때 장애인들도 마음 놓고 사찰에 참배할 날이 멀지 않을 것 같다. 하루빨리 그런 날이 다가오기를 고대한다.
김작언(서울 강북구 수유동·지체장애1급)